1
크리스마스다. 퇴근길 강남역을 빠져나와 사당까지 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사람들은 물밀듯이 꾸역꾸역 강남역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고, 그곳이 그저 일터일 뿐인 나는 교회로 가기 위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분이 있다. 내려가며 들으니, 전하는 내용은 그리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날, 처절히 외면당하는 복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하지만 나 역시 군중이 되어 내려간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원래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바로 태안으로 떠나자는 계획을 짰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렵게 되버렸다. 대신 요란하고 사치스런 행사는 없이(원래도 가난한 교회라 그런 건 없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성도들이 모여 한 해의 감사의 이유를 나누고, 내일은 조촐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나가 한 해를 정리한다. 나는 나의 감사의 제목들이, 참, 가족들이 다 있는 대중 앞에서, 특히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들이어서, 결국 진짜 감사의 이유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엄마의 감사의 이유를 나의 감사의 이유로 치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시나 예리한 목사님은 내가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을 캐치해낸다. 역시 신비주의가 유행이라며 -_- 내가 이런 데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보면 목사님도 날 절대 신비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으실텐데, 역시나 내게 나의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털어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이야기이거니와, 올 한 해, 내가 조금 바뀌었다 해도,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차마 그 자리에서 할 수가 없었다.
2
목사님은 갖은 칭찬의 수식어들을 붙여주시며 사람들을 앞으로 부르셨는데, 나를 부르시며 매우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시니컬하게 잘 따지는 성격이라는 얘기다. 좀 원리에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 공동의회,같은 시간에 손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1년에 한번이지만, 워낙 조용한 동의와 제청이 주로 이루어지는 편인지라 한번 얘기하면 오래 각인이 되나보다. -_- 그래놓고는 며느리삼고 싶다는 농담을 하셨는데, 나는 도무지 왜 내가 좋다는 사람보다 며느리 삼고 싶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지 ㅋㅋ 아무래도 50대 스타일인가보다. 일단 눈이 좀 침침해진 다음에 ㅋㅋ 목사님의 아들은 5살 어린 M, 군대에 가 있기에 자리에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으면 제 아버지에게 얼마나 불만을 표했을까. ㅋㅋㅋ
우리 모두 웃으며 넘기고 심지어 나는 그 앞에서도 목사님께 반항을 하다가 들어왔다는 거. (목사님, 제가 올해는 3년 째 사역-찬양단 싱어, 아동부 교사-좀 바꿔달라고 했는데, 또 그대로 넣으셨더라고요? 막 이러고 ㅋ) 암튼 다 까먹고 고등부 아그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돌아왔는데(아...! 수준이 맞다니 -_-) 집에 오니 엄마가 심각하게 묻는다. 선아야, 목사님은 왜 그런 얘기를 하셨을까? / 무슨 얘기? / 너 며느리 삼는다고 / 헉, 엄마 그거 심각하게 생각한거야? / 응. 엄마는 M도 좋고 목사님도 좋은데 사모님 때문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어떠니? -_-
아무래도 내년에는 누구든 없어도 있다고 뻥이라도 쳐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올 한 해 갖다 붙여진 사람만 해도 몇명인지. 무슨 자석 인형도 아니고 이젠 핏덩이 군인아가한테까지 갖다 붙여지다니 ㅠ_ㅠ
3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잖아- 라고 아동부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는 조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진짜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어린시절 선생님들한테 살짝 배신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는데, 정작 내가 그짓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얘들아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신 건 아니야. 그러니까 정확히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생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날을 그냥 기억하는 거야"라고 얘기하기엔 추후 파장이 예상되기에, 나는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고 만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난 실제 그 날짜가 아니라도 일년에 한번,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의 마음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날이기에, 충분히 의미 있다. 꼭 그 날이 아니더라도, 1년에 한 번쯤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볼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4
퇴근길 지하철, 시사인을 읽고 있는 내게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오신다. 풍선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그 풍선은 파란 매직으로 쓴 알 수 없는 한자들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풍선을 선반위에 올려놓으시고는 나에게 와서 다른 사람들은 러브러브, 연예인에나 관심이 있는데 학생은 이렇게 시사 잡지를 읽고 있는 걸 보니,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며 마구마구 칭찬을 해주신다. 꼭 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달라고 하신다. 나는 그냥 잡지를 읽었을 뿐인데... 민망해진 나는 예, 예, 하고 다시 잡지를 읽었다. 당황스럽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세상사에 대한 나의 관심이 보통을 넘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에 대한 그림도 막연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오늘은 굳이 퀴즈로 낼 필요가 없을 거다.
* 어제(24일) 쓰다가 잠든 글이어서, 시점이 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