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C와 얘기를 했다. (그렇다, 또 C양이다) M과 대화를 하던 중 (그렇다, 또 M이다, 아 친구도 동생도 정말 없군아 ㅡ_ㅡ) C와 나의 인문학적 소양은 굉장히 비슷한 시기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 같다고.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두가지를 지적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사람도 있냐? 우리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있나? 그리고 이어진 대화.
없지. 그럼 없어. 근데 왜 M은 그렇게 생각한 거야? 일단 M은 우리보다 어리고, 우리는 깊이는 없지만 가오를 중시 여기기 때문에, 얕은 앎들을 끼워 맞춰가며 M 앞에서 가오를 잡아왔던 것들이 M에게 통했던 거지. 그래, 맞아. 우리는 지적 허영이 심한 편이지. 하하하하. 그래서, 넌 고칠 거니? 아니, 난 앞으로도 좀 허영 부리면서 살려고. 나도.
지적 허영을 부린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건 어찌 보면 자학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나는 스스로 지적 허영이 없었다고 절대 얘기하지 못하겠다. 내가 되고 싶은 나, 스스로의 로망은 저어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 나는 겨우 여기 서 있다. 그리고 난, 여기서 멈춰설 생각이 전혀 없다. 로망이라는 말 뒤에는 어쩌면 갖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지도 모르지만, 갖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가까이 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나는 가끔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에 이미 간 척, 허영을 부릴 때도 있고, 가끔은 내 지적 능력으로 읽기 어려운 책들을 구입해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읽는 허영을 부릴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본인의 지적 허영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해버리는 것보다(물론 허영을 부릴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인이 어느 부분에서는 지적 허영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믿는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전제는 '지적 허영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본인이 끊임없이 인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꾸만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허영들이 나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깐따삐야님을 키운 것은 팔할이 드라마라고 하셨다. 나는 나를 키운 것이 좀 많은데 그 중 삼할 정도는 이 지적 허영님에게 영광을 돌릴 셈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삶에 즐거운 에너지들을 많이 달라고, 그래서 나에 대한 나의 로망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