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태그에 참여하면서, 왠지 중앙통제에 순응하는 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시키는 주제에 대해 글을 하나씩 꼬박꼬박 쓰니까. 가능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살짝 빗나가는 재미가 있는, 그러니까 좀 태그를 광의적으로 보는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처음에 시도했던 건데, 이런 태그는 빼도박도 못한다. 올해의 책,이라니- 너무나 주제가 명확한 것이지. 약속한 건 죽이되든 밥이되든 하고 보는 성격이니, 이것도 참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실은 나중에 정리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뭐 이 기회에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페이퍼는 그러니까, 저 옆에 목록에 있는 편파적 별다섯 목록의 책에 대한 소개가 되겠다. 리뷰를 쓰지 않고 넘어간 책들도 있어 지금 다시 기억들을 끄집어내려니 살짝 난감하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기준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꼭 모든 사람이 좋아할만한 책이 아니더라도, 그 책이 내게 어떤 화두를 던져준다면 나는 그 책을 편애한다. 그게 감성적인 이유든, 이성적인 이유든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저 책들을 편애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볼 작정이다. 써놓은 리뷰가 있는 책들은 리뷰에서 몇마디를 가져올 셈이고, 리뷰가 없는 책들은 그냥 짧게 몇마디 적어놓으련다. (무순)

1. 마음을 보다

밤의 피크닉 - 온다리쿠

이 책이 온다리쿠의 책 중에서 제일 좋았어, 라고 말하면 가끔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책이 제일 좋건 그건 내 맘이지. 나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는 삼월의 붉은 구렁을,이나 굽이치는 강가에서,보다 이 책이 훨씬 좋았다. (그렇다, 고작 세 권을 읽은 것이다)
이 책은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건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온다리쿠의 매력. 흔들리기에 오히려 빛나던 청춘, 그 때이기에 할 수 있던 고민들, 가질 수 있던 마음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이 안에 있었다.
실은 흔들림을 거부하고, 그저 얼른 앞으로만 나가며 어른이 되려 하는 도오루의 모습을 보며 너무 나 자신과 동일시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오루가 그토록 자신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토록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던 것은, 흔들리기 시작하면 본인도 본인을 겉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방비', 실은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로운 문제라고. 그저 조금 흔들리고 무너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지키려 애써왔는지 모르겠다. 감정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고, 실은 저 바닥에 어떤 마음들이 존재함을 알면서 마주치지 않으려 빙빙 돌아가려 애쓰는 내 안의 모습들을 도오루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허둥대지 않으려 늘 애써 여유롭고, 애써 쿨했으나, 실은 누구보다 허둥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험소년 - 아다치미츠루

오늘을, '살아가며', 예전의 어느 한 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다소 현실을, '알고있다고 믿는' 나처럼, 일단 몸과 나이는 '어른인'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고, 과거의 꿈을 떠올리며, 그 때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이 단편집속 작품의 설정들은 내가 아다치 미츠루의 배너를 알라딘에서 보고, 아다치미츠루의 작품을 읽던 그 대학 1,2학년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렸던 그 마음만큼이나 아련하다. 철없고 순수하던 마음이 아련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한 그 때를 떠올리는 마음은 마지막 작품인 '스케치북' 속의 남자가 10년 전 그 카페에서의 자신을 떠올리고는 앉아있기가 불편해져 이내 카페를 나설 수 밖에 없던 마음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내게 아찔하다는 것은 그 시절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철이 들었거나, 혹은 성숙했음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일텐데, 그 시절보다 내가 철이 들었다는 건 다소 슬픈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철이 들었다는 것이 꼭 성숙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실은 진짜 철이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 이 책은 만화책이어서 그런지 아다치미츠루의 인기 때문에 꾸준히 나갔음에도 리뷰가 별로 없나보다. 땡스투를 많이 안겨준 책 ㅋㅋ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사실 내가 시에는 문외한을 넘어서 무뇌아에 가깝다. 지금도 시를 잘 모르고, 여전히 많은 시들은 나로 하여금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올 초 누군가의 소개로 백석의 시를 읽은 후, 잘 사지 않던 시집을 몇 권 사 읽기 시작했고, 꼭 시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밤을 몇 번 맞이했다.
시야 늘 그렇지만, 읽을 때마다 자꾸만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게 되는데, 백석의 이 시집 역시 여전히 내게 그렇다. 그래서 마음이 눅진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은 밤이면 나는 가끔 이 시집을 열어 본다. 반듯하니 잘 생긴 (현빈을 닮았다고 했다가 욕을 먹었던 기억이) 시인의 사진을 표지로 한 시집을 열어보면, 순수하고 투박하고 뜨거운 시인의 마음이 날 것 그대로 담겨져 있다. 말글이 너무 예뻐 몇몇 시들은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역시나 첫마음을 줬던 시(흰 바람벽이 있어)가 여전히 가장 좋고, 소리내어 읽는 글맛을 느끼고 싶을 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제격이다. (푹푹 눈이 나린다.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해하지 못한 시들도 아직 많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새로운 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퐁퐁 솟을 거라는 기대감

2. 세상을 보다

간디의 물레 - 김종철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또한 저자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별 넷과 다섯 사이에서 고민한 이유는 이 책의 현실의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지구 상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상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날은 냉정히 말하면 오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나만 해도, 마음 굳게 먹어도 눈 앞의 달콤한 유혹 앞에 무너지는걸. 그럼에도 별 다섯을 준 이유는,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야 그나마 현실에서 바꿔나갈 수 있는 크고 작은 것들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마음을 바꾸는 책이 큰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이 책 256페이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마음만으로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마음없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바리데기 - 황석영

자신과의 화해가 곧 세계와의 화해의 시작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결국 세계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개개인에게 묻는 것이 틀린 논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게 세상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더욱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너가 그들을 뒤돌아보지 못했잖아, 너가 그들을 미워했잖아, 결국 너부터야, 라는 마치 어르신에게 혼나는 듯한 황석영 선생님의 직설적인 메시지는 참 강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혹하지만 그게 정답으로 가는 첫 걸음임을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별다섯 리스트에 없는 책이다. 실은 별 넷을 줬었다. 내가 감히 황석영 선생님께 별 넷을 줄 만한 인물은 되지 못하지. 내 별은 실은 기대치를 반영하기도 하고, 황석영 선생님께는 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 별 넷을 줬지만, 여기에 올리기에는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넣었다.

3. 교회를 보다

평화의 얼굴 - 김두식

전쟁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병역 및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 앞에 민감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 본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기성 교회의 시각에 젖어 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음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 책은 이런 나로 하여금 그들에 대해 또한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며 향후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갖겠다는 다짐의 시작이 됐다. 

 
* 미디어 취재와 편집,이라는 별 쓸모없는 전공 수업을 듣느라 김두식 선생님의 명강의 '시민사회와 법'을 듣지 못하고 졸업한 건 아직까지도 천추의 한이다
 
무례한 기독교 - 리처드마우

작년에 선물 받아 읽고 넣어놨다가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책. 올해 아프간 피랍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나는 내 목소리를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어,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리처드마우의 무례한 기독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아니다, 실은 내가 얻었던 건 내 마음과 생각에 대한 어떤 권위의 지지와, 그로 인한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설명하지 못하던 내 마음과 생각들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그 누군가의 존재는 가끔 참 고맙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시민 교양'을 이야기한다. 시민교양이라는 번역이 참 평범하고 재미 없게 느껴진다면 '비일상적 정중함'이라는 말로 다시 풀어서 이해해도 좋겠다. 공존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기본을 절대 놓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균형을 잡고 싶은 누군가에게 자꾸만 읽히고 싶어진다.

* 그러고보니 이 책은 오늘 입대한 M에게 가 있나보다. (못받다니 ㅠ_ㅠ)

침묵 - 엔도슈사쿠

영화 밀양을 보고나서 몇 번이나 리뷰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끝내 못썼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끝내 리뷰를 쓰지 못한 책이다. 그냥 어쩐지 나의 깜냥으로는 감당이 안됐다고 할 수도 있겠고, 여전히 결론짓지 못한 것들이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도무지 이 작가는 이 책의 결말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계속 가지고 읽었으며, 이 책의 결말은 한편으로는 충격이고, 또 한 편으로는 감동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주류 기독교계의 반발이 심했다고 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자신의 틀 안에서만 하나님의 성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만큼 편협한 태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편협한 사람이고, 지긋지긋하게도 인간적인 기치지로같은 사람이었음을,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책. 소설로서의 재미도 훌륭하다. 


* 작가 이름으로 태그를 작성하니, 참 서로들 안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읽은 책은 100권도 안되면서 별 다섯 준 책은 또 왜이리 많은지,
세보지는 않았지만 10권에 한권 꼴인듯 하다, 내가 좀 후하긴 하다 ^^

* 아쿠타가와류노스케의 단편집은 문고판으로 읽었던 관계로
리뷰를 좀 더 큰 단편집 읽은 후로 미뤄놨었다. 사놓고는 아직까지 읽지 못했긴 했지만
그러므로 지금도 작성하지 않는다, 실은 좀 귀찮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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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바리데기, 침묵... 밖에 못 봤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던 초기에 읽고 충격받았던 작품으로 두고 두고 내게 질문을 던지던 침묵에 나도 침묵했지만, 오늘은 침묵에 추천한다!

웽스북스 2007-12-11 01:00   좋아요 0 | URL
주옥같은 작품들을 대신하여 제가 추천을 받는군요
그저 영광입니다 ^^

Mephistopheles 2007-12-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도 박도 못하는 태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곁다리를 건너는 페이퍼를 작성해버린 1人

웽스북스 2007-12-11 01:00   좋아요 0 | URL
메피님 실은, 굉장히 부러웠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7-12-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읽어 본 책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뿐이네요. 웬디양님 골고루 읽으셨당. '침묵' 읽어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7-12-11 01:16   좋아요 0 | URL
침묵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좀 엇갈리는 편이에요 ^^ 깐따삐야님이 올해의 책 선정하셔서 작성하시면 거기엔 또 제가 읽은 책이 얼마 없지 싶어요- 다양해보이지만 실은 제가 읽은 책들은 편협하고 좁고, 적답니다. 세상엔 참 좋은 책들이 많아요 그쵸? ㅎㅎ

Hani 2007-12-1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웬디님이 추천하신 책 중에 읽어본 책이 없다는..ㅠㅠ 편애하신 이유를 찬찬히 읽어보고 마음에 담아두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12-11 09:21   좋아요 0 | URL
이건 그야말로 편애라 다른 사람들도 좋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답니다 ㅋㅋ 그래도 덧글들을 보니 모두의 코드에 공통으로 사랑스러운 책도 보이는 것 같네요 흐흐흐

302moon 2007-12-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집과 밤의 피크닉, 저도 편애하는 책:) 글, 잘 읽었습니다.

웽스북스 2007-12-12 00:34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편애하고 있었군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