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매우 좋아하던 선생님의 기도
나는 이 기도에 들어 있는 선생님의 마음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고, 또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후배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가
이 기도를 육성으로 녹음해놓은 파일을 들었다

기도가 끝난 뒤에는 여기저기서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없이 드렸던 채플에서, 또 예배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





자애로우신 주 하나님, 저희들에게 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새삼 떠올리며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는 눈이 어두운 저희들이지만, 저희 내면과 삶의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거리들을 하나님께서 도처에 베풀고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봄이 깊어 가면서 피어나는 꽃들, 물이 올라 초록이 깊어지고 있는 풀, 나무와 아울러, 그것들을 예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족과 친구를 주셔서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배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이웃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과 지식욕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현재 처한 위치에 자족하지 못하고 더 높고 더 나은 삶을 바라게 하는 포부와 희망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움직일 수 있는 몸, 그리고 그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일용할 양식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게 하는 상상력과 소망,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임재를 느끼면서 살게 해주는 믿음을 아울러 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주의 어리고 귀여운 자녀들인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 속에 살아가게 하신 뜻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셔서, 이 세상을 좀더 정의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 속에 함몰되지 않게 해주시고,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해주십시오.

주의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보다 큰 미래를 계획하게 도와주시고, 보다 숭고한 목표를 설정하게 인도해주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부로 부르거나 그렇게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겸손함과 분별력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아울러,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그들에게 주시고,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는 바른 마음을 주시옵소서. 불의를 피하지 않고 거기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여린 마음을 주십시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고통스럽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참된 용기를 주시고, 한 번 저지른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와 결단력 또한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로 하여금 선생을 맹종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가르치는 자의 말과 그의 인격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그것을 예리하게 판별해낼 수 있는 분별력을 주셔서, 배울 것은 배우되 배우지 않아야 할 것은 배우지 않게 하여주소서.

하나님, 주의 어린 자녀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 번민할 때는 오히려 지극히 사소한 일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믿었던 친구가 배신하여 고통스러워 할 때는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아 주시고, 떠나간 옛 친구의 자리에 새로운 친구를 주시옵소서. 

학업이 원하는 만큼 진척되지 않아 자신감을 잃을 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미래가 불확실 하여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환한 빛이 되어 길을 밝혀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여 철저하게 반성하되,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와 관용을 베풀 수 있는 큰마음을 주십시오. 

주여, 주의 어린 자녀들이 압도적인 제도적 악과 부정의 앞에 무력감을 느낄 때는 거기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세상의 불의로부터 도피하여 자신의 욕심과 계획에만 몰두할 때는 따끔한 깨우침을 주시옵소서. 

젊음이 핑계가 아니라 기회가 되게 해주시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준비되지 않은 가능성은 곧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환상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따라서 미래에 대한 큰 포부를 가지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준비된 사람을 쓴다는 점을 명심하고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겸손의 조건일지언정 교만함과 우월감의 조건이 되지 않게 해주시고, 신앙 활동이 결코 게으름이나 공부하지 않은 것의 핑계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주의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동서고금의 많은 고전을 통해 거대한 영혼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목들 곁에서 그들의 키가 자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앞당길 수 없으며, 내 스스로가 변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깨달아, 일상 속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며 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여기 선생들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서 가르치고 있지만 저희들의 학문과 인격과 믿음이 부족하고, 정성이 부족하여 도무지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주의 어린 자녀들을 저희들이 원하는 만큼 바르고, 당당하고, 정직하고, 숭고하게 키울 수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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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이후 류선생님께서 서울에 오셨을 때 선생님을 몇번 뵜고, 메일을 몇번 드렸고 선생님께 가장 긴 답장을 받는 기록을 여러번 갱신했다 (^^v) 선생님은 두줄, 세줄 촌철살인 메일이 주특기셨는데, 난 스무줄도 받아봤었다, 헤헤 그러고는 맨날 이번이 갱신이다, 이번이 갱신이다 하셨었지-

내가 좋아했던 다른 선생님도 한 분 더 계셨는데, 그 사실을 학교 다닐 땐 류선생님께 끝끝내 비밀로 했다가 졸업 전 사은회 때 딱걸렸다. 재학생 대표로 선생님께 편지를 썼는데 류선생님은 내가 당연히 본인에게 편지를 쓰셨을 거라고 생각하셨나보다. 하지만 류선생님은 너무 경쟁률이 높았고, 내가 좋아했던 다른 선생님은 그 때 막 부임했던 분이셔서 상대적으로 편지를 쓸 만큼 친한 사람이 없었다. 난 류선생님이 알면 안된다며 끝까지 편지를 거부했으나, 신선생님께 편지를 아무도 쓰지 않는 상황이 오는 건 또 막아야해서 결국 편지를 썼다 (무슨 교수님 양다리도 아니고 ㅋ) 결국 난 몇개월 후 서울에서 선생님께 처절한 복수를 당했다. 흑!

시간이 흐르고, 매우 사소한 일로 '완벽할 거라 생각했던' 선생님의 모습에 대한 나의 존경에 약간 금이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날 이후로 나는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참 어렸다. 지금은 여전히 이런 날이면 선생님이 그립고 생각나는데, 여전히 참 좋은데, 세월이 무책임하게 쌓이고 흘러버려서 더 이상 연락을 드리기가 어렵다. 대신 난 선생님의 글방에 들어가 글을 몰래 훔쳐읽고 이번에 출간하신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샀다.

우리학교는 기독교학교이면서도 '기독교문화' 라는 전공을 매우 경시하는 모순된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는데, 결국 기독교문화라는 전공은 '모두가 들어야 할 교양'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내세워 선생님은 현재 내가 졸업한 언론정보문화학부가 아닌, 교양학부에 계신다. 말도 안통하는 1학년 애들 데리고 수업을 하실 선생님의 고충이 눈에 훤하다. 나도 1학년 때는 선생님의 수업을 못알아들었다. 답답한 마음이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 하다. 옛 제자들이 얼마나 그리우실까.

쌓여버린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이젠 안되겠다,며 메일을 한번 써야지, 써야지, 하지만 역시나 자꾸만 망설이고, 쓰지 못하게 되는 건 내가 지금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 못함,이 가장 크다.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분명 알고는 계실테지만, 그리고 분명 내 삶을 선생님의 방식으로 응원해주실 게 분명하지만, 난 그래도 역시나 메일을 쓰지 못하겠다. 학교에 한 번 찾아가려 해도 원, 너무 멀어서 말이지 -_- 내년 스승의 날엔 선생님 좋아하시는 화개제다의 녹차와 함께 편지를 보내봐야지. 실은 올해 스승의 날 계획이었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결심만 하는 건 아닌가몰라.

선생님의 그 '신기록 답장'을 찾아 올려본다. 흐흐- 벌써 3년도 더 된 편지. 이 때는 지금 있는 업종이 아니고 다른 업종에 있었는데, 나는 3개월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그만두기 전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이 편지에서 언급된 약속)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

"지금 니가 쓰고 있는 글에는 니가 없을 거다"

그 말이 맞았다. 그 글에는 내가 없었다. 나의 기술, 혹은 재주만 있었을 뿐 진짜 내가 없었고 그 곳을 나왔던 건 매우 잘한 일이라 믿는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제자에게 무조건적인 격려만을 보낼 수는 없었던 선생님, 또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 말씀하실지 궁금하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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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먼댓글(1) 좋아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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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선견지명, 있는 거야 없는 거야 -_-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12-17 22:27 
    내게 멘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 분은 대학시절 선생님이신데 선견지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선생님 관련 글을 쓴지 불과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걸 선견지명이 있어서 쓴 건지,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쓰지 않았을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시 쓰자니 너무 선생님 얘기를 울궈먹는 것만 같아 그냥 오늘의 태그는 이 글로 대신한다. (엮인 글)
 
 
웽스북스 2007-12-0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접기는 또 안되고 에잇!

마늘빵 2007-12-01 09:32   좋아요 0 | URL
접기는 여전히 안되시는군요. 간단한데... -_-
접고픈데를 위부터 아래까지 긁고 접기버튼 클릭 - 저장. 끝.

웽스북스 2007-12-01 09:47   좋아요 0 | URL
어어어 됐어요 됐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고 기뻐하는중 ㅋㅋ

마노아 2007-12-0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스런 기도였어요. 아름다운 사제지간이군요. 웬디님은 부자세요.

웽스북스 2007-12-01 23:28   좋아요 0 | URL
아흑 하지만 연락을 못드리고 있다는 거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