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화성의 인류학자
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다소 독특하다. 지난 봄, 지인들과 '인생의 책'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엄밀히는 경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민정언니가 가져온 책이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심지어는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이 책을 데려왔다. 와인을 한 잔 마셨던 탓이라 변명하지는 않겠다. 하하! 그냥 그날의 분위기가 그랬다. 후회같은 건 하지 않아요, 책값이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ㅋ

이 책은 뇌신경학자인 올리버색스가 그가 만났던 일곱명의 환자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걸 하나 고르라 하면 그것은 단연, 나의 무지함이다. 다양한 뇌신경 질환에 대해 '아 이런 병도 있구나'라고 깨달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무지함이라면, 살면서 수도 없이 느끼는 것 아닌가.

물론 나는 다양한 뇌질환 등에도 굉장히 무지하다. 하지만 무지는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폭력을 낳는다지. 나의 무지함은 스스로 나도 모르게 적용시켜 왔던 '정상'이라는 기준이 실은 얼마나 일방적인 것이며, 이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정상이 될 것을 강요한다는 게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신체에 이상이 있어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경우에까지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심봉사는 당연히 눈을 떠야 하고, 초원이는 자폐증을 고쳐야 행복한 거겠지, 심봉사로, 초원이로는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없겠지, 라는 사고 방식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버질은 눈을 뜨자마자 큰 혼란을 느끼고, 삶의 위협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자는 시력회복이라는 선물이 저주로 탈바꿈했다는 표현을 쓴다. 나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가며 살아오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보게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의 이전 세계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상이라는 기준을 우리 나름대로 만들며 제공하던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 행복할 것을 강요해온 것이 그들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 하지만 역시나 쉽지만은 않은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 편협함을 스스로 일깨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었다.

웬디, 웬디의 따뜻함으로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다름을 마음 가득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길, 라고 언니는 책 앞에 메모를 해줬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그들의 다름에 대해 편협한 한 사람인 것을. 언제쯤 나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여전히 기약은 멀고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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