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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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당연히 알 수 있듯, 바리데기는 우리 나라의 전통 설화인 바리공주 설화를 그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다. 바리공주처럼 일곱번째 딸로 태어나 버림받을 뻔했다 하여 '바리'라고 이름지어진 북한 소녀. 그 출생만큼이나 그녀의 운명 또한 참 지속적으로 기구하다. 한 번도 역사의 중심에 선 적은 없지만, 항상 역사와 세계의 직격탄을 맞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할까? 

이 책은 그의 전작인 손님, 그리고 심청의 연장선 상에 있다.
예전에 심청을 읽고 간단히 리뷰하면서 이런 글을 썼었다. 

손님이 굿의 형식으로 한민족의 역사와 한을 잘 풀어냈다면
이번엔 역사와 함께 성숙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좀더 방대한 역사를 써내려갔다


전통 설화의 설정을 빌려온 한 여성이 온몸으로 역사를 살아내면서 성숙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심청의 연장선 상에 있고, 전통 무속의 형식을 빌어 세상과의 화해를 꾀한다는 점에서 또한 이 작품은 손님의 연장선 상에 있기도 하다. 심청의 여주인공이 19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다면, 바리데기의 여주인공은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21세기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손님이 개인과 개인의 화해를 통한 세계와 세계의 화해를 추구했다면 이 책은 자신과 자신의 화해를 통한 개인과 세계의 화해를 시도한다. 

자신과의 화해가 곧 세계와의 화해의 시작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결국 세계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개개인에게 묻는 것이 틀린 논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게 세상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더욱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너가 그들을 뒤돌아보지 못했잖아, 너가 그들을 미워했잖아, 결국 너부터야, 라는 마치 어르신에게 혼나는 듯한 황석영 선생님의 직설적인 메시지는 참 강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혹하지만 그게 정답으로 가는 첫 걸음임을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었고, 세상은 여전히 희망적일 수 없음을 암시하며 끝내는 이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나약한 개인일 뿐인 인간 개개인이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이 세계의 유일한 희망임을 말하기에 또한 지극히 이상적이기도 하다. 어떻게 읽으면 매우 희망적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읽으면 매우 절망적이기도 한 이 책 안에는 결국 인간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다,는 황석영 선생님의 바람이 간절히 녹아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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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10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구입을 망설이는 중인데~~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만요!
요즘엔 무거운 독서는 피하는 중이지만 좋은 서평에 추천 꾸욱!

웽스북스 2007-08-10 12:50   좋아요 0 | URL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무거운 책들을 피하다 보면 또 어느순간 너무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싫고, 그래서 다시 무겁게 읽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고, 암튼 적절히 균형감 있게 읽는 걸 좋아한답니다 전 ^^ 유치뽕한 책들도 가끔 얼마나 재밌는데요 흐흐

leeza 2007-09-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보고 나니깐 왠지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요즘 여기저기에 자주 나오는 책이다 보니 오히려 더 미뤄지게 된다는... 인간에게 희망을 보게 되는 그 날을 위해~ 추척 꾸욱 누르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09-08 23:58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미흡한 서평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