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승리자 박열 인문의 숲 나무 5
후세 다쓰지.나카니시 이노스케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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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박열을 보고 와서 박열과 후미코에 대해 읽어보기로 했다.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저는 저주하기 시작한 천황을 끝까지 저주하고 싶다, 있는 힘껏 옥사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저주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저주해서 죽이고 싶다, 천황을 저주해서 죽일 힘을 끝까지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1926년 4월 6일, 지바 형무소에 투옥된 첫날부터 살아 나오기 전 아키타 형무소에서 보냈던 마지막 날까지 냉수마찰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 건강법이 저를 살아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너무 너무 억울한대, 나를 억압하고 내 삶을 망가뜨린 거대한 권력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때, 분노가 넘칠때

내 비록 힘이 없으나 너의 저주로 죽이고 싶다는, 그럴수 있을 거라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중에 저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 기록 르뽀

후세 다쓰지는 인권 변호사였다. 

전쟁으로 미친듯이 질주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이 횡횡할때 인권변호사를 했으니, 이 양반도 참 보통사람은 아니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을 살다 일본의 패망후 22년만에 출옥한 박열에 대해 변호사스럽게 썼다.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지키며, 꼼꼼하게, 하나하나, 모두, 후미코까지 


엄격하게 사실에 기반해 의미를 밝히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누가 경찰 관헌의 음험함과 비겁함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장.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팩트의 나열로 멈추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쓰기도 하니 문장에 활력이 있다. 

박열과 후미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느껴지고, 후세 다쓰지 이 사람도 매력적이다. 

변호사였기 때문에 갖고 있는 재판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해석하며 

박열과 후미코의 편에서 분노하고 시원해하며 온전하게 기록하여 그들을 되살린 것은 후세의 공이다. 


후세 스스로 밝히듯이 박열에 대한 평전도 전기도 아니고 대역사건을 중심으로 한 박열의 단편을 쓴다고 했는대 

그 단면이 박열의 정체성이다. 

젊은 아나키스트, 속시원히 천황 암살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나를 죽이라고 법정에서 덤비는 깡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랬다가 22년후 마침내 출옥하니, 정말 운명의 승리자 박열이다. 

해방후 답답한 한반도 정세에서 어지러운 일들을 겪기 전이니 그야말로 빛나는 박열과 더불어 후미코동지와의 사랑까지.



2. 

재판결과 사형이 선고된 박열에게 천황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한다는 은사장을 들고온 형무소 소장이 찾아 왔다. 

"...... 일본의 천황으로 부터 은사네 뭐네 하는 은혜를 입을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네. 단지 나는 내가 저주하고 싶은 대로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영이되어, 죽으면 죽은 영이 되어 천황을 저주 할 뿐, 그런 은사령 따위는 관심없다네."

관심없다며 받지않는 천황의 은사장을 들고 어쩔줄 몰라하는 소장이 가엾어진 박열 

"천황이 보낸 은사장은 받을 생각이 없지만, 자네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자네를 위해서 그 은사장을 맡아두기로 하겠네."

소장은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하고, 이에 대한 후세의 평 

여기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가 박열 군의 기백과인간 박열 군의 순정이 나타나 있어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이런 대목이 딱 묘하다. 

죽음을 각오한 박열의 기백은 황제 따위의 은사장으로 죽지 않게 되었다한들 관심없다고 한다. 

보통 이정도 견결함이면 황제의 명령에 복무하는 소장이 난처하건 말건 알게 뭐냐 싶은데

은사장들고 어쩔줄 모르는 소장을 보면 또, 그래 까잇거 너를 위해 내 큰맘먹고 맡아 둘께, 이러는 거다. 

유연하고 배짱이 있어. 자유로와 발랄한 영혼, 박열의 특징이다. 


박열처럼 강렬한 삶을 살았던 사람 조차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것은 그의 사상때문이고, 해방후 북으로 간 거취때문이겠지. 

산자가 기록하는 역사는 늘 이렇게 비열하다. 

배신자들이 쓰는 역사에 정의로운 싸움을 했던 사람들은 지워버리는 거지.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 전문이 한 장으로 처리되어 실려 있다. 인상적이다. 

1920년대부터 이미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했던 지식인들은 일본의 식민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대체로 전향했다. 

남아서 무장독립운동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은 좌익, 사회주의 계열이고 

의열단도 무정부주의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에 가깝다. 

폭력혁명론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폭력을 내세우니, 신선하네. 

뭘해도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인 요즘 보면 파격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들은 민중 속에서 민중과 제휴하여 끊임없이 폭력, 암살 등의 파괴를 행해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겠다. 그들 생활의 불합리한 모든제도를 타도하여 모든 인류를 해방하겠다.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못하고, 사회로써 사회를 고정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조선의 건설을 촉진하자. 


박열 뿐 아니라 후미코의 성장과 천황관도 흥미롭다. 

1923년, 지금보다 100년전을 산 박열과 후미코가 2017년의 사람들보다 더 급진적으고 패기 있다. 

매력적이라고 할 밖에. 

도덕이라는 것은 언제나 강자에게 유리한 대로 다듭어지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강자는 자기 행동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약자에게 복종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약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강자에 대한 굴종의 약속이 이른바 도덕인 것입니다. 

맞아요. 후미코. 정말 그래. 


박열은 모르겠고, 후미코는 더 읽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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