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4
김호웅.김해양 엮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1. 

그는 일본 감옥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실의와 절망에 잠기는 대신 총칼을 붓으로 바꾸어 들고 이승만, 김일성, 모택동 이라는 거대한 우상에 차례로 도전하였으며, 어두운 철창 속에서도 내일 솟을 태양을 의심하지 않았다. 22년 동안의 비인간적인 생활을 끝맺고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는 어느덧 65세의 나이가 되었다. 

저자의 말 중


조선의용군 분대장으로 항일전쟁을 했던 한 젊은이가 태항산 전투에서 다쳐 일본 감옥에서 다리를 절단하고 

해방된 조국에서는 이승만, 김일성과 차례로 싸우고 중국으로 가 다시 모택동과 싸우다니. 

무슨 인생이 이러냐. 


어린 김학철에게 인상깊었다는 원산부두노동자 파업의 한장면 

처음에는 그저 경찰대가 파업 깨기꾼들을 끌어다 붙인 까닭에 부두 노동자들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 깨기꾼들이 어용 단체인 함평노동회에 매수된 깡패들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뒷날의 일이다. 경찰대가 담벼락처럼 둘러서서 뒷받침해주는 데 기운을 얻은 깨기꾼들이 사기가 버쩍 올라 최후의 일격을 가해왔을 때였다. 

노동자들이 뒤에 있던 화물선의 일본 선원들이 고함치고 기적을 울리며 "파업 만세!" 응원해 주더라는 거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인대 

하! 용역깡패와 경찰의 합동작전은 역사도 깊구나. 파업의 역사와 동시 잖아!


해방후 진보정당, 사회단체의 집회에서 박헌영이 연설하며 

"위대한 소련군과 미군에 의해 우리나라가 해방됐다."는 것을 강조하자 김학철이 벌떡 일어나 박헌영의 연설을 중단시킨다. 

"우리 조선 의용군은 일본이 투항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무장투쟁을 견지했습니다. 이 나라의 해방을 위해 숱한 사람이 피를 흘리고 또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누구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서 남이 해방을 시켜줄 때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않았단 말입니다." 일갈하고 목발을 짚은 김학철이 뚜벅뚜벅 회장을 나가버린다. 


팔짱을 끼고 기다리던 사람들, 

무장투쟁을 한 사람들을 일본에 팔아먹어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 해방후 권력을 쥐어버리니, 

무장투쟁을 한 사람들은 잊혀지고,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지금까지 역사의 심판없이 부귀영화를 누린다.

역사가 비어버린다. 


해방공간의 김학철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것은 가열찬 전투장면이나 선 굵고 기복이 심한 비극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조선의용군 생활의 에피소드와 낙천성, 즉 성스러운 전쟁의 비장함보다도 생활미가 넘치는 일화 등과 사랑스러운 의용군 전사들의 성격등이다.  

김학철의 특징은 이 낙천성이다. 

어쩌면 그의 평전은 65세가 되도록 굽힘없이 싸울수 있는 힘이된 

이 기이한 낙천성의 근원이 뭔지 밝히는 작업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를 다친채 포로가 되었다가 일본으로 이송되어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그동안 치료되지 않은 다리를 절단한채로 3년을 고름을 흘리며 징역살이하다 해방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옥수수만 먹아야 했던 조선의용대 시절부터 징역살이 하는 시기까지 

도무지 이 사람은 그늘이 없다. 

소개되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거나, 황당하거나 아니면 적국일망정 우정을 나눈 사람들과의 이야기들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하고 이런 감정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쿨하고 담담하고, 대체로 명쾌하고 무엇보다 낙관적이다. 

김학철의 힘은 저 낙관이다. 


해방후 서울에 온 후에 

어머니가 오셔서 외다리 돼버린 아들을 보고 눈물을 뿌렸으나, 김학철이 워낙 새끼손가락 하나 다친 것만큼도 대수로워 하지 않는지라 더 울 거리가 없었는지 차차 눈물을 거두셨다. 

이런 식이다. 이건 엄청 슬프고 기가 막힌 장면인데, 다리하나를 잃고 대수로워하지 않는다느니, 더 울거리가 없다느니 

김학철의 여러 수기와 작품들, 회고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평전이라 이야기가 생생하다. 

참으로 독특한 낙관과 명랑함. 저 격동의 시절에 말이다. 


선견대는 정치위원 김학무가 영솔하는데, 대원들로는 윤공흠, 조명숙, 김승곤, 임평, 김학철등 모두 15명이었다. 

윤공흠은 일본 비행학교 출신으로 해방후 북한에서 상업상장관등을 역임하다가 1956년 당중앙전원회이에서 '당내에 존재하는 개인숭배와 그 엄중한 후과'에 대한 비판을 한 탓에 쫒기는 몸이 되어 동료 중앙위원 서휘 등과 함께 중국으로 탈출했으나, 페니실린 쇼크로 산서성에서 객사했다. 

이런식이다. 

일제 시절에 독립투쟁한다고 중국군대들어가 싸웠던 사람들이 조국에 돌아 오지만

남쪽에서는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독립투사들을 조롱하며 빨갱이라고 죽이고 

북으로 갔더니 김일성의 우상숭배에 반대하다 죽임을 당한다. 

이런 독립투사들은 남과 북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잊혀졌다. 

이승만 독재자인거야 알고 있었지만, 김일성 이 인간도 말종이다. 

지 권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 가장 나쁘고, 그 권력을 지키기 사람들을 함부로 죽인다.

남쪽의 이승만, 북쪽의 김일성 두 원흉때문에 여전이 분단국가인 남쪽에선 아직도 빨갱이 타령을 하고 

북쪽에서는 3대째 권력을 세습하며 독재를 한다. 지금까지도. 

제때 역사적 평가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렇게 오랬동안 사람을 괴롭힌다. 

역사정리는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제를 위한 교통정리다. 



2. 

참, 중국도 황당한 나라다. 

1967년 12월에 연행한 사람을 7년 4개월동안 유치장에 가둬뒀다가 1975년 4월에야 재판을 한다. 

정말 어처구니 없다. 

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김학철의 죄가 무엇인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는 거지. 

어떻게 사람을 구속해서 7년을 재판없이 유치장에 가둬둔단 말이가. 

철창으로 바로 보이는 높은 벽돌담 너머의 비슬나무가 봄 잎 피고 가을에 잎 지기를 일곱 번 되풀이하는 동안 김학철은 예순살, 뼈만 앙상한 산송장이 됐다. 

공권력이 잔인하다. 

중국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는 시간에 쫓기듯이 글을 쓰고 가족들과 그나마 편안한 말년을 보낸 것 같아 다행이다. 


전체적으로 책의 서술이 매끄럽지는 않다. 

김학철이 스스로 쓴 많은 수필과 기록물 덕에 에피소드가 생상한건 장점이고 뒤로 갈수록 동어반복이 많은건 단점이다. 

특히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록한 장은 평전의 내용으로 불필요하다. 

작자들이 김학철을 존경하여 넣어 놓은 것은 알겠는데. 굳이. 

김학철의 삶은 그 자체로 어떤 문학보다 감동적인걸. 


우리가 잘 모르는 잊혀진 역사 

지난여름 윤동주를 읽고 영화 박열을 본 김에 우리가 잘 모르는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둘러 보고 있다. 

적어도 알고는 있는 것이, 조국을 위해 목숨걸로 싸운 투사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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