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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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여행 이후 이현우 선생의 책을 찾아서 보고 있다. 

이 정도로 책에 집중해서 책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할 것 같아. 


우리가 너나없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어 한다면, '책을 읽을 자유'는 자유의 최소한이다......'닫힌 사고'와 '빈곤한 생각'만큼 우리를 옥죄는 감옥도 없을 테니까.

맞다. 그러나 보통 닫힌 사고나 빈곤한 생각을 하는 당사자들은 본인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지 잘 모르더라고. 

언제든 혹시 내가 빈곤한 생각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책을 읽을 권리'가 보편화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극히 최근의 일이지만 그것은 이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에 속한다. 


내가 어떤 책의 저자라는 사실이 대견하고 기쁘다. 똑같이 여건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더 좋은 책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2010년 두번째 책을 내는 저자가 스스로 설레이고 행복했나봐. 좋아보인다. 


돌이켜보면 가장 두려웠을 때는 책에 짓눌려 있을 때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없을 때였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않고, 읽어도 머릿속에 글자로 남지 않을 때였다. 책장을 갉아먹고 사는 책벌레에게 책이 맛 없어질 때보다 더 끔찍한 순간은 없지 않겠는가. 

맞아. 나도 이런 상태일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있겠지.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일때 나는 스스로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느낀다. 



2. 

지식인인란 무엇인가? 지식인에 관한 '고전적인' 정의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1966년의 일본 강연에서 내린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이이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웃었다. 자신과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책 자체에 대한 설명, 주로 출판사에서 책소개를 하며 알려주는 정보들을 나열하지 않는다는 것.

이현우라는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맥락으로 읽는지가 자유롭게 서술되어 좋다. 

책에 대한 수다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다. 

아카데믹으로 잔뜩 힘주지 않으니 좋고, 진지하지만 내세우지 않으니 좋다. 

소개하는 책을 꼭 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도 좋다. 


가령 우리말을 학대하는 듯한 직역투의 문장에서 원문과 외국어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면 과장일까? 

아니다. 번역하는 원문의 외국어는 잘 아는지 모르지만 한글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던 번역이 종종 있었다. 

우리말을 학대하는 듯하다는 표현은 정말 적절해. 

우리말을 누더기 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학대한다는 표현을 읽고보니 이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에는 영혼이 있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불행하게도 인간의 부도덕한 행동에서 빚어지는 악보다도 더 관리가 불가능한 것은 합리적 행동이 산출하는 악이다. 바우만이 드는 대표적인 예가 근대 관료제다. 그것은 '도덕적 판단' 이아닌 '규칙에의 복종'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관료의 도덕성은 명령에 대한 복종과 빈틈없는 업무 수행으로만 판단된다. 사실 20세가의 역사는 그러한 '합리성'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역사적 교훈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바우만은 아우슈비츠와 굴락, 히로시마의 교훈을 우리가 철조망 안에 갇히거나 가스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한 사례들이 진정으로 충격적인 것은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도 가스실의 경비를 서고, 그 굴뚝에 독극물을 넣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위로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책임'이 없지만 사람들은 죽어나가는 것이 바로 유동적 근대의 공포인 것이다. 

정말 그래. 가스실의 경비를 서며 나는 단지 명령대로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나쁠 수 있겠는가. 끔찍한 일이다. 


다양한 장르의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고 소개해 주지만 관통하는 몇가지는 인간다운 삶과 독서의 즐거움이다.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 ^^


중용적 태도에 대한 공자의 말을 이현우선생이 알려준다.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나 기적을 행하려 하는 것, 그럼으로써 후세가 자기에 대해 말할 거리가 있게 하려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삼가는 것이다!"

그러게. 뭘 그렇게 잘난 척하고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성찰로 나는 읽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그의 다음 편력도 기대하고 있다.

역시 나는 블로그로 읽는 것 보다는 책으로 읽는 것이 좋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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