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 서정시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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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동주는 좋아하는 시인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진 사람들의 영혼을 밝혀주는 촛불이랄까. 

1988년 처음 발행된 후 개정판이 나오고 2004년 재개정되어 나온, 잘 씌어진 평전이다. 

윤동주에 대한 애정 뿐아니라, 일제시대 북간도 명동과 용정의 뜨거운 분위기가 생생하고 

무엇보다 사료와 함께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구술이 꼼꼼해서 더욱 신뢰가 간다.


해방전후사, 한국 근현대사를 전혀 안읽은 것은 아닌대, 만주로 이주했던 한인들의 역사를 처음 보았다.  

저렇게 치열하고 열심히, 끓어오르는 솥단지처럼 뜨겁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구나. 

만주의 발견이랄까.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윤동주와 그의 이종사촌이자 절친 송몽규의 어린시절과 젊은날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그렇다고 과하게 찬양 일색도 아니며 

시대상황을 밝히고 가계의 기풍을 소개하며 객관적으로 동주와 몽규의 마음을 읽는다. 

오래간만에 좋은 평전을 읽었다.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고 아름답다. 

윤동주의 삶을 해석하기 위해 자료를 검토하고 그의 자취를 더듬어 우리에게 알려준 송우혜에게 고맙다. 

윤동주의 삶에 걸맞는 평전이다. 



2. 

일제시대를 살다 읽찍 죽은 청년, 시를 읽으며 틀림없이 마음결이 고왔을 청년이다, 했는데 

명동과 용정의 당시 분위기를 보니 

국가없는 식민지의 아들로 살며 고통과 분노 그리고 성찰이 있었을 것이다. 

유복할 뿐 아니라 대대로 지역에서 존경받는 집안의 아들이다. 

이 시대의 용정은 굉장히 진취적이고, 여성들도 지혜롭다는 느낌이 있어. 

아래위 예를 강조하던 무능한 지배계급의 몰락으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은 인민들이니 

굳이 남녀차별이나 출신에 따른 차별까지 지키고 당하며 살아지겠냐고. 


어쩌면, 생긴것도 준수하니. 윤동주는. 시처럼.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 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그렇다! '부끄럼'이란 것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아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럼에 마주서자면 그의 전 존재, 그의 전 중량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서본 경험이 없는 한 이토록 가슴을 치는 절창은 솟아날 수 없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를 보며 궁금해지던 부끄러움 


수치 앞에서 정직했고 성실했다. 그가 그럴수 있었다는 건 아마도 그가 청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으니라. 그것은 신의 축복이다. 

송우혜의 말이 맞다. 

수치앞에 정직하고 성실한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 아닌가.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이것을 20대의 청년이 했다는 것이, 그것을 시로 썼다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맑은 영혼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3. 

함께 구속되어 동일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비슷한 시기 감옥에서 죽은 몽규와의 동주일 삶을 

이제야 읽으며 가슴을 친다.  


일제가 징역 2년에 처한 송몽규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민족독립의식의 앙양에 힘썼다는 거다. 

실상 골방에서 친구들 몇명하고 의견을 나눈거다. 

행위가 없다. 폭탄을 터트린 것도 아니고, 그 준비도 아니고, 데모를 조직한 것도 아니고 

시절이 엄혹하니, 부디 때를 기다리자고 한 것 밖에 없다. 

이게 치안유지법 위반이고 징역 2년을 선고 받는다. 

사상이 범죄가 되는 황당하지만 살벌한 법이다. 


일본에서는 패전과 함께 맥아더가 점령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후 1945년 10월 4일 폐지된 치안유지법이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아직도 살아 여전히 인민의 사상을 검증하고 벌한다. 

우리는 몽규, 동주보다 자유로운 땅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이 마땅히 부끄러운가. 


동주는 젊은 나이에 일본 감옥에서 죽고 

해방후 그의 벗으로 윤동주의 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강처중은 좌익이라고 체포되어 사형선고 받았다가 

6.25 전쟁이 터져 월북했다. 

그리고 우리는 강처중의 존재를 잊는다. 


동주와 함께 몽규와 강처중을 호명하여 정당하게 소개한 송우혜에게 다시한번 고맙다. 

참담한 근현대사를 딛고, 우리는 무엇이 마땅히 부끄러운가. 



뱀발 

일본 교토 여행 준비하며 하필이면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읽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번 검토되었다는 미시마의 탐미보다 

식민지 감옥에서 죽어 이름조차 잊을 뻔한 동주의 부끄러움과 참회가 어찌나 맑고 아름답던지

이런식의 민족적 정서가 깔린 비교 의미없다 생각하는대  

동주에게 미안하고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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