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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무선) ㅣ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1.
몸도 약할 뿐더러, 달리기를 하여도 철봉을 하여도 남에게 뒤지는 데다가, 선천적인 말더듬 증세가 더욱더 나를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모두들 내가 절간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딴 절 주지의 아들 미조구치
미시마는 탐미문학의 거봉이라고 책표지에 소개된다.
탐미주의, 탐미문학이라고 소개되는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배불러 한가한 자들의 소일거리라서, 탐미란 나른하고 지루할 뿐 아니라 대체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미조구치, 이 아이는 시작부터 예민하고 소외되어 외롭지만 그래서 고집도 세다.
게다가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시기. 전체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폭력의 시대에 예민함이나 허약함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시작이다.
교토 여행을 앞두고 읽었다.
2.
이 시대의 작가들은 흔히 그러는대 일본은 유난히 여성혐오가 심하다.
미시마는 장난 아니구만.
이웃의 예쁜 소녀 우이코는 군인의 아이를 갖더니 탈영한 군인을 배신하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절에서 하얀 젖가슴을 꺼내 찻잔에 젖을 짜서 젊은 군인에게 준다.
심지어 어머니는 모기장 속 결핵에 걸린 남편과 아들이 누운 옆에서 친척 남자와 정사를 나누고,
이 장면을 목격한 아들 미조구치의 등 뒤에서 아버지가 그의 눈을 가린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가학적인 감성이 참 불편한다.
금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결핵에 걸린 아버지와 말더듬이 미조구치이고
여성들은 금각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 아니라 언제든 욕망에 옷을 벗고, 속된 욕심으로 가득한 멍청한 존재다.
청년이 된 미조구치가 미군에게 몸파는 창녀를 발로 짓밟고 차는 장면에서 일단, 책을 덮었다.
찌질한 남자의 여성혐오에 대한 보고서를 탐미의 이름으로 더 읽어야 하는건지 생각 중이다.
다 읽은 책만 리뷰를 쓴다는 기준을 위해 이 혐오를 더 보아야 하는가. 심지어 탐미.
3.
나는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도 오만하였다. 폭군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은 꿈일 뿐, 실제로 착수하여 무엇인가를 해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였기 때문에, 무엇인가 남들을 이해시키겠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 눈에 띄는 것들이 나에게는 숙명적으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독은 자꾸만 살쪄 갔다. 마치 돼지처럼.
어떻게 고독이 돼지처럼 살쪄갈까.
고독이란 마르고 가냘픈 결핍이 아니단가.
그러나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살쪄가는 고독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고독은 학처럼 여위는 것이 아니라, 돼지처럼 살찌는 것이 더 어울릴 수도 있구나.
이런 문장이 탐미 인가.
나는 어두운 새벽길을 곧장 달렸다. 돌멩이도 나의 발길을 방해하지 못하였고, 어둠이 내 앞에 자유자재로 길을 터 주었다.
우이코를 보기 위해 미조구치가 달려간다.
나는 길 쪽을 엿보핬다. 멀리 하얗고 희미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새벽의 색깔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우이코였다.
섬세한 감성과 예민한 감성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