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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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사람들의 심미안은 나와 다를 뿐 아니라, 뭔가 석연치 않다. 

게이샤와의 사랑이라. 

특히 패전후 1960년대까지 시기의 작가들은 유난히 여성을 혐오한다. 

사랑을 해도 강박적이고 폭력적으로 

물론 야스나리의 문장은 거칠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잘 다듬어진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세련되게 흐른다. 

부드러운 비단 폭 안에 작은 바늘 하나 숨겨진 듯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억울하지만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사는 여자가 아름다운 것처럼 

여성은 슬퍼야 아름다운 것처럼 

남자니까 염치없이 이렇게 쓴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더라. 

문장이 매끄럽고 섬세한 것은 사실이다만 


한량 시마무라와 이세상이 아닌듯한 눈덮인 국경 마을 게이샤의 사랑이 기묘하다. 

애써 억누르다가 매달리고, 달아 오르고, 삐지고, 부르고, 기다리는 것은 모두 섹시하고 착한 고마코의 몫이고 

시마무라는 구경하듯이 못이기는 척 밀땅을 한다. 참 거슬려.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확실히 노벨문학상은 제국주의 남성의 것이라는 생각을 또 했네.



2. 

그럼에도 이 소설이 재미 없지는 않다.  

"요 앞 마을 중학교에선 눈 온 아침에 기숙사 2층 창문에서 알몸으로 눈에 뛰어든대요. 몸이 눈 속에 푹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죠. 그래서 수영하듯 눈 속을 헤엄치며 돌아다닌대요. 보세요. 저기도 제설차가 있어요."

여성에 대한 비틀어진 시각을 세련되게 포장한 것이 내내 불편하면서도 

이런 문장은 재밌어서, 페이지가 쉬 넘어간다.  

나두 해보고 싶어. 

전봇대 전등이 눈 속에 파묻힐 정도로 눈이 많이 온 아침에 기숙사 2층에서 알몸으로 눈 속을 헤엄치는 것 

눈, 아침, 알몸, 그리고 헤엄이라니. 절묘한 이미지의 조화.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진 산을 바라보노라니, 감상적이 되어 시마무라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졋다. 

이런 문장은 정말 사람의 살결을 그리워지게 한다. 


"이 다음에 눈보라가 밤새 휘몰아칠 때 한번 와보세요. 올 수 없을 테죠? 꿩이며 토끼가 인가로 도망쳐 들어와요."

꿩이며 토끼가 문을 두드리며 창고로 들어오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이라니 

두렵고 설레이는, 저 밤을 경험하고 싶어.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얀 눈이 쌓이는 국경마을, 산골짜기, 밤기차, 온천, 산불, 게이샤 

일본적인 이미지라기 보다는 남자들의 로망을 잘 그렸다. 현실과 비현실의 꿈같은 경계. 

야스나리의 주제는 슬픔이구나, 그러나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뭐랄까 그냥, 이 정도면 숙제는 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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