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모놀로그 - 개정판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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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이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브이데이 운동이라는 정반대의 세계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연극의 애매모호한 에너지와 사회운동이라는 더 확실한 세상 사이에서 사는 것은 나를 확장하고 영감이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술은 운동을 더욱 창조적이고 과감하게 만들었고, 운동은 예술을 더욱 날카롭게 초점을 맞추게끔 만들었습니다.

 

여성들은 제 몸의 주인이 자신들임을 재천명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몸의 욕망과 위반, 승리, 수치심, 모험담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서문 10주년 기념판에 부쳐 中

 

금기시되어 있는 단어 보지, 라는 말을 함으로써 생기는, 그 위험한 시도로 생기는 힘이 있나봐.

공공연한 영역에서 보지라는 말을 쓰지않을 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보지라는 단어는 회피한다.

서문 10주년 기념판에 부쳐는 보지라는 말이 뉴욕 다운타운의 작은 극장에서 말해진 이후 10여년동안 벌어진 승리의 기록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려면 모든 이야기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수치와 모욕과 빈곤과 인종차별주의를 보아야만 합니다. 세상에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굴복당한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야만 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울컥 했네.

 

2.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 성기의 독백이다.

직역하면 보지의 독백, 그러나 북하우스는 책 제목을 버자이너 모놀로그라고 붙였다.

북하우스는 어떤 판단을 했던 걸까?

금기에 도전하는 보지의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지않고

버자이너 모놀로그라고 무슨말인지 들어서 모를 제목으로 보지를 가리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한 이유가 뭘까.

보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는 행위가 감당이 안된다고 행각한 걸까.

엘리트들의 도서관에 보지라는 말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보지의 독백은 바로 그 지점을 깨고 금기에 도전하며 용감하고 정직하게 도전한 것 아닌가.  

보지라는 말은 여성의 몸을 부끄럽거나 더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비속어 이고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서 급진성을 띄며 선언된 것이다.

북하우스는 그 급진성을 스스로 포기하며 책을 낸 셈이다.

 

글로리아의 표현을 빌면 200명이 넘는 여성들과의 내밀한 인터뷰를 연극을 위한 시도로 바꾼 이브 엔슬러의 공연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힘 이었다.

글로리아가 서문에서 제목까지 포함해 여성들의 말을 그대로 출판한 빌라드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고 인사한 이유가 있다.

북하우스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은 것인가.

 

 

3.

내가  그 말을 하는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구, 말 못하겠어. 못 한다니까. 어떻게 아래 얘기를 해? 그냥 다 알잖아. 거기 있는거. 지하 창고처럼, 가끔 덜커덕 거리며 이런저런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지. 파이프 소리도 들리고, 쥐 같은 것들도 있고, 물이고이기도 하지. 어떤때는 수리공이 와서 물 새는 곳을 고치기도 하지. 그렇지만 대부분 거기 문은 잠겨 있어. 그냥 잊어버리고 살지. 내 말은 거기도 집의 일부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자주 들어가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아. 볼일이 없는 거지. 집집마다 창고가 필요하긴 하지만 언제나 거기 있으니까 잊어먹고 사는 거지 뭐.

 

보지에 관한 온갖 이야기가 축제처럼, 시원하다.

한번도 안해본 얘기를 하는 여성들, 의 이야기를 듣는다.

말하는 것, 듣는 것, 나누는 것 마으로 해방되는 느낌이 있다.

매우 은밀하고 집요한 금기니까.

그러거보니 나도 보지에 대해선 말해보지 않았네. 들어보지도 못했고, 읽는게 처음이야.

그런대 이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다니.

우린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가봐. ^^;

 

이를테면 우리가 뚱뚱한 허벅지가 아름답다고 가르치는 문화에서 자라났다면 우리는 모두 드러누워서 밀크셰이크와 과자를 씹어 삼치며 매일먀일 허벅지살 찌우기에 돌입했을 테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문화에서 자라지 못했잖아요. 나는 내 허벅지를 증오했고 내 보지는 더욱 증오했어요.

 

19세기까지도 소녀들이 자위행위를 통해 스스로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행위는 질병으로 간주외었다. 그런 소녀들은 종종 '치료'를 박거나 '교정'을 받았는데, 그 방법은 클리토리스를 절제하거나 뜸을 뜨는 것이었다. 또는 질의 양 입술을 같이 꿰메버려서 클리토리스를 찾을 수 없게 만드는 '신종 정조대'를 채우기도 했다. 심지어 자팔관을 없애버리는 수술을 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년들의 자위행위를 막기 위해 페니스나 고환을 잘라버리거나 수술을 한다는 의료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 [잘못된 신화와 비밀에 대한 여성백과사전] 에서 -

 

 

4.

브이데이

우리의 작업은 세가지 핵심적인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예술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으며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영감을 준다. 둘째, 지속적인 사회, 문화적 변화는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에 의하여 퍼진다. 셋째, 지역 여성들은 그들의 지역사회가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며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브이데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동력들이다.

특히 중앙에서 기획한것을 지역으로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필요한 것을 지역 여성들이 스스로 발언하게 하는

세번째가 인상적이다.  

보지의 독백이라는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이미 고정관념들과 부듲혀 전투를 하게되고

바로 그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에 수익금이 지원되는 시스템이 활력을 준다.

 

그러나 한국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운동이 되지 못하고 공연만 했다.

보지의 독백, 이라고 표현하지 않아서 아닐까.

기획자들이 포기한 그 표현에 도전과 활력이 있었거든.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말은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지만, 흥분하게 만들지도 않으니까.

일단 무슨말인지 모르거든.

 

 

5.

앞부분 보지의 독백은 보지에 대해 인터뷰하고 공연한 내용이고,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 많다.

일일이 옮겨적기 어렵다.

뒷부분 스포트라이트 모놀로그는 브이데이 행사를 위해 씌어진 주제가 있는 시 이다.

소외되고 학대당한 여성들 이슬람, 인디언, 위안부, 트래스젠더.

 

1998년 창립된 브이데이는 여성과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풀뿌리 활동가들의 세계적인 운동이다. 이 폭력애는 구타, 강간, 근친상간, 음핵절제와 성노예제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브이데이의 활동에 대해 소개한다.

1996년 이브 엔슬러는 <버자이너 모늘로그>를 공연한 후 학대당한 수많은 여성을 만나게 되고 압도당한다.

그에 관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그녀는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폭력에 관한 연극을 넘어서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움직이는 장치로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

결국 보지의 독백은 여성들의 목소리이고, 단체이고, 행동이고,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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