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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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8년 중국공학의 교장이 된 후스가 취임연설을 통해 선언한다.

"권한은 쥐고 있다보면 개인의 지식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남들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한다며 함부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강도보다 더 위험하다."

이명박의 기상천외한 4대강 사업이 생각나더군. 강도보다 위험한.

 

중국인이야기 두번째. 첫번째 중국인이야기는 흥미진진 재미있었다. 기대하며 본다.

후난성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덟살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열살 때부터 빈 밥그릇 들고 남의 집 문앞을 기웃거렸던,

홍군시절부터 부총사령관이었고 한국전 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는 오랜시간 전장에서 군을 지휘한 대장군이지만

1959년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지적했다가 국방부장에서 쫓겨난다.

마오쩌뚱을 비판했다가 눈밖에나 쫓겨나는 셈이다.

196년 8월 18일. 중국군사위원회는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전군의 지휘관 1,061명이 베이징에 운집했다. 국방부장 펑더화이와 총참모장 황커청이 도마위에 올랐다.  

그리고 9월, 국가주석 류사오치는 전국임민대표회의(전인대) 결정 사항이라며 인사명령을 발표한다.

"국무원 부총리 린뱌오에게 국방부장 겸직을 명한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반대파를 숙청한다 해도, 적어도 저 정도의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펑더화이를 실각시키기 위해 천명이 넘는 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박정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쫓아낼때는 절차가 필요없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일때도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 박정희의 한마디로 그형식과 절차가 충분했고, 심지어 야당 국회의원을 납치해 목숨을 위협했지.

사실 민주주의의 내용은 절차를 지키느냐 안지키느냐일 때가 많다. 형식과 내용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적어도 반대파를 숙철할때 저정도의 절차는 지켜줘야 하는거다.

평생을 전장에서 누빈 펑더화이는 성격이 급하고, 성질이 욱해서 사고도 잘치지만 하급부하와 아이들에게 인자해서

인민에게 존경받고 병사들에게 인기있는 장수였다. 매력적이네.

 

루산회의도 인상적이다.

1959년 여름에 열린 루산회의처럼 복잡한 회의도 없다. 회의자료를 보면 볼수록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중국인들을 많이 봤다. 중공지도부가 40여일간, 산속에 들어박혀 나오지 않았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전국의 국가관료들이 모여 낮에는 조별토론하고 해가지면 삼삼오오 영화관이나 경극 공연장을 찾았다.

40여일간 각종 현안문제로 토론을 하다가 대약진운동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사투끝에 백전노장 펑더화이가 몰락하지만

 

국회에서 야동이나 보고, 졸고, 그나마 참석도 안하고, 비정규직 확대시키는 법이나 만들고, 지들 월급이나 만장일치로 올리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나 허구헌날 사리사욕에 어두워 제 곳간만 채우는 비리에 물든 정부관료들에 익숙하다가

중국의 무산계급을 위한 정부를 보면, 그들은 신념을 갖고 고민하며 신중하게 정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안문제에 대한 판단이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서로 공격하며 싸우더라도

그결과 수십년 동지가 하루아침에 적이 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저하나 잘살기 위해서 라거나

1% 부자들만 더 잘살게 하는 정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실수도 하고 싸움도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념과 명분, 형식과 절차에 충실하며

그 권력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적을 몰락시키는 방법이 마오쩌뚱과 박정희는 달랐다.

박정희는 한마디로 절차없이 마음대로 죽였고, 마오쩌뚱은 토론하고 절차를 거쳐 승인받았다.

모름지기 인간의 정치란 이래야 하는것 아닐까.

 

 

2.

새해가 다가오자 리리싼은 고향 집을 찾았다. 아버지는 명망가였다. 돈도 많고 땅도 많고 부인도 많았다......

"유학을 무사히 마쳤으니 장하다. 앞으로 뭘 할 거냐."

리리싼은 말을 안하면 안했지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었다.

"공산당을 할 겁니다."

노인네는 "죽을 길 제발로 찾아나선 놈"이라며 노발대발 했다.

"나라에 군인과 총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너같은 애송이들이 천년을 한들 될 일이 아니다."

리리싼도 지지않았다.

"군벌들에 총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진리와 인민이 있습니다. 죽음은 별개 아닙니다. 희생자가 생겨야 더 많은 사람이 일어납니다. 혁명은 성공하고야 맙니다."

ㅎㅎㅎㅎㅎㅎ 혈기왕성한 부자집 아들 리리싼이다.

진리와 인민이 있어 죽음도 별것이 아니었으니,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을 위한 사랑에 불꽃이 일고

상황이 안좋으면 헤어지고, 아이가 생기면 남에게 맞기고

스스로 목숨을 걸었기에 오히려 다른 문제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쉽게 쉽게

공산당을 한다는 리리싼의 말에 노발대발하는 노인의 말이 재밌다.

공산당이 나쁘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나라에 군인과 총이 많으니 네가 죽을 것이라고 화를 낸다.

혁명에 투신했던 사람들, 시대의 분위기가 보이는 것 같은 이런 장면들은 재밌다.

그래서 결국 혁명에 성공했으니, 심장뛰는 열정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성공해서 국가를 운영하니. 얼마나 좋았을까.

 

중국인이야기가 더욱 재밌는 것은 성공한 항일전쟁, 성공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항일전쟁에 성공해서, 인민들과 목숨걸고 싸웠던 역전의 장수들이 무산계급의 혁명또한 성공했기 때문이다.

리셴녠 같은 사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라는게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감히 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가난하여 10대에 목수가 되고 항일전쟁이 벌어지자 공산당에 입당하고

홍군에 가담해 구사회를 매장시킬 관을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 한다.

전쟁이 뭔지 몰랐지만 전쟁을 하면서 전쟁을 배운 리셴녠는 혁명에 승리한 후 전국의 재정을 관장하는 재정부장이 된다.

31년간 정치국원을 역임하며 부총리 15년을 한 후 원로가 된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권력의 자리에 올라 31년을 살았던 셈이다.

리셴녠을 비롯한 혁명의 주역들 중에는 비천한 신분이었던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족하거나 게으르거나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고 고민과 고뇌와 사랑과 결단과 용기와 실패와 오류를 모두 격으며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어 나갔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전쟁을, 하면서 배웠듯이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재정부장 또한 하면서 배웠다. 그렇게 잘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부모에게 수백억 물려받는 아이들은 남을 깔고 뭉개고 우습게 보는것을 배워 그렇게 하더라.

금수저 물고 나온놈은 여러개의 금수저를 물고 평생 오만하고

흙수저 물고 나온놈은 평생 죽을똥 살똥 일해도 가난하게 천대받다 죽는 스토리는 재미없다.

한국 현대사가 중국현대사보다 재미없을 뿐 아니라, 고통스럽기만 한 이유다.   

 

 

3.

1950년 9월 한국전쟁에 참전을 반대하는 린바오의 말이다.

"직언을 용서해라. 미국 군대가 우리 경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군대는 함부로 움직이는게 아니다. 출병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경솔하다. 미군이 압록강 연안에 배치된다 해도 나쁠게 없다. 가까이 온 적은 협상하기가 쉽다. 남북한이 싸우건 말건 그건 자기들 문제다. 단 미 제국주의가 동북을 침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바탕 붙을 수 밖에 없다. 그때는 내가 직접 신발끈을 동여매겠다."

린바오 의견에 한표.

뭐하러 남의나라 전쟁에 우리군의 피를 흘리나.

미국이 국경을 넘어 중국을 침범한 것도 아닌대.

중국인들의 다수는 이 전쟁에 참전을 원치 않았다.

김일성이 기세등등 한반도를 전부 먹고 싶었던 거고 이승만은 지 기득권을 뺏기기 싫었던 거고

그래서 이것들이 외국 군대를 불러와 지가 통치하는 나라 인민에게 총질을 하고 산천을 피로 물들인거다.  

1950년 한국전쟁을 처음으로 중국인 시선으로 본다. 이 또한 흥미롭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승만과 김일성의 가족들은 다치지 않고 죽지 않았다.

중국이 참전을 결정하자 마오쩌뚱의 큰아들 마오안밍이 지원하여 압록강을 건넌지 34일만에 미군의 네이팜탄에 죽는다.

적어도 마오쩌뚱을 비롯한 이당시 중국의 정치인들은 전쟁을 결정하면 자기 목숨을 걸고 직접 앞장서고, 자식들도 참전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중국과 한국의 정치가 비교된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돈있고 권력있는 지배계급의 자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적어도 전쟁을하려면 지가 앞장서고, 제 샊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거다.

이라크에 참전을 결정한 후 그 전선으로 떠난군인들은 모두 가난한 자들의 아들이다.

실제 참전을 결정한 자와 그 아들을은 위험한 전쟁터에 안간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참전으로 인한 이권은 모두 지들이 챙기지. 남의 목숨걸고 돈 번다는 말이다. 비겁하고 염치없다.

 

한국전쟁당시 김일성, 펑더화이 스탈린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어떤말을 하고어떻게 합의하고 어떻게 싸웠는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전쟁 당시 남한 대통령이나 장군들, 장관들이 뭔말을 하고 뭔짓을 했는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4.

감옥에서 풀려난 리충산은 두딸을 대리고 다퉁유치원을 찾아갔다. 리리싼이 설립하고 '홍색목사' 둥젠우가 운영하는혁명가 유자녀들의 요람이었다.

생모 양카이후이가 사형당한 후 외할머니 샹전시하 외숙모 리충더의 품에 안겨 사지를 빠져나온 마오쩌뚱의 세아들을 비롯해 큰언니 리이춘과 차이허썬 사이에 태어난 차이좐, 마오쩌뚱이 농민운동 대왕이라고 극찬했던 광둥코뮌의 자취자 펑파이의 어린 아들 등이 모여 있었다.

혁명에 바쁜 와중에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니 아이들을 보살피는 홍색목사가 있었던거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데, 영원한 사랑을 어떻게 약속 할까.

내일 죽을 지 모르는대, 오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불륜이라고 회피하겠냐고.

세상의 이목이든지 예의든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고. 그래서 오늘 하는 사랑이 더욱 뜨거웠겠지만,

오늘만을 살다보니 아내들과 특히 아이들이 슬퍼진다.

 

중국 사람들 참, 말도 잘해.

가난한 선생이던 지셴린이 꿈에 그리던 독일 유학을 가게 되었다.

거의 파산상태 였던 가족들은 "굶기는 쉬워도 죽는것은 어렵다"며 지셴린을 안심시켰다.

ㅎㅎㅎㅎㅎ

이 말을 하는 가족들과 지셴린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두번째 중국인이야기도 재밌다. 3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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