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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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동아리. 외딴섬. 살인. 

매우 익숙한 설정의 '십자관'이다. 

굳이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이런 설정 잘 사용하고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듯 크리스티까지 


맞다. 일본 추리소설에 익숙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이제 모국어로 씌어진 일본의 본격방식 추리소설이 나올때가 된거다. 

추리소설연구회 학생들이 외딴섬의 아무도 살지않는 별장 십자관으로 여행을 떠나 

십자관을 둘러보고 숙소를 배정받고 추리소설에 대한 토론을 하고, 그리고 살인사건 


실망이 너무 크다. 

물론 추리소설 속의 살인은 게임의 느낌이 있고, 작자와 독자들간의 밀땅이 있지만 

사람을 줄줄이 죽이는 것, 그자체가 게임이라니, 이것은 반전이 아니라 사기다. 


첫번째 희생자 마플이 죽은후 동료들의 반응이 너무 황당 할때부터 지루해졌다. 

같이 여행을 갔다가 사람이 죽었으면 외부에 알리고, 경찰을 부르고,  

안돼면 왜 안돼는지 설명도 있어야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대 

심지어 일행중 한명인 교수는 

추리소설식으로 생각하고 추리소설적으로 행동하라, 고 말한다.

노골적인 작위의 발언 

모든 소설이 그렇듯 추리소설도 그럴듯하고, 리얼하고, 사실같아야 재미가 있다. 

독자들도 실제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추리소설인줄 안다고. 

그래도 아닌것처럼, 사람이 죽었으면 그런 상황에서 할 법한 말과 행동을 해줘야지. 

시체를 앞에두고 추리소설적으로 행동하라니, 참. 


한국추리소설이 안팔리는 이유는 재미없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의 토대가 빈약하고, 순수문학이 아니라고 차별하며 하챦게 여기니 

집필하는 작가의 생존환경이 나쁜것도 사실이다. 

현실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횡횡하면 추리소설을 보며 즐길 여유가 없다. 

숨죽이고 사느라 추리소설적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빈곤해지는 것이다. 

그래. 맞다. 우리는 오래동안 추리소설을 즐기지 못할 만한 현실을 살았었고 

문학이라는 동네를 장악한 순수하다는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니, 문학의 맛이 없었지. 


한국의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경계없이, 눈치보지 않고, 스스로의 취향을 주장하며 음미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재미없는 추리소설을 막 써도 되는건 아니다. 

이런 소설은 마땅히 외면 받는다. 재미없으니까. 

상황이 너무 억지스럽고, 지루해도 끝까지 읽었더니 모든게 게임이라네. 

트릭을 설정하고 퍼즐을 푸는것도 어지간히 논리적인 연관이 맞아야 하고 

베이스가 되는 기본 스토리에 신뢰가 가야 흥미가 생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게임을 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왜 그 게임의 재미가 그렇게 중요해서 심지어 사람도 죽여야 하는지 설명이 되야, 납득이 가고 스토리에 신뢰가 간다. 

너무 쉽게 쓰니까 재미없는 거다.   

독자들을 우습게 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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