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1. 

습지생태보고서 때부터 딱 알아봤다. 

최규석.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캐릭터의 만화가가 대한민국에서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을까. 


최규석의 아웃사이더 감성의 근원은 습지에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밝은 눈의 신통함은 그가 스스로 가난하지만 유연하게 살아낸 때문이다. 

그래서 헐벗은 자의 웃음 뒤에 숨은 눈물을 예민하게 알아챌 뿐 아니라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아픔을 웃음의 행간에 감출줄 아는 

100도씨 부터는 눈에 띄게 선이 굵어지더니 송곳은 굳이 찾아 보기 싫었었다.

최규석이 쓰는 노동운동에 대한 만화라니 

타인의 눈으로 내 상처가 남김없이 드러나는 것이 싫으니까. 


활자중독인 내가 책은 주로 추리소설만 보고 가끔 여성주의책이나 인문학을 읽기는 하지만 

굳이 노동운동과 관련된 책은 안보는 편이다. 

책 읽는것이 일이 되기 싫으니까. 


그래도 최규석이니까. 어쩌면 숙제처럼, 그러나 기대하며 


역시. 50페이지를 넘기기전에 벌써 슬프다. 



2. 

가난한 이과장의 어린시절 어머니의 말 

아빠는 노가다하고 엄마는 품팔러 다닌대 

사람이 없이는 살아도 죄 짓고는 못사는 기다. 

거 참. 

왜 꼭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도덕률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사는지 

잘난 것들은 돈 있으면 죄도 없다는 세상이치를 넘치게 알아서 갑질하면서도 잘 살건만  


사람이 없이는 살아도 죄 짓고는 못산다는 저 말은 매우 상징적인 아이러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큰 죄인인것처럼, 실제로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데 

실은 없이는 살아도 죄 짓고는 못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하거든 


품팔고 일하고 와서 저녁 바느질하는 어머니 

뽀글뽀글 파마하고 몸빼입은 아줌마를 오래오래 처다 보았네. 

부디 우리를, 원했든 원치 않았든 노동운동을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너무 아프고 비참하게 그리지 않았으면

진짜 현실을 외면하며 그려주길 바라는 것인지 

모두 있는 그대로, 그 슬픔을 그려주길 바라는건지, 알수 없었다. 


용기만 있고 공포를 모르는 군인은 엉뚱한 전투에서 가치 없이 죽는다. 

용기만 있고 공포를 모르는 군인, 이 문장을 오래 보았다. 

공포를 알고, 공포를 표현하면 곧바로 비겁해지는 거라 생각했었다. 

나의 젊음은 그래서 내가 더 용감하다는 것을 나에게 검증하느라 오랜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그래도 늘 두렵더라. 

마흔을 넘고 보니 

가치없이 죽을 수 있는 전장의 전투가 두렵다. 공포를 아는 사람이 용기를 낼 수 있기도 하고. 



3. 

내가 신뢰하는 만화가 최규석이 노동운동에 관해 그렸다. 

어떻게, 왜 이런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하다. 

그의 시선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선이 매우 진솔하며 특별하다. 

거짓이 없으며 사실에 기반하여, 유난히 편견많은 대한민국 

노동조합이라면 빨갱이라고 거칠게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한 근로자들이 어떻게 노동자가 되어가는지 

약하고 힘없어도 그들이 어떻게 용기를 내어 정의로운 좁은 길을 만들어 가는지

특별한 사람의 잘난 스토리가 아니라 평범하고 모자라는 듯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이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노동운동, 이라는 범주를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줘서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그려줘서    

최규석에게 고맙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이수인과 구고신 두 축의 스토리가 

남성의 노동운동을 보여주는대, 마치 노동운동이 남성인듯이 보여서 

저 사업장은 분명 여성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노동운동이 원래 군대문화 만연한 가부장적인 위계를 잘 따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편했다.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노동운동이 가려지는 듯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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