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리본
헨닝 망켈 지음, 홍재웅 옮김 / 곰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1. 

비비 순드베리는 쉰살가량의 체격이 건장한 빨강머리 여성경찰이다. 그녀는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나다. 그녀는 유능한 경찰관이다. 집요했고 작은 실마리조차 분석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헤닝이 매력적인 여성 경찰을 보여주길래

쉰살의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난 여성 경찰이라니, 보기 드문 캐릭터잖아. 

감탄했는데,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만다. 아까워라. 



2. 

중국에서 굶어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가 미국의 철도건설현장에서 어떻게 멸시받고 학대당하다 죽음에 이르는지 

중국사람의 눈으로 쓰며 오리엔트를 멸시했던 스웨덴을 포함한 서방을 객관화한다.  


1968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유럽 사람들에게 혁명과 마오쩌뚱은 매우 특별한 기억인가봐. 

최근 망켈은 작품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노장이 되어 더욱 겸손해진 시선으로 

혁명에 대해 열정이 넘쳤으나 아무것도 몰랐던 시대, 마오의 붉은보서를 기준으로 세상을 인용하던 시대를 돌아본다. 

웃었다. 

땅에 발을 딛고 세상을 살았어야지. 

신의 계시록을 인용하듯이 마오를 숭배했으니, 어리석었다. 

그러나, 애정을 갖고 그는 젊은날의 열정을 그리워한다.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 놀랐더니 붉은 대륙에 매료되어 보낸 젊은날이 있었군. 


68혁명과 중국, 마오의 혁명에 대해 만켈은 많은 생각을 했다. 

엄청난 혁명이 아닌가. 인민 해방은 꿈을 가질 권리와 금지된 방에 입장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자금성의 주인이 바뀐 마오의 왕국에서는 9,999칸의 성이 개방되었다. 

이전 왕들의 시대에는 입장이 금지된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인민들, 의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저는 그 서커스 천막 안의 어린아이 같았죠. 마오쩌뚱이 없으면 중국은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공산당원이 된다는 것은 가난과 궁핍에 대항해 싸웠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우리는 모두를 위한 몇벌의 바지 때문에 투쟁했어요. 


그러나 농부의 피대신 지주의 피가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불가능한 꿈이었던 대약진 운동의 뒤안길에서 굶어 죽는 인민들의 그림자를 목도한뒤 

덩의 시대가 되어 다시 닫을 수 없는 문호를 개방한 후에도, 모두가 두벌의 바지를 가질수 없음을 알게되었다. 


이런 표현들은 망켈의 중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평등한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꿈을 꾸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고 

모두를 위한 몇벌의 바지를 위해 투쟁했던 삶에 대한 옹호

실패한 혁명에 대한 변호다. 

불안한 남자에서도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느낌이 있더니 

이번에도 자신이 살아온 시대, 동시대를 살았던 인류의 고민과 열정과 실패를 곱씹어보는 느낌이있다. 


가난외에 잃을 것이라곤 없는 수억의 인민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마오는 항상 모든 이들이 봉기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런 문장은 참 좋지만, 스릴러는 아니다. ^^; 


망켈. 아무리 좋게 좋게. 이해하고 싶어도 

중국의 사형제도는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며 참혹하다. 

심지어 공개처형 하는 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형벌, 죽이는 것을 구경하는 것. 모두 잔인하다.


홍취 캐릭터도 참 이상해. 

자신의 이상을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을 팔아넘기는 이런 방식은 동독과 소비에트 중국 

사회주의라는 나라에서 예외없이 횡횡한다. 

공포국가의 특징이다. 대중의 공포로 사회를 운영하는 독재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의 극단 

야뤼의 부패가 홍취의 고발을 정당화 하는가. NO.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차창 밖으로 헐벗은 시골 풍경과 잿빛의 마을들이 지나갔다. 홍취는 갑자기 가난은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이라는 가각이 들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여유로움을 삶에서 다르게 표현했다. 다른집에 옷도 차도 다르고, 또 생각도 꿈도 다 달랐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그저 잿빛으로 밖에 가난이 표현되지 않았다.

맞다. 가난은 어디에서나 누추한 그을음이다. 잿빛. 


야뤼와 홍취의 대립은 새로운 중국와 구중국의 대립이고, 새로운 이상과 과거의 이상의 대립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부패와 독재로 대표되다니. 슬프네.  


평화롭고 조용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늙는다는 증거인 걸까? 아무도 기계음이나 라디오 소리를 들으면서 죽고 싶지 않을 거야. 발전의 대가로 평온함을 지불하고 있는거지. 지금처럼 조용한 순간없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일까?

늙는다는 증거일까? 나도 그래. 정말. 조용히 살고 싶다. 

 


3. 

이야기가 현실의 중국으로 가서 오리무중. 대륙의 삭막한 바람에 길을 잃은 느낌이다. 

망켈 스럽지 않아 실망했다기 보다 당혹스러웠다. 

영리한 망켈 스럽지 않게 너무 벌려놓는구나 했는데, 단순히 벌린 문제가 아니라 

발란더 시리즈에서 유난히 인간적인 캐릭터와 치밀한 스토리가 좋았는대 

이번에는 우연이 너무 많아서 김이 빠진다. 

중국이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대 비르기타가 한번에 딱 그건물을 알아 본단 말인가. 점쟁이도 아니고. 

헨닝 스러운 문장의 깊이는 여전하기 때문에, 참아주며 읽었다. 


스웨덴의 눈덮인 작은 마을 헬싱란드에서 19명의 사람을 죽인것이 누구인지 밝히는 과정은 참 어설프다.  

150년전 조상의 복수를 하러 뱅기타고 스웨덴에가서 사람을 떼로 죽이고 다시 뱅기타고 중국으로 갔는대

그것을 스웨덴의 한 여성이 우연히 알게되고 중국에 갔다가 우연히 범인의 누나를 만나고 

그래서 범인이 누나를 죽이고.....  

아니 할아버지가 쓴 150년전 일기를 봤다고 치자. 그때 할아버지를 괴롭힌 사람의 후손을 찾아 스웨덴까지 간다니. 거참.  

범인을 추적하여 쫒는 스릴러의 스토리로는 영 꽝이다. 


그냥 망켈식 회고록. 망켈이 돌아보는 20세기라고 생객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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