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검투사의 일생 - 살육의 축제에 들뜬 로마 뒷골목 풍경
배은숙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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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하다. 

어떤 사람들이 검투사가 되었고, 어떻게 경기가 진행되었는지는 흥미로운데 

전쟁으로 포로를 잡아와 가두어 놓고 훈련시켜 서로 죽이도록 하는 것

서로 죽이는 살인게임에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

재판도 없이 범죄자가 되어 십자가형, 화형, 야생동물의 밥으로 주어서 죽이는 등의 사실들이 

뭐,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서술된다. 


왜 로마의 사람들이 저렇게 잔인한 짓을 즐겼는지 분석없이 

지금보면 잔인한 짓거리지만, 로마시대에는 그냥 일상적인 문화였다고 말한다. 

왜? 

설명이 없다. 


이 책은 현대적이 관점에서 로마인들의 잔인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검투사와 로마인들의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시도했다. 잔인하다는 한마디 말로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검투사 경기를 파악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검투사와 로마인들의 시각에서 접근해도 잔인하다. 

잔인하다는 말로 검투사 경기를 파악하는 것이 뭐가 무리인 걸까. 


국가의 존립과 사회질서를 흩뜨리는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기준에서 죄가 되었는지 묻고 싶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입장에 대해 항변하고 싶었으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강렬한 태양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린채 굶주림과 탈수를 동반하여 밀어닥치는 죽음의 공포, 온몸이 불에 타들어가면서 겪는 극심한 통증, 야생동물에게 산채로 살을 뜯기면서도 본능적으로 도망치며 살려는 몸부림 등은 범죄를 저지른 과거에 대한 후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문장은 천박하다. 

공권력이 저정도의 살인을 하는 것에 대한 배은숙의 해석은 살해당하는 죄인의 후회와 일벌백계라고 표현한다. 

어처구니 없다. 변호의 기회도 없이 죽임을 당하는 자가 후회한다고. 누구 좋으라고. 

단언컨대, 저런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는 자들은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든지 제정신이라면 로마 권력을 저주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뭘 후회하니. 


기독교인들이 종교를 포기하지 않아서 

식민지에서 수탈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정의를 포기하지 않아서 주로 저런 방식으로 학살당했다. 

설사 죄인이라해도, 저런 방식의 죽임은 일벌백계라기 보다는 그냥 잔인하고 야만적인 권력의 처형일 뿐이다. 

인문학을 한다는 자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살인이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스포츠게임처럼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즐긴 로마인들이 잔인하지 않다고 말할 방법이 없다.  

그들의 시각에서 본답시고 빈약한 철학으로 시시콜콜 재편집한 배은숙도 잔인하다.


CNN을 통해 전쟁조차 중계방송 화면으로 보는 현대인도 물론 잔인하다. 

이스라엘 부자들은 팔레스타인에 떨어지는 폭탄을 망원경으로 감상하며 휴가를 즐긴다고도 하고 

이것은 모두 일맥상통 이다. 

로마인들 처럼 현대인도 잔인하다.  

투계, 투견, 투우 처럼 검투사도 잔인하다. 

 

팍스 로마나. 제국 로마의 평화란 이런 것이다. 

세련되 봤자고, 교양있는 척 해봤자다. 

넘의나라 침략해서 약탈하고 포로들을 잡아와 노예로 부려먹으며, 심지어 서로 죽이는것을 놀이라고 즐긴거다. 

천박하고 잔인하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모두 검투사 양성소를 운영하여 수백명의 검투사를 훈련시키고 죽이는 게임을 해서 돈을 벌었군. 


2000년후 그 잔인함을 문화로 승인하는 배은숙의 잔인함은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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