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공화국에서 - 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만들기 희망만들기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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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급한 책읽기를 위해 고급스럽게 인문학 책을 내는 한길사다.
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잘 느껴지기도 하지.
처음으로 김언호를 읽는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며 산 사람이라면, 그 책의 작자들과 고급의 지식을 나누고 산 삶이라면
무조건 행복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정한 선생에 대한 이야기로 서문을 연다.
20여년전에 읽은 김정한의 펜은 압박받는자의 슬픈 현실을 손톱반큼도 외면함없이 똑바로 응시하며 써서 읽기 힘들었다.
'현실' 이라는 것이 위로받을곳 하나없이 비참하게 아프기도 하다는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낙관'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무살 무렵 김정한을 읽으며 알아버렸다.
아닌척 하고 싶었어.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면 희망이란 늘 있는것이라고 굳게게 주먹쥐고 달리고 달려도
22명의 노동자가 죽음에 이른 쌍차의 참담한 현실을 보며 23번째 죽음이 또 있을까봐 다리가 떨리는 마흔
"착취당하는 인민의 고통을 보라. 이것을 외면하고도 네가 사람이냐."
여전히 나에게 호소하는지, 김정한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2.
함석헌 선생을 시작으로 윤이상, 리영희, 이오덕, 박현채.
독재의 칼날이 횡횡하던 시절, 정의와 진리를 위해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낸 지식인들.
그들과 함께 시대를 밝히고 책을 만들어 행복했다는 김언호의 자랑이다.
자랑할 만 하다.
2012년에도 여전히 그들의 작업이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꼭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함석헌.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찬양하는 군중의 입을 막으려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라고 했다. 너무나 확신에 찬 무서운 말이다. 드러내야 할 참은 드러나고야 만다. 그 어떤 압력도 참을 막을 수 없다. 비록 인간들이 비겁해서 압력 앞에 굴복해서 입을 다무는 한이 있더라도 드러내야 할 것은 드러나고야 만다는 이 확인! 이런 확신 앞에 돌인들 소리를 안 지를 수 있으랴."
나에게 가장 낮선 사람은 안병무인대 문장이 좋다.
안병무를 찾아 읽어봐야 겠다.


3.
시대가 책을 선택한다고 김언호는 말한다.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은책, 혹은 시대의 독자들이 요구하는 책이 있다는것이다.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라는 것에 동의할수 없다. 많은 사람이 본것이 곧 독자들에 의한 시대의 요구는 아니거든.

이 시대의 독자들이 글로벌 세계화를 위한 제국을 우아하게 꿈꾼다는것에도 동의할수 없다.
변방의 섬나라 대한민국이 일본에 의한 식민지와 내전과 독재의 답답한 그늘을 벗어나 세계의 시민이 되고자 할때
우리의 열망이 카이사르처럼 뛰어난 지도자의 영도에 따른 제국주의라고 팍스 코리아를 말하고 싶은가, 저 빛나는 로마제국처럼
동의할수 없다.
 
김언호가 어떤 책을 기획해서 내는지야 자유다. 한길사 사장이니 자기 맘이지.
70년대와 80년대 독재의 시대를 진리를 탐구하며 양심적인 학자들과 치열하게 책을 만들며 살아온 경험도 존중한다.
그 프라임에 시오노 나나미를 담는것 또한 김언호의 자유다.
다만 시오노 나나미를 내는 순간 진보는 아니다.
김언호는 스스로 진보이길 바라지도 않고 다만 인문학적인 탐미를 원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정의에 대한 치열함을 앞세우지 말아야지.

'리영희, 박현채, 송건호,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 라니.
당신들의 치열했던 민족주의 그 양심과 정의가 다다른곳이 제국주의란 말인가.
비록 과거에 잠시 진보의 역할을 했으나 결국 민족주의란 힘있는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
태어날때부터 고귀한 인간들이 인민의 피땀을 발판삼아 비단옷입고 우아하게 통치하는것을 말함인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판금시킨자들의 주장이 '그래, 친일 좀 한게 뭐가 문제야?' 였다고 김언호는 말한다.
이제 시오노 나나미를 내면서 '그래, 제국의 식민지 정복이 뭐가 문제야. 뛰어나쟎아.' 라고 김언호는 말한다. 
그러면서 시오노를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내 참, 말장난은. 
현실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보통 진보적인 이상과 꿈을 철없는 망상의 허튼짓으로 후려칠때 쓰는 보수주의자들의 영악한 표현일뿐이다.  

참으로 영악하게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정말? 
팍스로마나에 반대한 인민들의 저항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나사렛의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사건아닌가. 
로마가 아메리카와 다르게 무엇을 포용하는가?
지가 허용하는것, 저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발밑에 두는것을 허용할 뿐이다. 
미국도 이런 방식으로 포용한다. 

김언호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칭송은 특히 우습다. 
시오노가 대한민국에 왔을때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기자들을 만날때 옷을 계속 바꿔입는 다고 '역시 프로'라고 감탄한다. 
김언호의 책의 공화국이 저렴해지는 순간이다.
값싼 철학에 인문학적으로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김언호도 알았던 것 아닌가 싶다. 
여기에 SK에너지 까지 가면 노골적으로 글로벌 세계제국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으며 자랑한다. 


4.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에서 김선주가 양지바른 쪽에 사는 중산층 지식인으로서 한겨레 신문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반성하고, 그러더니.
김언호는 한길사에서 책만들며 만난 현인들과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자랑하고 돌아본다.
김언호가 만나 교감한 인물들이 더 뛰어난지 모르겠으나 김선주 쪽이 더 호감이 간다.
그녀는 스스로 반성도 하거든.
김언호는 자랑만 한다. 김언호의 자부심을 알겠는데,
그 시대에 지식인들이 책만드는것도 안했으면 그게 지식인인가. 
이만한 학문적 성과조차 없으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하겠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고서 반복되는 자랑이 800페이지. 지루하다. 
 

5. 
마침내 인문학의 숲에서 탐미주의에 다다른 김언호에게 그가 책에서 인용하여 칭송한 안병무박사의 문장을 돌려준다. 

"예수는 가난하고 눌린 자와 자기를 일치시키는 데 삶의 뜻을 제시했다. 나도 나의 생의 의미를 이런 대서 찾으려고 한다. 눈앞에 있는 형제의 수난을 외면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직통로는 없다. 남이야 어떻든 내 영혼의 구원만을 위해 발버둥치는 자들이 만일 종교인이라면 그건 종교적 이기주의자다. 이런 이기적인 자들이 수용되는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거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겠다, 그런 곳에 예수가 있지는 않을 터이니까."

남이야 어떻든 내 인문학의 아름다움만을 기꺼이 추구하는 자들이 출판인이라면 그건 책만드는 이기주의자다. 
그곳의 인문학이 아름다울 턱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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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 2013-12-1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