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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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젊어서의 한량이 온갖 풍파뒤에 노인이 되어 손자와 함께 소를 몰고가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기억된다. '병아리는 닭이되고 닭은 염소가 되고 염소는 소가된다.' 그 다음이 뭐냐고 묻는 손자에게 잠시 생각하던 노인은 '그 다음은 사회주의지'하고 웃으며 명쾌하게 말한다. 위화와 장이모는 모두 세상을 깊이, 따듯하게 보는 눈을 갖었다. 위화는 낮은곳에서 엄살떨지 않으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가 빠졌다. 그들의 삶이 너무 허무하다.

머리말에 보면 위화의 작가론이 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고상함을 드러내보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한 고상함이란 그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위의 초연, 선과 악에 대한 동일시이며, 동정의 눈으로 세계를 대하는 것이다.' 다 좋은데, 선과악에 대한 동일시를 동의할 수 없다. 옳바른것과 옳지않은 구분이 없어지는 순간, 세상은 허무해지고 희망이 없어진다. 선과악에 대한 동일시는 옳지 않다. 오히려 한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므로 개성적인 한인간과 그 주변의 조건들이 그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애정을 갖고 볼 수는 있겠다.

위화가 못가진 한가지를 장이모는 갖었으니, 아름다운 이야기의 마지막에 뚝심과 배짱으로 희망을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이라는 듯이. 그러나 노인의 주름진 얼굴과 선량한 웃음 위로 가볍게 나오는 사회주의라는 말은 긴세월 중국인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 역사를 넘어서는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위화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위선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는 배짱과 패기가 없다. 위화보다 장이모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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