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감옥에 있었다. 아직도 두달 더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푸른빛 죄수옷을 입고 비좁은 감방 모서리에 앉아 자꾸자꾸 손꼽아 남은 날짜를 확인하다가 잠이 깼다. 땀에 젖어 잠을 깨보니 문득 감옥 냄새가 아직도 내 피부에 있는듯하여 토할 것 같았다.

꿈에 감옥에 있었다. 철창을 사이로 갇혀서 면회 온 조합원에게 인사하고 어두운 방으로 끌려갔다. 교도관 3명이 의자에 앉아 있는 곳. 마주 서서 나는 싸웠다. 그들이 뭔가를 나에게 요구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주먹 쥐고 기를 쓰며 싸우다 꿈에서 깼다.

권수정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조립라인에서 자동차가 다 만들어지면 검사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2003년 노동조합 만들고 투쟁하다 그해 6월 해고된 이후로 2007년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3번을 감옥에 들락거렸다.

옥살이를 길게 하지도 않았고, 출소한 이후 다시 비정규직, 금속노조 투쟁의 전선에서 바쁜 나는 잊은 듯이 살다가도, 불현듯 꿈속에서 다시 갇혀 식은땀을 흘리며 깨는 아침이면 내 몸과 영혼이 격은 우울한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갇혀 있는 내내, 수갑과 포승에 묶일 때마다, 그리고 감옥의 모든 하루하루와 모든 시간을 나는 궁금했었다. 왜 감옥이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 투쟁을 전개했을 뿐 죄짓지 않았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정당함과 억울함 때문만이 아니라, 비록 내가 인정할만한 죄를 저질렀다해도 형사재판을 받는 동안 감옥에 사람을 가두는 것이 올바른지, 더 나아가 죄인으로 판결이 났다고 해도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고통을 주며 복수해서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검사와 판사와 변호사 소위 법조 3륜이라는 이 사람들이 과연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나 있는지, 더 근원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옳은지. 무엇이 죄이고, 죄인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때로는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묻는 것이기도 한 이런 질문들을 그러나, 애써 무시하지 않아도 잘 잊으며 살만큼, 내 투쟁의 전선은 늘 바빴다.

더 미루지 않고 이제 나는 쓴다.
전체의 맥락을 완성된 상태로 쓰고 싶기도 하지만, 더 잘 쓰려고 하다가 오히려 미루며 못쓰게 될까봐 우선 경험했던 기억을 중심으로 그 경험을 통해 내가 했던 고민을 쓰려고 한다.
때로는 그런 경험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감옥에 갇혀 겪어본 사람들은 남세스러워 말 못해서 모르는 척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폭로가 되고 진실과 정의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에 들락거리는 것을 보통 사람들보다 쉽게 생각하는 내 동지들뿐 아니라, 돈 없고 빽 없어서 감옥안에서 더욱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쓴다. 감옥 안이라고 해서 나의 몸과 영혼이 다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권수정의 감옥살이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가능하면 책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감옥안에서 한방에 살던 언니들과 함께였다.
날마다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수많은 비리와 범죄에 비하면 참으로 한심한 죄목으로 6개월부터 길게는 3년 4년을 살던 언니들의 고단한 삶의 꼭지점에 감옥의 경험이 있었다.
자기들이 지금 왜 감옥에 갇혀 이런저런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의 해석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해 자학하고 신음하는 그녀들에게 감옥에서의 생활은 제복을 입은 자들에 대한 공포와, 좁은 공간에서의 답답함을 오로지 옆에서 함께 사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밖에 풀지 못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이중의 자학이다.

감옥이라는 구조, 건물의 형태와 하루하루 일상의 시스템과 전체 운영체계가 사람을 위축시키고 폭력적으로 길들이기 위한목적으로 만들어져있다는 것, 돈 없어서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거대한 국가권력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언니들 잘못이 아니다.

그녀들은 그저 견딘다.
더 힘들고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눈치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감옥 안에서의 처세라고 믿으며, 이것저것 생각하면 오히려 피곤하니까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고, 가족들의 면회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며 사는 언니들과 함께 살며 나는 가끔 소리 지르고 싶었다.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언니들의 잘못이 아니다. 죄가 있어도 감옥은 이따위로 사람을 사육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안 되는 거다. 말로는 교도소, 교화한다지만, 어떠한 명령에도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것 이외의 교화내용을 본적이 없다. 결국 감옥에서 이정도로 억울한 것도 참았으니, 사회에 나가거든 감히 덤빌 생각하지 말고 참고 살으라는 것 외에 긍정적인 교화란 손톱만큼도 없는 것이 우리사회의 감옥이다. 감옥에 갇혀 산 경험, 다시 갇힐 수 있다는 암시는 최고의 협박이며 그것이 감옥이 만들어진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도대체 누굴 위해 우리는 짐승처럼 사육되어 길들여져야 한다는 말인가.

언니들은 나보고 글을 쓰라고 했다. 항소이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경찰에 체포된 이후 이유 없이 협박하고 위협하는 경찰에게 어떻게 말하며 따져야 하는지, 감옥 안에서의 처우는 어느 정도가 법으로 보장된 것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 수 있는지, 수용되어있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일을 당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감옥 안,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의 끝에서, 그러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쓰라고 했다.

“그래도 재미있게 써라. 이 칙칙한 곳에서 책도 어두우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걸 누가 보겠니. 이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읽고 도움이 될 것들을 써라. 수정이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말들을 나에게 해주며 언니들은 웃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모든 감시와 구조화되어 뻔뻔한 폭력들, 그리고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날마다 다르다는 것을 함께 얘기하며 웃었던 언니들을 생각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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