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다른 밤들과 다른 뭐가 있다고 해마다 연초가 되면 금연이니 독서니, 별것도 아닌것들을 목표랍시고 설레발들일까. 한가한 사람들. 금연을 왜 꼭 1월 1일부터 해야 하느냐고요?'

매사에 까칠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문득, 도서관 가는길에 그러고보니 연초이고, 올해는 뭘 목표로 해볼까 생각하다 2003년 겨울이 생각나 웃었다.

2003년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식칼테러가 나고, 금속노조 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진 해다. 5월에는 동서다이너스티 청소용역 조합원들이 업체 사무실에서 농성을 시작해서 의장부 조합원까지 잔업거부로 이어졌고, 이때 한꺼번에 28명이 해고되었다. 계속된 천막농성, 수배, 구속, 단식......  핵심적인 간부들은 돌아가며 몇달씩 교도소에 갔다온 후 겨울, 해고되었어도 노동조합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던 14명정도의 간부와 조합원들은 현장에 우리 지회 사무실이 없어서, 정규직 노조(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아산본부) 사무실 한쪽의 대회의실로 날마다 출근을 했다.

정규직 노동조합 동지들이 배려해 준다 해도 남의사무실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날마다 날마다 좁은 공간에 모인 우리는 정규직 동지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숨죽여 조용조용 노동운동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최근 다른 사업장들의 사례를 서로 조사해와서 알려 주기도 하고,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잊혀지지 않고, 아직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식당앞에서 돌아가면서 1인시위도 했다.

날마다 날마다, 2003년 내내 쉼없인 진행된 현대자동차 원, 하청 회사와의 싸움으로 지치고, 교묘한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지친 조합원들은 많이 탈퇴해서, 그 겨울 우리 지회의 조직률은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한때 400을 넘던 조합원의 숫자가 50으로 내려가 있었다. 현장에는 무거운 먹구름이 일하는 조합원들 머리위에 머물렀다.

날마다 날마다 술을 마시면 아산공장에 불지르고 죽어버린다고 화를 토해내던 조합원도 있었고 날마다 날마다 그러나 우리가 잘 견뎌내서 다시 현장의 비조합원들까지 설득해서 한바탕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현대자동차라는 상대가 너무 크지만, 우리도 우습게 보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격려하고, 그러던 1월 어느날이었다.

새해 목표가 무엇인지, 노동조합과 관련된 것 말고 각자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것을 적어서 발표해보자고 했다.

'술을 적게 먹기' '담배 조금 덜 피우기' - 결코 끊는다는 사람은 없었다.

'연애, 혹은 결혼' - 그중 두명의 동지가 차례로 결혼을 했다. 짚신도 짝이있다는 말을 증거하는 사례들이라고 우리는 놀렸다. 해고되어 수입도 없는 사람을 뭐 볼것있다고 결혼을 한단말인가!!!

'동지들에게 편지쓰기' - 내가 받은 바없으니 실제 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미혼인 동지들 교육해서 짝지워주기' - 이 목표를 써낸 동지 말하길, 우리가 연애의 기술을 너무 모른다고, 자기가 교육해서 연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목표하고 했는데, 남들 연애하고 결혼하는 동안, 연애의 기술을 잘 안다는 본인은 아직 미혼이고, 내 알기론 그사이 연애한 바도 없다.

'한달에 한번, 한명씩 동지들에게 돌아가며 맥주사기' - 여름쯤 내차례가 되어 술을 마셨다. 

우울하고 답답한 그 사무실에서 한동안 웃음꽃을 피우며 말하는 동지들의 새해목표를 들으며 12월 31일과 1월1일이 사이에 밤에 뭔가 다른것이 있다해서 문제될것도 없다고 무심히 인정했다.

그 겨울이 끝날때쯤 우리는 불법파견투쟁을 기획하고 시작해서, 현장의 조합원들은 심지어 쓰레기통에 있는 사양지까지 줏어와서 근거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올때쯤 11월 현대자동차에 1만여명의 불법파견 노동자가 있다고 노동부가 판결했다. 비조합원들이 지회에 다시 가입하기 시작해서 몇몇은 복직도 하고, 다시 싸우고 해고되고, 또 수배되고 구속되고, 다시 싸우고 또 패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300여명되는 공개된 조합원 숫자에 그다지 변화가 없다.

문득 동네 도서관 가는길에 올해는 뭘 목표로 해볼까 생각도 하게된 덜 까칠해진 팥쥐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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