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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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지는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인간, 마치 얼굴 가득 굵은 글씨로 "날 내버려둬. 하지만 도와줘." 라고 써놓은 듯한, 그런 성가신 인간이 슈지는 푸른빛이 도는 고등어 초절임보다 더 싫었다. 

책장을 열면 한꺼번에 우루루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캐릭터가 선명해서 좋다. 

슈지와 소마, 그리고 야리미즈 

주요 캐릭터들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냄새를 아는 것처럼 공감한다. 


경찰관료사회의 모두가 묵인하는 관례화된 비리에 동참하지 않아 왕따인 소마 

원칙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니 가끔 답답하고 무뚝뚝하지만 유능한 경찰이다. 


슈지또한 죽마고우들 사이에서 발생한 폭력과 불행이 왜 내게 온것이냐고 

내가 왜 소년원을 가고 죄인이 되어야하냐고 분노하지 않는다. 피해를 당한 친구에게 매달 돈을 보내며 묵묵히 일한다. 

어릴때 불운을 당해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융통성과 순발력이 있고 의연하다. 

유별난 냉정함과 도를 벗어난 무모함, 이라고 소마는 슈지를 판단한다. 


늘 진지한 소마와 슈지에 비해 아리미즈는 가볍다. 무거운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날라리 탐정스타일의 캐릭터

방송국출신답게 재치있고 감각이 좋다. 무엇보다 두뇌회전이 빠르다. 

이 세사람의 팀풀레이가 스토리를 잘 받쳐준다.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 

이윤을 위해 사람의 안전도 외면하고 문제가 발생하자 은폐하며 사람도 죽이는 거대기업과 

그 기업에서 커미션을 받은 거물 정치인, 스스로 부패의 주체인 경찰관료사회 

살인사건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원인과 결과를 추적해 나간다.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번갈아 서술해서 다면적인 사실확인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구성해 무겁고 진지하고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산업폐기물 문제,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문제, 사람들의 편견과 언론의 문제등 

자칫하면 오히려 산만할 수 있는데, 오타는 선수다. 말끔하게 정리하며 벽돌을 쌓는다. 

인간적인 캐릭터와 적절한 구성이 잘 어울려있다.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이런식의 정신없는 반전은 확실히 영화 스타일이야. 


소마가 창문을 열자 창문에서 활짝 열어둔 문으로 햇볕 냄새가 실린 바람이 불었다. 

빛 속에서 봄망초가 흔들렸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추리소설이다. 



2.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유능한 인간과 무능한 인간이죠. 유능한 인간이 사회의 틀을 만들어 경제를 움직이고 무능한 인간이 톱니바퀴로서 단순한 노동에 종사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변함없는 진리예요."

5명의 목격자에 대한 청부살인을 결정하며 핫토리가 말한다.  

자기는 유능하니까 무능한 인간 따위는 죽여도 된다는 거지. 


모리무라는 도리어 기가 탁 막혔다. 

이런 쓸모없는 인간들이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을 비장의 카드를 쥐고 있다니...... 무능한 인간이 떼지어 유능한 인간의 인생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 짓은 너무나 부당하고 터무니 없이 교만한 행위다. 

모리무라의 인생을 망가뜨린건 5명의 목격자가 아니라

식품회사를 운영하며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위험하고 무능한 스스로의 판단이다. 참 뻔뻔해. 


정말 이럴것 같아. 

대한항공의 조씨, 아시아나항공의 박씨, 삼성의 이씨,  현대의 정씨, 조선일보의 방씨  

이 사람들은 자기네가 유능해서 무능한 노동자들에게 뭔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실제로 이 분들은 뭔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더라고 

대법원이 대통령과 거래하고, 별짓을 다하니 그 밑에 판사들은 대기업 범죄자들에게 돈 받고 눈감아 주고 그러는 거지. 

돈이 많아 법위에서 노니 무능할 수가 없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비슷하것 같아. 


오타 아이는 직설화법으로 말한다. 

"그렇겠지. 하지만 네 사정은 달라져. 내 샘플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만 '사사키 구니오'가 이어받을 거야. 그 '사사키 구니오'를 죽여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 '사사키 구니오'가 나타날 거고, 마자키가 죽었음을 알고 우리가 '사사키 구니오'를 이어받은 것처럼 말이야. 네가 아무리 죽여도 '사사키 구니오'는 죽지 않아."

이말을 하기 위해, 사사키 구니오의 바보 같은 신념을 말하기 위해 두권으로 된 소설이 필요했다. 

정의에 대한 이런식의 솔직한 신뢰는 촌스럽고 비현실적인데, 읽다가 울컥 했네. 

오랜만에 재밌는 일본산 범죄소설을 보았네. 


오타 아이를 더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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