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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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10 


1989년 열여덟살 캐리가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간다. 

아메리카의 꿈, 산업화,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는 욕망의 기관차로 달려가는 시대. 


"그러니까 병이 나서 일자리를 잃었단 말이지요?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요?" 그가 물었다.

"찾아봐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이 멋진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면 굶주린 개처럼 자기 뒤를 바싹 따라붙을 궁핍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필경 드라이저는 가난을 경험해 본 것이다. 

굶주린 개처럼 따라붙는 가난의 두려움을 아는 것을 보면.

훌륭한 작가들은 자기가 사는 시대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드라이저도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의 드라마. 오래된 환상, 솔깃한 욕망. 


시스터 캐리. 근대 보급형 욕망의 주인이다.   

그녀가 주급 4달러 50센트의 제화공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드루에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 같이 살다가, 더 좋은 옷을 입은 허스트우드로 갈아타고 

여배우가 되어 몰락한 허스트우드를 떠나며 남은 것은 다 가지라고 메모한장 남긴다. 

쿨하게 떠나는 그녀를 보며 시원했다. 

스탕달과 발자크가 발명한 사실주의 소설 속 욕망의 주인이 '그녀'라 좋더라. 

여자의 일생과 테스를 지나 목로주점까지. 답답한 자연주의 소설의 여주인공들에게 질리거든. 

이소설에서는 허스트우드가 그런 역할이라 다행이다. 


허스트우드는 뻔뻔하고 바보 같아. 뭐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다 있담.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보며 이런 생각 하니까 좋으네. 

재산이 모두 아내의 명의로 되어 있는데 (오호, 똑똑한 그의 아내다!) 결혼한 사실을 감추고 캐리와 연애를 한다. 

심지어 공금횡령이라니. 

그것이 우연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횡령하는 장면이 구구절절 지리멸렬하다. 

우연히 횡령한게 뭐 자랑인가. 우유부단한 바보일뿐. 


금박을 입힌 의자 위에서라면 누군들 슬픔을 마다하겠는가? 향수뿌린 태피스트리, 쿠션을 댄 가구들, 제복 입은 하인들에 둘러싸여 고통받기를 싫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슬픔조차도 매혹적인 법이다. 캐리는 그런 것을 원했다. 

나두, 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캐리의 욕망은 미국의 욕망이고 자본주의의 욕망이다. 2018년 한국의 욕망이다. 

욕망이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그래서 늘 허기지다. 

욕망이 없는 춘향전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새로운 욕망의 시스터를 보고 싶다. 

아직은 흔들의자에 앉아 고리오 영감을 본다. 시스터 캐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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