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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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혹한 한국 현대사의 횡포 속에 서승, 서준식 두형을 감옥에 두고 일본에서 고통받았던 서경식이 스스로

1990년대 이후로는 점점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하니 다행이다.

젊은날 겪어야 했던 야만적인 독제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정직한 성찰로 남아 그에게 힘이 된다.

부디 그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2.

어렸을때 페스트로 가족을 모두 잃은 21살의 카라바조가 도착한 로마 1592년

가장 빈번하게 펼처진 오락은 공개처형이었다. 부모들은 그 광경을 보여주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다. 때로는 이단자가 남색에 빠진자와 마찬가지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산탄젤로 다리와 도시의 성문 위에서 참수당해 썩어가는 머리를 수도 없이 보았음이 틀림없다.

데즈먼드 수어드의 당시 로마에 대한 설명이다.

기근이 없을 때조차 길 위에는 수많은 걸인과 고아들이 굶주린 배를 안고 앉아 뒹굴었다. 수많은 매춘부들이 퍼트린 성병도 유행했으며 도로에는 사람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프레모 레비와 함께 카라바조를 보러 로마에 왔다고 서경식은 말한다.

원래 전설 속 메두사는 여성이지만 여기에 그려진 대상은 소년이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목을 내려친 순간 자기의 표정을 어떻게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물며 눈을 맞추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그런 대상을 무엇보다 이렇게 무섭고도 처참한 자화상을 그리고자 했던 자는 대체 어떤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카라바조의 메두사

목이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경악하는 표정의 메두사 얼굴이 자화상이라니.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두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 사람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렸다. 참수에 매혹된 화가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리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자화상이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릴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자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점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얼마나 혹독하며 무참한가......

고통스런 영혼이 보이는것 같은 그림들, 에 서경식은 공명한다.

 

두형을 파렴치한 조국의 감옥에 두고 서양미술순례를 했던 서경식

짓눌린 현실에 틈을 내 숨을 쉬려고 떠난 여행이지만 고통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 고행의 순례처럼 보였다.

그를통해 처음 오토 딕스의 그림을 보았어. 그 선명한 정직함에 놀랐지.

 

 

2.

카라바조로 시작한 이탈리아 인문기행이 반파시스트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흔척을 쫒어 막바지에 이른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히눈.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반파시스트 활동가

나는 이런 이력이 부럽다. 반파시스트 활동을 하는 사업가라니.

반파시스트는 고사하고 반인권적인 대한항공 조씨 일가가 떠오를뿐. 천박한 것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사형수의 편지를 소개해준다.

스무살의 기계공이었던 아르마도 암프리노는 "산악지대에서 길고도 고생스러운 생활 끝에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이제 곧 성체를 나누어 줄 형무소의 담당 신부님의 입회 아래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나중에 신부님 계신 곳에 가면 내가 묻힌 장소를 가르쳐주실 겁니다."라고 남겼다.

예순한 살의 재봉사 주세페 안셀미는 세상에 남게 될 가족에게 이렇게 썼다. "오늘밤, 처형된다고 들었다...... 잘 들어라. 나는 죄가 없어. 단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꾸민 덫에 희생된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보다 더욱 가슴을 펴고 떳떳이 살아야만 하는거야."

가구를 만드는 마흔한 살의 장인 피에트로 베니데티는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공부와 노동을 사랑하거라. 정직한 삶이야말로 그 어떠 것보다 훌륭하며 인생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란다......인간에 대한 사랑을 삶의 신조로 삼고서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과 고통에 항상 마음을 쓰거라. 자유를 사랑하고 이 보물을 위해서는 부단한 희생을, 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만 한다는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예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하거라. 하지만 진정한 조국은 세계라는 점, 세상 어디에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바로 너희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정치범의 사형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해주고 그것을 남겨 나중에 책으로 묶을 수 있다니.

박정희의 사형수들은 그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노예들 까지.

나는 변함없이 비관적이지만 그 비관의 성질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나 자신이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있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거치고 이토록 수많은 잔혹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관한다.

환갑을 넘은나이, 이제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서경식은 여전히 고통과 상처에 예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것에 게으르지 않다.

그에게 성찰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천천히 걸어가는 나이든 현자의 지혜를 보는 느낌이다.

 

서양미술순례와 고통의 원근법을 다시한번 보고 싶어졌다.

나도 이제 마흔일곱이고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밝고 친절하지만 신랄한 사회비평가였고 누이나 선생님처럼 나를 대해줬던 리타, 귀족 공산주의자 베를링구에르가 체현했던 유로코뮤니즘을 향한 기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을 바보같은 농담으로 숨시고자 했던 젊은 시절의 나...... 모두 멀리 사라져버렸다. 인생은 이다지도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부디 그의 노년이 편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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