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누아르 1 : 3월의 제비꽃 (북스피어X) 개봉열독 X시리즈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1.

필립 커의 베를린 3부작 

레이먼드 챈들러가 얼마나 좋으면 이름도 필립 커일까.

챈들러는 필립 말로라는 매력적인 인물로 어두운 뒷골목을 걷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형을 창조했지만 

가장 좋은 것은 단언컨대 시적인 문체다. 

하라 료가 일본판 하드보일드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적인 문체는 챈들러를 못따라가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베를린 3부작의 첫번째 3월의 제비꽃 책장을 넘기며, 영국작가가 쓴 히틀러시대의 독일과 함께 문체가 궁금했다. 



2. 

내 의뢰인의 대다수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사업은 매우 수익성이 높고(그들은 지불을 미루는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같은 문제를 의뢰한다.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일. 그 결과 또한 거의 흡사하다. 게슈타포나 나치 돌격대원에 의해 란트베어 운하에 유기된 시체로 발견되거나 보트를 타고 나가 반제 호수에서 쓸쓸히 자살하거나 경찰 리스트에 올라 KZ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거나.   

1930년대 국가사회주의, 나치가 전쟁으로 달려가던 시기. 잔인하고 노골적인 폭력의 시대. 

어쩌면 필립 말로와 잘 어울릴지도 모르지. 그러나 어쩌면, 낭만이 찾아 질까? 


"란트베어 운하에서 남자 시체를 건졌대."

"뚱뚱한 철도원 만큼이나 흔치 않은 일이군 그래." 내가 그에게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운하는 게슈타포의 화장실이야. 누군가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사라지면 경찰 본부나 시체 보관소보다 운하 관리 사무소에서 찾는게 더 빠를 거야."


"한스 위르게 보크, 서른 여덟. 1930년 3월 철강 노동조합원을 폭행해 불구로 만들어 6년형을 받았소."

"파업 진압자였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대한민국 용역깡패들은 파업중인 노동조합 조합원들 혹은 집에서 쫓겨나는 철거민들을 폭행해도, 6년형을 살지는 않지. 


지멘스 전자 직원 가족에게 제공된 수천 채의 회반죽 벽돌집들은 모두 똑같았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긴 각설탕 같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더 마뜩찮은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제3제국에서 진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균질한 주거 형태보다 더 나쁜 일들이 행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긴 닭장같은  집에서 사는 대한민국 주민들은 스스로 마뜩잖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더 넒은 평을 바랄 뿐이고. ^^;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가 현관에 우리만 남겨놓고 가자 잉게가 작은 탁자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총통의 사진 액자가 하나만이 아니라 세개나 걸려 있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충성심이 넘치는 모양이에요."

"몰랐습니까? 저 액자는 울워스에서 특가 판매중이죠. 독재자 두개를 사면 하나가 공짜예요."

빵 터졌다. 독재자 두개를 사면 하나가 공짜다. 싸게 세일해서 떠리로 파는 독재자라니. ㅎㅎㅎㅎ 

왠지 독일사람들과 유머를 연결시켜 생각해 본적 없는데 

이런식의 유머로 커는 1930년대 무거운 베를린 분위기에 균형을 유지한다. 재밌는 소설이다. 


공기중에는 연필로 깍을 때 나오는 부스러기 같은 냄새가 났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헐리우드에 비하면 필립 커의 베를린은 너무 위험하다. 

챈들러는 낭만의 우울이고 실존의 우울이었다면 커는 공포의 우울이고 불안의 우울이다. 

나치조차 내부 역학으로 힘러와 괴링은 라인을 따로 만들어 힘싸움을 하고

지하 범죄조직이 있고, 돈 많아 이 모든걸 조율하며 세력으로 싸우는 자본이 있다. 

일개 탐정이 이 틈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귄터는 다하우 수용소에 끌려간다. 

나치스가 적대시하는 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나치스가 싫어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공산당원과 사회민주당원, 녿ㅇ조합원, 판사, 변호사, 의사, 교사, 군인, 스페인 재전의 공화국 측 군인, 여호와의 증인, 프리메이슨 단원, 카톨릭 성직자, 집시, 유대인, 강신론자, 도둑, 그리고 살인자


다하우에 다녀온 지금에야 나는 국가사회주의가 독일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깨달았다. 


하드보일드의 배경으로 나찌시대의 베를린은 너무 어둡고 무겁다. 

조절을 하느라 나찌를 조롱하는 농담도 하고 유머를 잃지 않지만 그래도 무겁다. 

세기말의 분위기라고 할까. 냉소적이고. 

유대인을 공격하며 더 잔인해지는 나치를 참고 살며 사람들은 자학하기도 한다. 

베를린 누아르에도 그런 감정이 있다. 


필립 커가 영국 사람이라는 것이 내내 걸린다. 

나찌시대의 핵심은 잔인한 게슈타포와 히틀러, 힘러, 괴링 뿐 아니라 다수의 인민들이 그들의 정치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수용소에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 것을 알고도 안보이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을 

패전후 죄인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영혼을, 승전국 영국 사람인 필립 커가 잘 쓸수 있을까. 

판단을 유보하고 다음편을 보기로 한다. 

 이만하면 하드보일드 소설로는 잘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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