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문제 -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재키 플레밍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역사는 남성의 역사다. 아, 그런데 동시에 여성혐오의 역사구나!


계몽주의 시대의 산만한 천재이자 선천적 노출증 환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소녀들의 기를 어린 나이에 꺾어 놓아야만 남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자신의 본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일찌감치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는데, 이 역시 어릴때 기를 꺽어놓기 위해서였지. 

깜짝 놀랐다. 

루소는 인간혁명의 사상이 녹아있다는 그 유명한 교육서 에밀을 쓴 사람이다. 

인권에 관한 고전으로 꼽히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도 그렇고. 

안 읽기로 했다. 소녀들의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주장보다, 자기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버렸다는 사실이 더 용서가 안된다. 

인간혁명이고 인권이고 개뿔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과 제인 오스틴 사이에 약 700년동안 글쓰는 여자들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는데, 글 쓰기에는 사색이 필요하고 사색은 육아에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더군. 


영국의 비평가 존 리스킨이 말하길, "여자의 지성은 발명이나 창조를 위한 것이 아니다...여성들의 진정한 재능은 칭찬하는데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여자 피카소까지는 배출해내지 못했는데, 피카소의 뮤즈들이 얼마나 많이 자살했는지를 고려하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지. 

피카소가 말하길, 여자들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하고 했네. 자수를 두거나 박수를 치던 존재에서 고통받는 존재로 변한게 어딘가 싶지만...

여성 혐오의 역사에 남을 주옥같은 말들이, 단순한 검은 펜선의 그림과 함께 짧고 위트를 담아 간단하게 적혀있다. 


1840년에 열린 세계 노예제 폐지 대회에서는 약 4,800티로미터를 여행해 온 여성 대표들의 참석 허용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 하느라 대회 첫 날의 반이 지나갔다네. 결국 여성 대표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고 그녀들은 커튼 뒤에 관중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다는군. 

한심한 것들. 여성들의 지위가 노예와 같으니 그 폐지를 위한 대회에 노예의 참석을 불허하는구나. 

이 사건은 곧 1세대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어졌고 여성으로서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길수 없었던 지난 2,000년의 역사가 이렇게 종식되었지. 

그러게. 노예제 폐지를 위해 달려온 여성 대표들이 대회에 참석을 거부당하고 커튼뒤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겠어. 

아! 내가 노예구나. 각성한 후 폐미니즘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거지. 

문장은 짧지만 행간을 읽는 재미가 있다. 


쇼펜하우어가 간결하게 정리해 주었어. 여자는 '몸만 큰 아이'로 어린아이와 남자의 중간쯤 되는 존재라고. 여기서 남자란 진짜 인간, '인류'를 뜻하지. 


그러나, 잘난 남자들이 뭐라고 떠들든지 

마리 퀴리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진한 남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는군. 나중에 연구실에서도 입을수 있도록 말이지. 

자긍심 높은 여성들의 발걸음은 혐오의 역사를 뚫고, 간다. 의연하게. 마리 퀴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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