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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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서울에서 광주로 운전하고 내려오는 중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무더운 중복 날, 그것도 백주대낮 대로에서
낯 두껍고 대담하고 급한 수퇘지가
좁은 4.5톤 차 짐칸에서
한 몸 간수하기에도 버겁게 흔들리는
암퇘지 등에 자발없이 올라타
앞발로 붙잡고 뒷다리에 힘을 주며
주책없이 안달이다
코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한순간만이라도 떨쳐내려는 본능인 듯
팽팽한 엉덩이가 떤다 바르르 바르르

그 짓을 보고 나는
뒷좌석에 앉은 아이 모르게
실성한 아비처럼 혼자 피식피식 웃다가
그만 숙연해진다

나치가 유태인을 태우고 수용소로 가는 중
붐비는 전차 한쪽 구석에서
미친 듯이 성교하는 중년 부부가 차라리 성스러워서
아무도 눈을 흘기거나 혀를 차지 않았다는
프리모 레비의 증언이 생각나서

  

내가 아는 김정원은 여러 명이 있다. 일단 내 동료직원 중 김정원이라는 호리호리한 분이 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있다. 그리고 내가 최근 알게 되었으며 딱 우리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교훈적인 시를 짓는 시인 김정원 님이 있다. 근데 왠지 다 남자들이다(...) 아무튼 이 분과는 가족보다도 더 돈독하다는 페친 사이가 되었는데, 황송하게도 꽤 오랫동안 나의 페친이 되어 주셨으며 내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신 작가 이인휘 씨가 직접 연결고리가 되어주셨다. 이 글에서 감사를 표하려 한다. 작가님의 작품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ㅠㅠ 

 

 시인은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고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알려지기 거부하는 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혼자 걸어다니기를 좋아하며 불의에 참지 못하는 불같은 천성도 있다고 하신다. 이를 '하느님이 주신 고마운 성격'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개신교이건 천주교이건 독실한 신자이심이 틀림없다. 아드님에게 밥상머리 교육은 물론 십계명도 아낌없이 가르치시는 바른생활 선생님이시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시에서는 미래파라고 말할 만한 요소가 없다. 하지만 시집에서 나의 너와 너의 나라는 철학적인 요소를 언급하신 것으로 볼 때, 그의 시는 거듭거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동시에 시집 처음부터 위안부 관련 소녀상을 언급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염려하고 슬퍼하는 자상함이 배어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 들어있는 과한 교육성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시집의 제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국수는 네가 산다매? 국수 좀 사주라~."는 말을 얼마나 들어왔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성공하면 찾아와서 국수를 사겠다던 자신의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서러움을 한탄하며, 국수는 자신이 사시겠다고 당당히 약속을 한다. '혹시나 성공하지 못해서 제자들이 찾아올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염려하는 자상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과연 칼도 녹슬게 하고, 가슴에 박힌 못도 품을 만한 포용력이다.

 본인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부터 시인이 천국과 지옥의 균형을 잡는 걸 보고 충격을 먹어서 대학교 시절부터 그걸 인생을 보는 시각으로 잡고 있는 중인데, 이 시인은 그것을 줄을 탈 때에 부채를 펴는 방법으로 너무나 간결히 설명해주셔서 충격을 받았다. 머리보다는 손과 발로 익히라는 구절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구글에 동글뱅이를 검색하는 제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 분의 정직한 시처럼 양양에서도 내가 알기론 두 명의 전교조 선생님들이 비슷한 스타일로 시작 활동을 하시고 계시다. 하지만 김정원 시인처럼 깔끔하고 명료한 글은 아닌 듯하다. 내 인생의 목표를 이 시집에서 다시 재확인해서 너무 반가웠다.

 

  

전라도에 찾아오면 술을 사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빈말이라도 너무 반갑고 황송하다. 이인휘 작가분이 하신 것처럼 시화라도 그려서 마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미친 짓이라기보단... 슬픈 짓임을 알았다. 보고 또 봐도 진짜 존못...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간이 퇴화될 수 있는가... 빨리 캘리그라피 펜 사서 시화를 더 그려야 할 거 같습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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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찬 가난
Lothar Hardick ofm 지음, 성글라라 익산 수도원 옮김 / 프란치스코출판사(프란치스꼬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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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에 관계되는 지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지체를 타락에서 깨끗하게 보존하고 물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 지체는 동정을 지키면서 혀는 보존하지 못할 때, 혀는 동정을 잘 지키면서 눈이나 표정, 귀나 손은 지키지 못할 때, 그리고 이 모두를 다 동정으로 깨끗이 보존하면서 마음으로 격정과 열정의 왕래를 허락하면 자신을 하느님과 천상천하의 모든 이들 앞에서 조소와 모멸의 대상으로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관련된 책을 보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책이라기보단,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면서 했던 짧은 명언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결성되고 나서 서로들 같이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자기네들끼리 만든 규칙을 에세이 식으로 풀어놓은 책으로 봐도 되겠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성인의 명언도 명언이지만, 수도회 사람의 글귀가 심상치 않다. 간간히 혼자 고행을 해온 프란치스코 성인과 달리 수도회는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심지어 핏줄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존경하는 사람과 모시는 신이 공통되다는 이유만으로 모여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공동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소리를 평범하게 들어 넘길 수가 없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모여 오랫동안 서로의 등 뒤를 서로에게 맡겨야 하는 현대의 일터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무리 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심적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혔다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종교 내의 단체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도심 내 사람들이 안심하고 인연을 맺기가 딱 좋다. 왜냐하면 (천주교에서는) 신 아래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신만큼 높은 사람이 없기도 하고 혹은 아무리 어떤 인간이 훌륭하더라도 결국 인간이기에 종교 내 단체에서는 꽤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엔 갖가지 인간이 있기에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종교를 믿는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신을 믿으면서도 신을 가슴에 모실 수도 있는 타인을 '진짜 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따돌리는 케이스가 있다. 이 책은 살면서 만날 수도 있다고 넘길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을 그냥 봐주지 않고, 옷까지 발가벗겨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그들의 못되고 썩어빠진 마음을 꼬집고 있다. 오죽하면 그들에게는 힘센 수도사들의 몽둥이만이 제격이라 하겠는가. (심지어 비유가 아니다 ㄷㄷ.)

 이 책 덕분에 앞으로도 프란치스코 성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더 많은 서적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치와 사회관계의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있어선 정말 유익한 책이었다. 특히 명상에 있어서는 나와 굉장히 의견이 유사해서 재밌게 읽었다. 그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나오는 김도인이 쓴 책에서 '명상은 쉽다'는 식의 구절이 영 탐탁치 않았는데, 이 책에서도 명상은 쉽지 않다고 써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과도 관련이 있다 생각한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만, 두려워할수록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난 그게 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내심 두려워하는 게 있어야 인생을 조심하며 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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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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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포옹은 모든 사람을 배제한다
한 사람만 빼고
ㅡ라이너 쿤체

검은 상복을 입은 그림자들이
우리들의 묵념을 대신하는 오후

햇빛은 한없이 은총을 낭비하고 있다

둥근 광장이 둥그레진다
네모난 광장이 네모진다
척삭동물들이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두 사람이 잠시 포옹을 할 때
선인장에 잠자리가 날아와 박힌다
날개를 펼친 채로 안온하게

가녀린 신음들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사람이 되고 싶어 흘려온 핏방울이
적색 구름을 모은다

오늘은
어느 위대한 마지막 날이
비밀처럼 스산하게 나를 스치는 듯하다

천사들이 남몰래
날개를 부러뜨리는 소리라던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지루했습니다 쿨럭;;; (몰매)

 

 역시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없는 건지, 아님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건지, 또 아니면 이 분의 시를 조금씩 조금씩 들어온 게 너무 많아서 구절들이 다 익숙해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시를 처음 읽는 사람인데 고전 시들을 읽기에 지쳤고 조금 어려운 시를 읽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이거 대체 뭔데;;; 강은교 시인보다도 더 중후하고 클래식한 느낌이다. 느낌은 비슷한데. 슬픈데 내장이 안 나와서 그러나?

 

  그동안 잃어버린, 비에 젖은 우산을 펼쳐놓아 7월의 포도나무나 8월의 오동나무처럼 열려있는 현관문 앞을 꾸민다는 마지막 시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들긴 했다. 이번에 진해를 갔을 때가 생각난다. 건물 하나 당 벚나무 하나가 서 있다는, 그래서 벚나무가 그 집에서 죽은 사람을 추도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제주도 강정마을이나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듯한 시가 제법 많았는데, '아이들'이란 구절을 하나도 담아내지 않고 슬픔과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해낸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학생들 알고 있었어요? 어디다 대고 얘들아 하면서 반말이야?"라거나 "학생들만 희생된 거 아니거든요? 어른들도 있거든요?" 라고 세월호 관련 글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소년들이 꽤 되는 걸 감안할 때, 널리 쓸 수 있는 시들이 아닐까 싶다. 메세지의 명확성이 약간 모잘르고 애매하긴 하지만.

 그리고 사실 그녀의 시보다 황현산 씨의 평론이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여태까지 보고 들었던 평론 중 두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과연 대중적인 평론가는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좋은 참고가 되었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 생기는 독자의 마음을 전부 덮어버리면서 지배하는 듯한 그 느낌을 볼 때면 아주 좋은 평론은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난 천 년의 깊은 잠을 자고 싶다는 시인의 시를 그렇게까지 슬프게 읽진 않았다. 누구나 아침에 눈 뜨고 싶지 않았던 적은 있지 않나? 그냥 평범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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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열린시학 시인선 30
구광렬 지음 / 고요아침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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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중에서

오늘 하루 우리 중
누군가는 폭탄을 설치하고
누군가는 그 폭탄으로 세상을 뜨며
누군가는 그 이별로 비애의 잔을 마시고
누군가는 그 이별로 진한축배를 들었다
그래도 취하는 게 마찬가질까?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시들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여성들은 너무나도 다부지다.

 

 예를 들어 전에 읽었던 엄마의 골목이라는 책에서는 진해역을 보면서 집을 떠나갈지 말지 갈등하는 어머니를 그렸다. 보통 자식들 때문에 가지 않는 게 보통이었고 그 한이 우리나라의 정서인 마냥 그려진 게 한국문학들이다. 그러나 이번 시에서는 돈을 너무 좋아해서 감옥까지 들어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쓸쓸함을 지울 수 없는 여성이라던가, 몸을 팔며 근근히 살면서도 여행을 떠날 때 먹을 오징어 살 돈은 끝내 챙겨두는 여성이라던가, 도무지 정착시킬 답이 없는 뱃사람의 아이를 밴 채로 맘보를 추는 여성이 나온다. 다 같은 다부진 여성이고 아이를 키운다지만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묵묵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 탑으로 향하는 '어머니'와는 또 다른 정서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에 매여 있다기보단 남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자신을 둥글게 깎아내는 여자들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남미 정서를 가진 듯한 구광렬 시인은 그것을 해학적으로, 발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시의 내부엔 생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성찰이 담겨져 있다. 동치미 국물에 이는 파동마저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지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햇볕을 잃은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거리를 둔 채 표현해내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자학적인 시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시는 형이상학에 빠져들지 않으며, '남'과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혈연이라 해서 다 우리가 아니며, 혈연이 아니라 해도 다 남은 아니다. 그는 왜 멕시코 언어와 우리나라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여 두 개의 시를 지었을까? 멕시코 내부에서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를 독립시키려 투쟁했던 시인들을 남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가 독립한 이후에도 '멕시코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보며 시인은 혼란에 빠진 듯하다. 6.25 이후 정신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신병을 지닌 많은 남성들이 있었다. 거의 모든 우리나라 국민들의 배가 주렸던 때라 정신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인 시대였다. 그들은 쌓이는 갖가지 울분들을 여자를 때리는 행위로 풀었고 그게 또한 일반적이었다. 여성으로서는 또 한 번 수탈의 시대가 다가온 셈이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여성들은 독립투쟁을 하지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왜 그러셨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들은 우리 시대의 무겁고 서늘한 한국식 페미니즘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독립투쟁을 하던 시인이 지금부터라도 아르헨티나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도 좀 더 많은 여성들을 포용했음 좋겠다.

 

  

https://youtu.be/mHvf6sqKGRA: John Denver- My sweet lady

 숨겨진 노래 중에서

난 지금 존 덴버를 듣고 있다 모든 양지가 음지 되던 시절 차라리 쥐구멍에 볕들 날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시절, 종로 2가 지하 양지다방에서 맹세코 리필 되지 않을 80원짜리 보약 같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전화 한 통 없이 바람맞힐 그녀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듣던 LP판 속 그 노래들을......

재떨이 비운다는 핑계로 수시로 눈치를 주고 가던 다방레지와 신경전을 벌이며 다방에 후문도 있어, 혹시 하고 고개를 돌려보면 빗자루 몽둥이 머리를 한 뺀질이 DJ 영락없이 한 마디 한다

'5번 테이블 손님 아직도 기다리시나요?
정말 중요한 분이신가 봐요
누군지 몰라도 참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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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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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네 아버진 친구를 너무 좋아했단다. 남자들이란 참!"

  

이별은 사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때의 사랑을 후회하고 그때의 분노를 경멸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비교한다면, 당신은 그저 청춘을 낭비한 것이 된다. 왜, 당신이 만인에게 그렇게 잘 떠벌렸듯이 말이다. 그리고 청춘의 낭비는 죄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서 벌 받는다. 그렇게나 그 사람이 밉다면, 아니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배가 된다면, 차라리 바다를 보고 하모니카를 불어라. 바이올린을 켜라. 목청껏 노래를 불러라.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 바다를 가라. 그리고 당신이 감히 버리거나 태울 수 없었던 그 추억의 물품을 버려라. 당신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잊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추억의 물품을 버려도 추억은 살아 있다. 그 골목에. 그리고 생각날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그걸 가슴 속 깊이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 혹은 완곡하게 세상에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이 점점 나빠지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당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살다보면 기적같이 만날 수 있는 날이 한 번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라.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변화하지 않은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의 여성으로서 학교를 1년 쉬는 등 갖가지 이중차별을 겪었다면, 화자는 군대에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른 나이부터 마음에 간접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것도 또한 페미니즘적인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이라는 망막이 씌일 뿐, 엄마로 된다고 해서 딱히 벌레나 괴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이야기인 만큼, 여성의 본성을 최대한 발휘한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시바삐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야 군인들의 긴장감도 없어지고, 시스템도 파괴할 수 있다. 잘못된 군대 시스템이야기는 결코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와 퀄리티가 같지 않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왜 모를까?

 

  

음악은 각각의 사람과 장르를 넘나든다.

 이 책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곡이 거론된다. 102년의 역사가 있는 흑백다방의 현재 주인장이 여성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차는 팔지 않고 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거기서 4월은 너의 거짓말이란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남자주인공이 카오리라는 시한부 인생의 여자아이를 만나서 사랑을 했다. 베토벤 곡을 같이 연주한 순간은 한 번 뿐이었고, 카오리를 잃은 순간 그는 혼신을 쏟아 벚꽃을 피워내듯이 쇼팽을 연주했다. 원작이 만화인 애니는 거기서 끝나지만 난 그 이후의, 벚꽃이 진 이후의 앙상한 나무 코우세이란 남자의 삶이 궁금했다. 이 책에선 그가 죽고 그녀가 오래 살아남았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카오리가 석양과 젊음에 반짝반짝 빛난다. 이 책에선 주인공인 아들이 뛰어내린다. 이 책에선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았다. 꽃이 없어도 기억이 살아남고 담벼락이 헐렸어도 그 안의 집이 보이는 이 책은 사건이 없어도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애초부터 진해에 놀러가고 싶었고 그 곳의 명소를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집었다. 김탁환 씨와 페친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의 저서는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를 도서관에서 잠깐 쓱 훑어본 게 전부다. 요새 페친들이 써낸 책들을 보는 데 재미 붙였는데, 홍보도 많고 겸사겸사해서 책을 샀다. 그런데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을 여기 안에서 그렇게 홍보하시더라. 꽤 힘들게 쓰신 거 같은데, 볼까말까 망설여진다. 왠지 그 책을 보려고 결심하면 목격자들도, 걸어본다 시리즈도, 민쟁 님의 시도 결국 다 보게 될 것 같다. 끝없이 이야기를 보게 되는 건가. 

 

 어쨌던 진해로 출발하기 전에 이 책을 다 보게 되어서 다행이다. 저자의 동생이 설계했다는 표지 속 지도를 손에 들고 내일 새벽 포항가는 버스를 탄다. 어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한다.

 P.S 세월호 관련 소설로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도 나왔다고 한다. 3권째라고 하신다. 시리즈가 더 나올지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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