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열린시학 시인선 30
구광렬 지음 / 고요아침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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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중에서

오늘 하루 우리 중
누군가는 폭탄을 설치하고
누군가는 그 폭탄으로 세상을 뜨며
누군가는 그 이별로 비애의 잔을 마시고
누군가는 그 이별로 진한축배를 들었다
그래도 취하는 게 마찬가질까?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시들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여성들은 너무나도 다부지다.

 

 예를 들어 전에 읽었던 엄마의 골목이라는 책에서는 진해역을 보면서 집을 떠나갈지 말지 갈등하는 어머니를 그렸다. 보통 자식들 때문에 가지 않는 게 보통이었고 그 한이 우리나라의 정서인 마냥 그려진 게 한국문학들이다. 그러나 이번 시에서는 돈을 너무 좋아해서 감옥까지 들어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쓸쓸함을 지울 수 없는 여성이라던가, 몸을 팔며 근근히 살면서도 여행을 떠날 때 먹을 오징어 살 돈은 끝내 챙겨두는 여성이라던가, 도무지 정착시킬 답이 없는 뱃사람의 아이를 밴 채로 맘보를 추는 여성이 나온다. 다 같은 다부진 여성이고 아이를 키운다지만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묵묵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 탑으로 향하는 '어머니'와는 또 다른 정서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에 매여 있다기보단 남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자신을 둥글게 깎아내는 여자들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남미 정서를 가진 듯한 구광렬 시인은 그것을 해학적으로, 발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시의 내부엔 생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성찰이 담겨져 있다. 동치미 국물에 이는 파동마저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지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햇볕을 잃은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거리를 둔 채 표현해내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자학적인 시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시는 형이상학에 빠져들지 않으며, '남'과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혈연이라 해서 다 우리가 아니며, 혈연이 아니라 해도 다 남은 아니다. 그는 왜 멕시코 언어와 우리나라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여 두 개의 시를 지었을까? 멕시코 내부에서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를 독립시키려 투쟁했던 시인들을 남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가 독립한 이후에도 '멕시코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보며 시인은 혼란에 빠진 듯하다. 6.25 이후 정신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신병을 지닌 많은 남성들이 있었다. 거의 모든 우리나라 국민들의 배가 주렸던 때라 정신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인 시대였다. 그들은 쌓이는 갖가지 울분들을 여자를 때리는 행위로 풀었고 그게 또한 일반적이었다. 여성으로서는 또 한 번 수탈의 시대가 다가온 셈이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여성들은 독립투쟁을 하지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왜 그러셨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들은 우리 시대의 무겁고 서늘한 한국식 페미니즘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독립투쟁을 하던 시인이 지금부터라도 아르헨티나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도 좀 더 많은 여성들을 포용했음 좋겠다.

 

  

https://youtu.be/mHvf6sqKGRA: John Denver- My sweet lady

 숨겨진 노래 중에서

난 지금 존 덴버를 듣고 있다 모든 양지가 음지 되던 시절 차라리 쥐구멍에 볕들 날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시절, 종로 2가 지하 양지다방에서 맹세코 리필 되지 않을 80원짜리 보약 같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전화 한 통 없이 바람맞힐 그녀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듣던 LP판 속 그 노래들을......

재떨이 비운다는 핑계로 수시로 눈치를 주고 가던 다방레지와 신경전을 벌이며 다방에 후문도 있어, 혹시 하고 고개를 돌려보면 빗자루 몽둥이 머리를 한 뺀질이 DJ 영락없이 한 마디 한다

'5번 테이블 손님 아직도 기다리시나요?
정말 중요한 분이신가 봐요
누군지 몰라도 참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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