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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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신부님이 꼭 읽어보라고 권했었고, 그 이후 거의 까먹고 살다 오늘에서야 무심코 들여다본 책이다.
 철학에 프로이트란 인물을 가져다놓은 것은 꽤 색다른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사람으로서 나름 근대철학의 경계를 설정해 놓는다는 건, 상당한 자부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이 만들어진 점 자체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역시 철학을 한 권의 책에 얇게 담아낸다는 발상에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던 것일까.
 너무 간편하게 편집하려 의식하고 노력한 탓에 교과서같이 딱딱한 책이 되어버린 감이 없지않아 있다.
 게다가 빠져있는 철학적 관점들이 너무나 많다.
 독일의 비판철학을 담지 못한 점에 대해선 이 책을 덮은지 한참 후에도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 아주 이해할 수 없게 쓰여졌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철학과보다는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더 속편한 책이며, 철학의 소개서로 보고서 지나가기 무난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서 더 푸코의 저작들이라거나 '슬픈 열대'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하도 두꺼운 책이라서 읽기가 꺼려졌고, 한참동안 미루고 있었던 책들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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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환상 - 심리학시리즈 - 사이코 북스 07
줄리아 시걸 지음, 장수정 옮김 / 이제이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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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사이코 시리즈에 속해있는 아주 짧은 내용의 간결한 책이다.
 하지만 정신분석 혹은 상담 쪽에 몸담고 있는 관련자들이 쓴 책으로,
 언뜻 보면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정신분석의 기본인 오이디푸스부터 성도착까지 매우 폭넓게 써져 있다.
 말하자면 논문과 같은 것이라 하면 될까.
 줄리아 시걸은 상담가이며, 이 책에선 특히 아이들의 환상 심리에 대해 주로 다룬 책이다.
 fantasy와 phantasy의 차이를 매우 알기 쉽게 정리해 놨으며, 무의식적 환상에 대한 클라인의 연구를 기초로 하고 있다. 심리학을 접하는 일반인들이 읽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는 절판되었고 다른 도서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본이나, 우연히도 학교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보석을 캐는 기분이었달까...
 확실히 인터넷에서 검색해가면서 고생스럽게 사이코 시리즈를 찾아 모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4권은 어쩔 수 없이 사야 했고, 몇몇권은 도서관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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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사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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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증오하지 마지 않던 '노르웨이의 숲'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붙인 아이디어도 나름 좋았으나, 내가 증오하는 책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번역이 더 잘 되고  세심한 설명이 되어 있는 책으로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상실의 시대'로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최악, 그 자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성강박증이나 성벽에 걸린 듯한 주인공의(혹은 잠시 출연하는 나가사와의) 편력에 질려 있었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는 사회의 우울한 면을 보여준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방황만을 그려놓는데엔 치가 떨렸다.
 그 책의 끝부분만을 쓱 훑어 보았을 때의 그 막연한 불안함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나는 이 책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여유가 생긴 탓인지, 그 상황을 다시 한 번 보았을 때는 그저 막연한 공허감을 느꼈을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되었을 뿐이다.
 생과 사를 겪어가는 사람들의 초라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해피엔딩으로 가지 않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처럼, 난 이 책과 더 이상 인연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1Q84에 바뀌어 등장한 하루키처럼 세상 어딘가에 사랑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라카미 류처럼 역동적인 비극이 좋다. 안개에 잔뜩 찌푸려진 막연한 비극은 싫다. 그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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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개정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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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통은 책을 읽을 때 비소설류는 끝의 부록 혹은 맺음말 란을 읽어본다. 소설처럼 마지막 반전이 있을 경우엔 책의 재미가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소설이 아닌 책은 다루려고 있는 내용의 결정타가 시원스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서점에서 처음으로 이 책을 발견했을 때에도 여전히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인생이 변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감사한다’는 내용의 마지막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범상치 않은 제목을 가진 책이 마치 사람의 성공사를 다루는 유명한 비즈니스 책이나 혹은 사람의 생활을 향상시켜 줄 것이라 주장하는 심리학 책 마냥 자신만만한 포부를 담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에 남았었다. 그 후로 이 책의 명성을 많이 듣게 되었고 읽고 싶다고 쭉 생각해 왔지만 결국 지금에서야 읽고 소감을 이렇게 쓰게 되었다.

 앞에서 저자가 보여주었던 자신만만함이 수긍이 될 정도였다. 내용도 참신함은 물론이었고, 여성과 남성의 심리를 다루는 책 중에서도 정리가 매우 깔끔한 편이라서 쉽게 읽고 나에게 중요하다 싶은 점을 필기할 수 있었다. 굳이 남녀의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 성격에 해당되는 내용이 많고, 그것 때문에 내가 수없이 고민하면서 마침내 내세웠던 해결책들도 있어서 보면서 매우 신기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편지를 쓰면서 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가족들에게 읽어주면서 해결했던 방법이 그 책에 실려 있었다. 이 방법에 대해 1-12장 중 한 장을 써가면서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함을 느꼈다. 편지를 쓰기 전 설명서와 편지를 쓰는 상세한 방법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점, 그리고 아직 남편이 없어서 부부간 러브레터까지는 쓰지 않는다는 점은 달랐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해 다루는 점에서도 또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주로 끝에 가서 남녀를 통틀어 다루었을 뿐이다.이 책에서는 남녀의 각기 다른 특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 다음 저자의 사례와 저자가 상담하는 부부의 사례 등 다양한 예를 들었고, 그 특성에 대해서 서로 존중하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존중이라는 말은 남자던 여자던 가릴 것 없이 참으로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그 특성을 잘 살리려 노력한 점이 돋보이는데, 사랑의 편지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 책이었다. 물론 사랑에 대해서는 각자의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적게 걸릴 수도 있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줄이자면 여자는 아름다움, 대화, 공감, 사랑, 개인 간의 친밀함, 이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고 남자는 능력, 효율, 업적, 인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여자는 금성에서, 남자는 화성에서 왔지만 바로 그 다른 점 때문에 서로 이해를 못하여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하고 여자는 남자의 말투에 기분상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논쟁에서 드러나는 심리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 편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점수따는 법’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점수따는 법’ 에 대해 나열하고 그 점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도 있는데, 따지고 보자면 이 방법들도 남자와 여자가 충돌하지 않는 방법이다. 제목 때문에 남녀의 차이점만을 생각하고 보았던 나에게는 상당히 의문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수긍이 가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으니 싸움이 있고, 싸움이 있으니 남자와 여자 간의 균형 있는 생활, 특히 결혼이 깨져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가장 공감이 간 것은 ‘여자에게 점수따는 법’이었는데, 읽다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판 ‘백마 탄 왕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 저렇게 잘 해 준다면 아무리 아내가 남편에게 화가 났더라도 저절로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갸우뚱하기도 했다. 뭐, 그 책 안에서는 일단은 본인도 금성에서 왔다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 점을 생각하면 일단 의문이 없어지기는 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점수따는 법‘도 꽤 흥미롭게 보았으며 이 둘로 인해 여자와 남자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주기적으로 동굴로 들어가는 것과 여자가 주기적으로 우물 속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설명도 어느 정도는 타당한 차이라고 느꼈다. 나 자신도 주기적으로,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더 자주 그런 느낌을 겪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까닭 없이 우울하고 절망에 빠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당혹감을 느껴 억지로 그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왔고, 그러는 도중에 소중했던 남자 한 사람이 동굴에 들어가게 되어 그 감정이 폭발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그 관계는 망가지고 말았지만 지금은 그로 인해 귀중한 경험을 하나 획득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시작하는 논쟁은 더 이상 대화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먼저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자신이 기분 나빴던 이유를 그대로 말했더라면 상황이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오로지 내 탓만도 아니지만, 전적으로 마음을 여는 법의 미숙함, 대화법의 미숙함에 달린 문제이다. 대화법을 향상시키는 법에 대해서는 예시를 제시할 뿐, 이렇다 할 답은 제시하지 않지만 어차피 나름대로의 답을 만들어가야 할 문제이므로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제시한, 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은 여자가 주는 것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정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책을 보면서 후련함을 느껴, 남자들이 이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 생각은 변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전환점은 바로 이 내용이 실린 글에서였다. 이것도 역시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과 가까워질 경우 아낌없이 주는 쪽이 바로 나에 속한 유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 저절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했던 나로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사람을 사귀는 데에 익숙치 못했던 예전의 내가 이 책을 보았더라면 더 큰 충격을 먹었으리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으니 속으로는 분노하게 되고 결국 그 화를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막판에 폭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대화법을 써서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 자기감정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보단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방에게나 나에게나 좀 더 나은 하나의 의사소통방법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감가는 점이 많이 있었지만 “~해줄래요?”와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남성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에서는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책에서는 남자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말 같은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기분 좋은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예의바른 말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차근차근히 생각해보고 깨달은 바이지만, 동양과 서양의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는 표현의 당당함과 자유로운 표현을 더욱 선호할 수 있지만 동양에서는 아무래도 예절을 더욱 선호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칫하면 명령식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그것도 사회에서 쓰는 말을 굳이 가정에서까지 들여와서 써야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남자답다‘는 회사의 상하체계를 그닥 달갑지 않아 하는 나로서는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개념이었고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차이점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 점은 말도 안 된다 생각하고 집안에서는 결코 써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번역이 잘못되었다거나.) 오히려 그 때문에 집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야 아마도 계속 후자를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이랬다. 바로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꺼내기 전이 “~해줄래요?”라는 말보다 비난이 들어가 있을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싸울 때 쓰는 문장의 예시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니 굳이 ‘화성인의 말로 번역’할 필요도 없이 잔소리 외에 아무것도 아닌 요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내가 화날 때 객관적으로 쓰는 말들을 올려놓은 것 같아 살짝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정확히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청하고 그 요구를 받아줄 때의 기쁨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남자들에게 그렇게 힘이 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단순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누구한테나 달성된 일을 해결했을 때 받는 그런 보람과 기쁨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예시를 든 것이 있는데, 끝부분에 한 페이지를 차지하며 잠시 등장하였지만 자신이 실험대상이 되어 그 느낌을 기술한 사례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예시까지 든 것을 보면 나 자신 의외에도 이 개념에 대해서 이해 못하는 여자들이 상당히 많은가보다. 아무리 요즘 가정 문제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가정의 분위기를 좋게 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그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가장 매력적인 점은 남성이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관해서 다룬 점이 책 내용의 가장 주축이 된다는 점이다. 비록 그럼으로 인해 여성의 섬세한 감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고 어색한 표현도 있었지만, 여성이 여성에 대해 다룬 책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의 책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여성에 관해 주장하고, 남성이 남성에 관해 숨김없이 솔직히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가 느낀 점에 대해서 주고받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여성학과 남성학을 떠나서 부부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이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점수를 높이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다. 특히 한 상황을 놓고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시각을 다룬 점은 사례도 적절했고, 상당히 자세하고 깔끔한 편이라 마치 나레이션이 있는 시나리오 대본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느낀 점과 아내가 느낀 점을 솔직히 표현해 낸 것도 일단 자신이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자신하며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고, 이 감상문의 첫 부분에 썼던 자신감도 아마 이것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것만큼 또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수한 경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또한 자신을 반성하고 잘 알지 않는다면, 그 경험에 대한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는 법이다. 본인은 여중과 여고와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대학까지 다니고 있는 형편이고 결혼은 더더욱 해본 적 없지만 대한민국의 특성상 남자를 접하기 어려운 편인 나, 그리고 현재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나로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 글이 어느 정도는 소감문답게 쓰여 졌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또한 ‘화성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어쨌든 간에 남자와 여자는 이 지구 속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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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
신의진 지음 / 갤리온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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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가족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심리학이나 성공담을 볼 때 항상 쓰여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실천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고, 특히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낯선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런 책들을 읽고 시도하지도 않는 부모들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신의진은 과제를 하기 전에도 이미 이름은 주워들어서 알고 있는 유명한 소아정신과 의사이며, 주부들과 아이들과의 오프라인 캠프도 직접 개최해서 강연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라 들었다. 너무나 쟁쟁한 명성 때문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아직 결혼계획도 가지지 못한 대학생이 들춰보기엔 부끄러운 책이라 생각해서 줄곧 피해왔었지만 입문 겸이라 생각하고 한 장 한 장 들춰보았다. 이 책은 육아를 중심으로 했지만, 심리학을 중심으로 맞춘 채 객관적인 연구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여러 문제있는 아이들과 ‘문제있는 엄마들’, 그리고 자신의 사례를 나열한 육아책이다. 0~3세 아이들이 주로 나오기는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문제까지 헤집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두지 않았으므로 어릴 적의 나 자신을 상상하고 부모들을 상상하면서 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읽어보는 동안 내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사실 제목을 보고선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본인의 가정에서도 그랬지만,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도 넌지시 제시된 말이지만, 전업주부라고 해서 꼭 아이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는 주부라고 아이를 소홀히 대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미혼인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새 엄마들은 그 개념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과 같이 집착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녀의 고액과외를 위해 근본적인 여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노래방 도우미로 취직한다는 어머니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절로 혀가 차진다. 물론 그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회의 굳게 다져진 편견과 오해들, 그리고 예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잘못된 양육법, 기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그들의 마음을 일그러뜨리는 데에 한몫했을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남을 탓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해는 전적으로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애착은 사랑이던 증오이던 결코 떼어질 수 없는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으므로,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 아이들이 의지할 사람은 단지 그네들의 부모뿐이다. 그들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상처, 그 모든 괴로운 것까지도 아이들은 측은할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사실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이기심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부모가 원하는 꿈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작아지겠는가. ‘80점 부모가 되라’ 부분에서 나오는 글이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고,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데에서 감추어져 있는 이기심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었다고 생각한다. 부록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따끔하게 당부하는 글도 당당하면서도 유쾌했다. 내 견해로 보아선 이 책을 잡을 만큼 ‘시간이 널럴한’ 남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자신의 인생을 찾으라는 말은 당연했지만, 나에게도 하나의 경종같이 들렸다. 가족의 희생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나조차도 이 말을 듣고 절로 뜨끔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 여자들은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을 철저히 베제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살아왔으며, 미래에도 아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없는 내 소견이지만 OO엄마라는 호칭만큼 사람을 철저히 낯설게 만드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여자들은 자라오고, 희생이라는 이상한 관념을 등에 지고 외로워하다가, 나중에는 폭발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가끔 그런 점에 대해서 푸념하고 한탄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단지 푸념뿐이라는 게 더더욱 안타까웠다. 물론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하고 가족과 함께 이야기 하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다. 사람들이 타인의 사생활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오래 전에 가족들과 단절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핵심은 가정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면 먼저 내 자신부터 바꾸어야 하는 법이다.

 사실 이 책은 무언가를 배우는 교과서보다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하나의 도약판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고, 자신이 가족 외에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으라는 메시지가 이 글의 결론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육아법같은 정확한 지침서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부모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게 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충고와 온갖 훈계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엄마라는 자신의 지위와 아이뿐이다. 자신의 아이는 결코 남과 같이 길러질 수가 없으며, 심지어 다 자란 아이는 엄마의 소유가 될 수도 없다. 엄마라는 지위는 여자의 속박이 아니라 자기수양이며,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하나의 기제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엄마도 물론 아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모든 인생길 중에서도 하나일 뿐인 것이다. 미래의 나도 엄마의 지위를 얻기 전 이 책을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고, 모든 ‘선배’와 그 분들의 아이들 또한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란 길기도 하지만, 또한 턱없이 짧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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