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신부님이 꼭 읽어보라고 권했었고, 그 이후 거의 까먹고 살다 오늘에서야 무심코 들여다본 책이다. 철학에 프로이트란 인물을 가져다놓은 것은 꽤 색다른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사람으로서 나름 근대철학의 경계를 설정해 놓는다는 건, 상당한 자부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이 만들어진 점 자체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역시 철학을 한 권의 책에 얇게 담아낸다는 발상에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던 것일까. 너무 간편하게 편집하려 의식하고 노력한 탓에 교과서같이 딱딱한 책이 되어버린 감이 없지않아 있다. 게다가 빠져있는 철학적 관점들이 너무나 많다. 독일의 비판철학을 담지 못한 점에 대해선 이 책을 덮은지 한참 후에도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 아주 이해할 수 없게 쓰여졌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철학과보다는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더 속편한 책이며, 철학의 소개서로 보고서 지나가기 무난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서 더 푸코의 저작들이라거나 '슬픈 열대'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하도 두꺼운 책이라서 읽기가 꺼려졌고, 한참동안 미루고 있었던 책들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