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팝스 2020.11
굿모닝팝스 편집부 지음 / 한국방송출판(월간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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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해피 디 데이는 사람과 반려동물 간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각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연애, 우정, 가족 등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인기 뉴스 캐스터 엘리자베스는 강아지 '샘'과 변치 않는 사랑을 찾아 나가고, 카페 알바생 타라는 유기견 '거트루드'를 보살피면서 사랑과 진로에 변곡점을 맞이한다. (...) 영화 속 주인공을 맡은 바네사 허진스, 핀 울프하드, 에바 롱고리아, 니나 도브레브는 브라운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그동안 출연한 TV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 바네사 허진스는 영화 하이 스쿨 뮤지컬 시리즈에서 '가브리엘라 모테스' 역을 연기하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는 청춘 스타로 급부상했으며, 최근 넷플릭스의 세컨드 액트와 폴라로 여전한 연기력을 평가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부터 굿즈 얻는 것 빼고는 영화관에 가는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요즘에는 훨씬 더 심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상영되었으나 그닥 뜨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하기 시작한 굿모닝팝스의 스크린 잉글리시는 훨씬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클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액션물 빼고 영화관에 가서 보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에게는 액션물 아닌 영화들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어 좋다. 넷플릭스에 대한 소개가 자주 나오는 면도 흥미롭다. 광활한 넷플릭스 컨텐츠에서 뭘 봐야 할지 헤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간간이 소개되는 것들을 리스트에 첨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를 소개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보는 걸 추천한다. 중국인들이 쓰레기를 팔기 위해 마을 단위로 쓰레기를 차곡차곡 모아놓았다는 다큐멘터리인데 꼭 한 번 보시길. 온갖 고어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설명해주니 디스토피아 영화를 다큐로 착각힌 것 아니냐며 믿지 않았음. 나도 그 영화를 안 봤다면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그런 일 벌어질 줄 생각도 안 했을 것임. 현재는 2017년 고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불법이 되었다지만,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에서 금지해봤자 숨어서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어서 서서히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소수 민족들. 그 중 하나였던 부톤 섬에 위치한 찌아찌아족에게 10년 전 한글 교육이 시작됐다. (...) 찌아찌아족의 인구가 강원도 삼척시의 인구와 비슷한 7만 명 정도 되는데, 7만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고 있을 뿐더러 한 번에 모여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가르치기가 힘들었어요. (...) 찌아찌아족이 아닌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지방 공무원들을 통해 건의한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보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 또한 제가 여기 오기 전부터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인기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점점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한국어의 인기와 위상이 높아졌어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인기폭발인 듯하다. 교사도 더 양성하고 건물도 넓히고 싶은데 자본이 딸려서 고민중이신 것 같다 ㅠㅠ 사람들이 K-POP에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데에도 투자하셨으면 싶다.

 

특별한 뮤직비디오의 제목은 'Blueberry Eyes'로 제목처럼 블루베리 빛깔로 가득한 영상미와 음악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다. (...) 참고로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후 하루 만에 유튜브 400만 뷰를 기록했으며, 랩 파트에서 잠깐 등장하는 고양이는 직접 출연하지 못한 슈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 슈가뿐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정국도 좋아한다는 맥스는 과연 어떤 뮤지션일까? 본명은 맥스 슈나이더로 1992년생인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유명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한국 좋아한다고 하던데 한남들은 닮지 말길 ㅡㅡ 뮤직비디오에서 부인이 임신한 모습이 나왔다고 하던데 일단 노파심이 들어서. 맨날 술 마시고 애는 방치하는 게 한남 전형적인 모습인지라.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팝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유니버설 뮤직과 소니 뮤직을 통해 기념 앨범을 발매했다. 이번 30주년 기념 앨범은 그동안 방송을 통해 송출된 20만여 곡 중 청취자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20곡을 엄선해 총 2장의 LP에 나눠 담았다.

 

 

라디오야 뭐 이 잡지가 라디오방송에 기반하는 것이어서 소개하는 거겠지만, 의외로 LP가 꾸준히 소개되는 것 같다. 새로운 음악보단 옛날 음악들을 다시 올리는 수준이지만, 꽤 인기가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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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자서전 시움시선 7
황인학 지음 / 시시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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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 중에서

낮에는 회사원 두 딸의 아빠

바둑알 놓듯 살아온 아빠

그런데 강간만 마흔다섯

가스 배관을 타고 들어가

아이의 엄마까지 강간했네

(...)

성질이 온순하고 모양이 예쁜,

효자였다고

자상한 아빠였다고

그날도 딸아이 유치원에 데려다 주려다 체포된 발바리...

(...)

아빠 아, 빠

아 씨발 씨발

제가 그 아이를 만나면

나를 사랑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내 가슴 쪽쪽 빨 때 뭐라고 해야 하나요

 

 

실비아 플라스 시 생각나기는 한데, 그래도 이 시가 짧고 핵심이 다 들어가 있어서 더 좋다.

 

대뜸 초반 시부터 구더기가 들끓고 있지만(...)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하기사 눈부신 자서전이라니,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저렇게 이름을 지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기독교 초반기 신앙을 가진 자들의 수행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드는 것도 그가 올곧은 마음을 고수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란 생각이 든다. 종교심에 넘치는 시들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여러 일들에 무심한 것은 아니다. 특히 가식적이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어마어마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권투를 다룬 시 작품이 두 개나 있다. 시 쓰시는 거 보면 얌전하게 생기셨는데 상당히 의외랄까 ㅎㅎ

 

역전 주차장 입구 축산물 종합직판장 중에서

 

대전역 육교 아래 차들도 부르르 몸을 떨고

이런 날 집 없는 집비둘기

육교 상판 받치고 있는 기둥 그 아래 난간에서

균형 잃어 풋잠을 깨고 붉은 발을 동동 떼고

그 직판장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더군

느으끼인그대에로오를마알하고생가악한그대로오만우음지익이며

누구운가마알을해도도올아보지않으며내에가아가아고프은곳으로오가려어했지

얼굴이 잘려나간 돼지들 축축 늘어지고

그러어나너어르을아알게된후우사랑하게에된후우부터나아를두울러싸안모오든것이변해에가네나아의기일을가아기보오단너어와머무을고만씨입네나아를두울러싸안모오든것이변해에가네

새직장을 구한 지 일주일밖에 되질 않는데

돼지들은 말이 없고

왜 발목을 잡고 그러는 거야 너에 대해 특별히 쓸 말이 없단 말야

 

 

여러 동물들을 포함해 심지어 사물마저 배려해주는 시인의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가 많다. 그런 점에선 친환경과 자연 예찬에서 또 한층 벗어나 독특한 관점을 지닌 시집인 듯하다.

울 할아버지 중에서

 

9시 뉴스데스크를 끝으로

잠자리에 드셨지

캄캄한 밤중에 한 번은 깨시어

담배 한 개피 피시거나

두세 모금 냉수 드시었지

새벽이면 어느샌가

자전거에 삽을 걸거나 낫을 들고

논에 다녀오셨지

다녀오시면 샘가에서 낫을 갈거나

흙 묻은 장화 닦아내셨지

울 할아버지 평생을

목수로 농부로 살다가 돌아가셨지

흠 없이 돌아가셨지

그러나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는

여전히 흠으로 집을 만들고 있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

할아버지의 허브큐 사탕

 

할아버지의 대패질 소리

 

 

내가 요즘에 새벽에 일어난다고 하니까, 누가 그 상태로 집안일하면 층간소음 아니냐고 한다. 이 시골 마을에서도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소음'이다. 내가 사람 없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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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회의 시인들 시작시인선 212
이철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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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수의 일상 중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종로 3가에 있는 중고 서점 알라딘에 들러 두 시간여 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본다. 시집 코너엔 이름 없는 시인들의 시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나, 주인을 찾지 못할 듯하다. (...) 신문사 건물 앞에 있는 벽보에 걸린 신문들을 보며 현재 한국의 정치적 흐름과 논조들을 훑어본다. 내 옆에 노인이 벽보에 걸린 기사를 보며 혀를 찬다.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엔 걸인이 유심히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상살이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보인다.

(...)

약속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당도하니 시인 5명이 전날 먹은 세꼬시로 술판을 잇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정치 얘기, 그리고 아이들 얘기로 이러저러한 그리 궁금할 것도 없는 시시한 대화로 우리는 취해갔다.

 

 

노동자들에 관련된 시들이 군데군데 꽤 있는 편이긴 하나, 최근 나온 시집에서도 그렇고 본인의 백수생활에 대한 얘기를 흔히 다루는 듯하다.

 

난 그래서 특히 백수들이 이 책을 보면 동질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시 계열의 성격상 홍보가 제대로 안 된 듯하여 아쉽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이런 책을 많이 읽다보니, 일반 독자들보다도 먼저 이 시인의 매력을 발견하고 폴리매스 얘기를 하더라. 특이한 해석인 건 맞는데.. 그 기자의 말대로 한 우물을 팔 때가 아니라면 앞으로 무슨 직장을 다녀도 다시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단 얘기 아닌감? 그보다 복지 체계가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멀티를 주장하기엔 너무 위험한데; 복지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도엔 멀티서비스로 가자고 그러다가 최근엔 먼저 스페셜리스트부터 되자는 기세이지 말입니다 ㅡㅡ

 

처음부터 대뜸 사막 얘기가 나와서 놀랐는데 몇 장 넘겨보니 다행히 자신의 여행기를 담았다던가 영문모를 외국어들이 등장한다던가 하진 않았다. 인도가 등장하긴 한데 배경도 분위기도 왠지 친숙하다.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듯. 그래서 전반적으로 쉬워보이는 시들이 많지만. 아무튼 시를 지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세월호 얘기도 나오고 한다. 이 시가 좀 이질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패왕별희 1인극 중에서

 

1

(...) 바닷가 해안선 앳된 얼굴로 미소 짓던 눈,

내 사랑 우희와 먼 바다를 바라보았네

편지 행간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듯

젊은 날 눈물로 전송 받은 글은

이미 낙서가 아닌, 내 너를 위하여

긴 세월, 긴긴 밤을 새우리니

그대 마음에 담긴 머나먼 레테의 강을

건너보기로 하노라. 나의 노래여!

 

2

(...) 막이 오르자, 나는 슬픔이 배제된 무대 위에서

기쁘게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검은 공단 수의가 바람결에 출렁거리고

우희의 죽음 뒤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때, 저 어둠의 눈, 반짝이는 패왕의 칼.

이미 죽었던 나를 죽이고

슬픔이 없는 웃음소리를 누른 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흐릅니다.

 

 

힘들게 화장을 하는 여성 연예인들의 묘사가 담긴 시가 두차례나 나온다. 하기사 여성 연예인들 힘들었던 게 어디 한두번이겠느냐마는(...) 이 시가 아닌 작품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슬픔과 시인 본인의 분노를 표현했지만 나는 은근한 이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죽은 사회의 시인들

 

1조 3000억 경감 보험료 이어지나

은행 갈아타기 '계좌이동제' 시행

노년기 성생활 치매 위험 낮춰준다

얼리어답터에 '최신 폰' 유혹 구 모델 밀어내기도,

냉장고 상식 깬 냉장고 유혹

아파트 지금 대형으로 갈아타야

세단 같은 편안함에 힘, 실용성 다 갖췄다

역세권 행정타운 착한 분양가 3박자

"10억은 있어야지"....... 노년 바라보는 무례한 시선

집값 여전히 상승여력 있다

섹시가수 중국을 평정하다

......

 

가난한 시인이 신문을 보기엔 부적절하다

뒷간에서 똥 닦는 호박잎 대용으로 적격일 뿐이다

섹시가수가 똥구녕을 핥고 지나간다

찌라시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시들이 전부 비극적으로 끝난다.

 

이 시집 이후에는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 책을 막 읽고 덮은 내 기억으로는 그나마 자신이 글 쓰는 데 사용했던 낡은 탁자를 수리하던 내용이 그나마 좀 희망적이었던 것 같다. 근데 그나마도 제목이 애인이다(...) 책상을 애인삼아 사는 시인인 것도 서러울텐데 같이 백년해로하다 화장되잰다; 그러나 그는 자학은 하지 않는다. 사실 자학을 하는 사람들 속에는 자기중심주의와 무언가를 원하는 욕심이 담겨져 있다. 그는 텅빈 그릇이 되어,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의 비극을 낱낱이 열거해간다. 그의 시에서 아마 가장 많을 '~같은'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된다. 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시를 읽는 게 부담스럽거나 괴롭지 않았다. 그것은 시인이 진실로 시인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의 동정을 갈구하지 않고 세상에 냉소적으로 응대하는 자세가 내 취향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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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 세종.문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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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때의 병조판서는 박습, 병조참판은 강상인이었는데, 강상인이 실세였다. 병조 일을 오래 해온데다가 태종을 대군시절 때부터 따라다니며 모신, 말하자면 태종의 가신이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강상인은 태종을 제쳐놓고 세종에게 보고하곤 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 조사가 끝나 강상인은 함길도에 관노로 보내지고 박습은 경상도로 유배된다.

 

 

신분 떡락 ㅋㅋ

 

그나저나 이 얘기 보니 또 추노 생각나네요(...) 요새 KBS 다시보기 결재해서 사극만 싹 돌려보고 있는데 정말 명작이긴 한가봄 인상이 넘나 강렬. 그러고보니 태종이 아들 장인의 일가족 중 여성들도 관노로 보냈다고 하더라. 왠지는 모르지만 관노 시키기 굉장히 좋아하는 듯? 조선 중기에만 그랬던 건 아니었구나.

 

양녕이 폐세자되어 쫓겨난 이듬해 초의 일이다. 양녕은 편지 한 장을 남겨두고서 돌연 사라져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양녕의 유모와 김한로의 첩 등은 양녕의 연인 어리를 찾아갔다. 나라를 뒤흔든 스캔들의 주인공, 양녕이 폐세자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회자되는 여인 어리, 억울해서였을까? 자책 때문이었을까? 수모를 당한 그날로 목을 메어버렸다. (...) 어리의 자살 소식까지 담담한 얼굴로 듣고 난 양녕, 방으로 물러나 유유히 비파를 탔다 한다.

 

 

요새도 아무리 개인의 중대사와 관련된 일이 간소해진다 해도 그렇지,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모두가 울면 같이 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울산에 아파트 불난 것도 아름답다느니 댓글 달아서 일부러 어그로끄는 듯한 행동을 하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더라.

 

나는 어리가 가부장제 문화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덜했다고 하지만, 집을 나간 건 양녕이지 그 당시에는 공식적으론 양녕과 떨어져 사는 어리와는 관계가 없지 않은가. 김한로는 솔직히 태종에게 했던 행동 봐서는 눈치코치가 너무 없던 사람 같고(...) 그리고 어릴 때부터 출세의 길을 걷던 세자가 권력으로 꼬시는데(그리고 자신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를 내칠 수 있는 여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어서 이 스토리를 다시 접하니 그녀가 새삼 불쌍하더라.

 

그리고 솔직히 난 양녕이 세종보고 왕하라고 일부러 망나니처럼 행동한 게 아니라고 본다 ㅋㅋ 남의 개도 훔치는 걸 보면 약간 도벽도 있는 것 같고 색욕에 아무튼 아무리 좋게 말해도 기인 정도인 듯. 저렇게 완벽하게 한남같은 짓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

 

황희는 양녕을 편들었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 지방에 쫓겨나 있던 상태. 다행히 태종이 죽기 직전에 복귀를 허락해주었다. 이때 그의 나이 이미 예순이었다. 이듬해 예조판서에 임명되고 강원도 관찰사, 대사헌, 이조판서를 거쳐 복귀 4년 만에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외가의 씨를 말려버리려 하고 자신의 형을 내치던 태종의 옛 가신들을 용서(?)해 가는 세종의 모습이 돋보인다. 정치의 달인으로서 면모가 돋보인다고 할까. 그가 공부를 위한 공부에 빠지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보려 했다는 책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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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목격자 시인수첩 시인선 17
오성인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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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고 나서야 당신 이름을 렀다 목석보다 더 무뚝뚝했던 당신, 안부를 물으면 당신이 유행이 한창인 가요의 가사로 화답했고 어색한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일어날 때면 유행 지난 가요로 배웅했다 눈 한번을 마주치는 일이 없었던 당신에게 닿는 일은 가장 먼 별을 향해 가는 여정만큼 여간 쉽지 않았다

 

옛 생각을 거닐듯 천천히 밤을 씹었다 알몸의 당신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제야 겨우 거리를 좁혔는데 한줌 재가 된 당신이 품에 들어온다 흩날리는 잿빛 눈에서 은단 향이 났다 내가 몰랐던 당신 냄새였던가 유달리 춥고 길었던 겨울밤이었다 차츰 멀어지는 당신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다시 봄입니다

 

 

처음에는 짝사랑에 관한 시인줄 알았더니 후반을 읽어보니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인 듯하다.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시가 대부분이고 일부 서정시가 섞였는데 난 그 중에서도 서정시가 좋더라. 쉬는 시간을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페친이 어느 시인의 명함을 받은 사진을 찍어 올렸기에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사서 읽었는데 그 중에 미투란 제목의 시집이 있더라. 한 눈에 읽을 맛이 싹 가시게 하는 시였다. 대체 페친은 이 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분명 나와 같은 시집을 읽었을텐데 말이다. 내용은 사람들이 다들 누군가를 따라하는 사회에서 화자가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아쉬워하는 것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성들의 미투와는 그닥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느 방송에서 '여성들 미투 따라해서 나도 당했다고 하다가 이 사회에서 얼굴 들고 살 수 있을지 걱정되요'라고 빈정대는 소리와 페이스북에서 '남성들도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죽을동 살동 일하는데 페미들 왜 안 도와주요 광광'대는 글을 읽어서 이미 마음에 깊이 상처를 입은 상태라서 곧이곧대로 이 시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해설을 읽어보니 인간다움이 없는 세상에 대한 비애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인간다움이라. 혁명한답시고 시위에 참여한 여자들을 성추행하고 여자들은 다 혁명을 위해서라고 나중에 말하자고 생각하며 참는게 인간다움일까?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개인주의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런 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든다. 시인이 이런 시를 쓰더러도 내가 이 시를 읽고 불편하더라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여성들이 너도 나도 미투한다고 치부하기에 여성들의 상처는 너무 깊다. 그나저나 이 시도 결국 '어그로끌려고'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건 아닌가. 제목 덕분에 이렇게 인상에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시 앞으로 몇 페이지 넘기면 '젖가슴'이란 비유가 또 등장한다. '한남들 정말 젖가슴 없이는 못 사는구나.'라는 어떤 페친의 대사를 따라해본다. 나도 남을 모방하고 있지만, 어쨌든 젖가슴 단어를 쓴 건 사실이지 않은가. 어차피 다른 남자 시인들도 너도 나도 시집에 젖가슴이란 단어를 쓰는 '젖가슴현상'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으니 욕 먹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어쩌다 글이 이렇게 써졌는데 화난 건 아니고 단지 기분이 언짢을 뿐이다. 시가 꼭 독자들 읽고 기분 좋아지라고 쓰는 건 아니라 본다. 주목을 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나에게는 매우 평가가 높다. 단지 이런 말을 하는 인간들이 내 주위에 너무 많을 뿐 ㅠㅠ 아무튼 미투로 시 올린 것도 그렇고 이 분은 시인 되자마자 역사 속에서 사라지겠네.. 시인들 세계에서도 대세가 페미니즘인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저런대냐.

 

단지 미투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새 유행하는 '빚투'라는 표현 진짜 짜증난다. '미투'의 유사 신조어를 양산해내는 한국의 저질언론들의 자세에서 그들이 미투운동을 곧 지나길 하나의 유행쯤으로 여기고 있고 또 그렇게 소비되길 바라는 속셈이라는 게 너무 잘 느껴지니까. 채무불이행 피해 고발이 언제 당당하게 말하기 힘든 선언이었던 적이 있는가. 그런거 필요 없었지 그냥 고소 하면 되니까. 채무사기 피해 폭로자가 되려 꽃뱀 취급당하고 생계에 위협받을 일이라도 있었는가. 일자리에서 짤리고 2차가해 당하고 주위로부터 이제 그만하라고 저지당한 적이라도 있었나. 말장난이라도 재미없고 추잡하기만 하니 제발 그만 좀 엮어. 미투는 너도 나도 따라한다는 게 아니라 비열한 행위를 고발한다는 뜻이다. 용기내서 고발할 일도 아닌 것에 투 투 갖다 붙이는 거 그만하라고.

 

키덜트 중에서

 

설계도를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유년의

심장과 만날 수 있을 거야

 

어릴 적 내 꿈은 과학자였어 사탕과 함께

철인 메칸더 아톰 그랑죠 등의 주제가를 입에 달고 다니며

단내를 풍기며ㅡ엄마, 내가 만든 코드번호 OS010-I70 로봇을 타고

우주여행 갈 수 있어ㅡ떠들어 대고는 했어

 

설계도는 항상 머리부터 나를 이끌었어 몸통 없는 머리가 무슨 소용이야 그건 너무 시시한 일이지

살아 있는 머릴 원해

 

다리를 만들었을 때 계절은 여러 번 바뀐 뒤였고

팔을 겨우 완성했을 때 집의 각도는 기울어 있었어

머리를 만들다가 엄마의 그림자가 흐느끼는 걸 봤지

 

 

내가 좋아하는 그랑죠 나왔엌ㅋㅋ 역시 나하고 나이차가 1년밖에 안 나는구나 신기하다. 그나저나 이 분은 키덜트도 좀 공격하는 듯한 말투네(...) 키덜트는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오타쿠에 가깝긴 한데 역시 이 시인의 시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푸아그라 중에서

2

봉씨는 오늘도 시팍 피시방의 모니터에서 열심히 물갈퀴를 휘젓고 있습니다 그의 날개는 바람 소리만 낼 뿐 전혀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연신 시팍, 시팍거리는 그의 뭉뚝한 부리가 더욱 뭉뚝해집니다

(...)

핸드폰의 스피커에서는 우울한 음색과 도정되지 않은 욕설이 알맞은 비율로 배합됩니다ㅡ한심한 새끼 밥만 축내는 놈ㅡ독설을 간신히 소화해 낸 봉씨, 개구리 턱처럼 부푼 배가 가라앉을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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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히 술에 취한 봉씨가 핸드폰을 잡고 늘어집니다ㅡ내 날개는 장식품이 아니란 말이야(...) 바람 대신 지랄을 맞아도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니까 염병할ㅡ혈액을 밀어낸 알콜이 봉씨를 서서히 잠식합니다

 

 

일단 게임이 무조건 좋다며 세뇌당한 인간들이 99.9%인데 딱 한 번 이런 류의 인간을 본 적이 있다. 게임을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게임을 하다가 결국 연락두절되었는데 아무래도 게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하고만 카톡 주고받으며 사는 듯하다. 어린왕자에서 술 마시는 게 부끄럽다면서 계속 술 마시고 있는 술주정뱅이가 연상되었다.

그렇지만 잔소리할 거면 봉씨에게 돈 내고 하세요. 다 큰 어른에게 뭘 안다고 참견질이야.

고독사 중에서

 

사내는 늘 취해 있었다 허리보다

더 굽은 혀로 골목 담벼락이나 유리창에

새겨진 비문들을 해독하다 집에 돌아왔다

TV나 라디오를 켜면 순식간에

빈방이 인파로 가득 찼으나

오래지 않아 증발해 버리는

일시적인 체온을 그는 믿지 않았다

천국으로의 이삿짐 센터는 먼저

자신부터 참는 거다 라고

중얼거리며 그의 유일한 수행원인

그림자가 잠에 들면

그는 묵혀 둔 이야기를 꺼냈다

어두운 게 싫어 그림자란 그림자는

죄다 숨어 버려서 적막뿐이니까

 

내 글에는 그래서 밤이 없어

 

 

? 내 글엔 완전 어두운 얘기 다 쓰는데 시발같은 일 있음 시발이라고 쓰자는 주의라.

그리고 이미 고독사 각오하고 있다. 암 걸려도 절대 병원은 안 갈 거임. 솔직히 내가 혼자 죽든지 같이 죽든지 어차피 죽은 후면 끝인데 내가 어찌되던지 알 게 뭐야. 그냥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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