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야, 어디 가니? - 보행편 6.7.8 안전그림책 1
오시은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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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수는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사러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림 속에서 펼쳐진 동네는 어른들의 눈마저도 팽팽 돌릴 정도로 산만하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동수가 길을 잃을 듯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역경을 헤쳐나가듯 동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노란색 가방의 헐거운 끈을 꽉 부여잡고 혼란스러운 골목길을 헤쳐나간다. 동수는 과연 엄마없이 시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버지의 선물로 무엇을 살 것인지...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테니 생략 ㅋㅋ
 이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려고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말대로 그림책은 상당히 정성을 들인 흔적이 남아있었다. 즉 어른이 된 지금조차도 길을 헤메는 본인으로서는 동네의 길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나가느라 어지러웠다는 뜻이다(...) '꽃담길'이라는 친숙한 이름을 지닌 골목길과 햄릿을 읽고 있는 헌책방 아저씨 등도 정겨웠다. 무엇보다 그림의 곳곳에 안전하게 길을 다니는 사람들과 위험하게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어떤 사람이 불안전스럽게 다니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답은 이야기가 끝난 직후에 실려있다.) 
 요즘 하도 아동성폭력자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세상이라 부모들이 걱정할 만도 하지만, 사실상 아동성폭력자에게 피해를 입기보다는 교통사고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더 높은 요즘이다. 사람보다 차가 더 많아질 지경이다보니 차도에 다니던 차들이 인도로 활보할 지경이다보니, 인간이 다니기 힘든 인도도 생긴다. 게다가 차를 모는 어른들은 아직 신체발달이 덜 된 아이들의 힘든 사정은 눈꼽만큼도 생각 안하고 엑셀을 밟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우리 사려깊은 아이들이 교통안전에 대해서 하루빨리 배우고 올바르게 실천해서 어른들을 감화시킬 수밖에. 문학동네가 안전그림책 테마 중에서 가장 먼저 교통을 내세운 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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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
권하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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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뼛속까지 이해한 뒤에야 시작되는 사랑이라니,
그런게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아마 봄이나 여름날 토요일날 신공에 가보면 그런 모임을 간혹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데, 그 중 한 절반정도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입고 다니는 모임. 대부분은 젊은 10대들의 모임이지만 간혹 30대와 40대들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을 통솔하고 다니지는 않으며 그들을 돕는 선에서 그친다. 왜냐하면 그 모임의 주인공들은 바로 10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먹밥을 어떻게든 뺏어 먹으려는 인근 노동자들과 사투(?)를 벌여가며 상담을 하고, 성교육을 하고, 재미있는 공연도 벌인다. 이들은 10대 레즈비언, 즉 '띵'들이다.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모임의 이름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겠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모임이 수두룩하다. 온라인에서 채팅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모임이 있는가하면,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고, 미국의 자부심 걷기대회처럼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에 참가하기도 한다. 가입을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고, 기타 아직 비밀스런 요소들이 있지만 일단 인터넷에서 마음이 맞아서 모인 그들이 밖으로 나가서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사랑과 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탐구하고 지식을 공유한다. 10대의 '자발적인' 성매매는 뉴스거리가 되는데, 어째서 그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다. 같은 학교 남학생 선배를 짝사랑한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뿐이다. '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도 않고 물론 그들의 활약도 등장하지 않다. 가벼운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다닐 뿐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까지나 그 남자아이의 개인적인 시점으로 진행된다. 결국 다른 좋은 남자를 사귀게 되었지만, 그 관계는 매우 비밀스럽다. 왜 그들은 숨어 살아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동성애자들의 결혼도 허가받지 못하며, 재산상속이라던가, 심지어 군대에 입대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고, 동물이나 물건이 아닌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들은 이런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동성애자보다도 더 '이상한' 이성애자들에게 피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갖가지 피해가 그저 넌지시 제시될 뿐, 허무하리만큼 깔끔하게 넘어간다. "그저 싸이코 한 명 만났을 뿐이야." 어찌보면 신랄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관계는 적대적인 세상으로 인해 상처받는 동성애자들에게 주는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10대 동성애자들에게 손사래치는 어른들은 그들이 아직 철들지 않아서, 혹은 사랑을 몰라서, 혹은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서 동성애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힘든 사랑을(혹은 이성애자 친구들보다 더 힘든 사랑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갈구하는 띵들이 있다. 요즘 세상에는 실패한 부부관계와 이혼이 얼마나 흔한가. 이 책에는 17살 중학생의 사랑에 대한 고찰이 비너스에게 보내는 편지로 표현되어고 있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게 있다. 요즘 동성애자에 대한 망상과 오해를 무럭무럭 키우는 퀴어소설들이 많지만 이 책은 아마도 유일하게 퀴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 소설이니 특별히 별 다섯개로 평가하겠다. 한 번 읽어보시길. 아울러 비소설책으로 '열정세대'와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를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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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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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힘들거라고요. 지금보다 더 힘들거라고요. 이보다 더 힘든 건 없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더 힘든 상황이 올 거라고요. -아내에게 버림받은 강찬에게 찬강이 위로를 보내는 장면. p.188

 

 '연리지'라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결국 본인에게는 여자가 죽고 남자가 질질 짜는 3류 영화에 불과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둘은 정말 지독히 서로를 필요로 했다. 결국 죽어가는 여자에겐 살아가는 남자가 필요했고, 살아가는 남자에겐 죽어가는 여자가 필요했다. 연리지처럼 뒤엉켰다가 수액을 철철 흘리면서 떨어졌기에, 그들은 진짜 아픔을 겪을 수 있었다. 결국, 영화 속 그 커플들은 서로를 이용해서 진정한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보단 행복하게 되었다.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이라고 자신의 어느 칼럼에 제목을 붙인 나무의사가 있었다. 사랑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기에, 그렇게 이기적이 되는 것일까.  

 일단 이 소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느낌은, 오한이었다. 작가는 혹시 어떤 남자를, 아니 어떤 남자와 같이 자신마저 식물인간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면서까지 그렇게 꽁꽁 묶고 싶었던 것일까. 거리는 1미터 남겨둔 채, 감정과 생각을 텔레파시처럼 나눌 수 있지만 몸은 1미터를 앞두고 떨어져 있는, 하지만 '그 거리에서 일밀리미터도 멀어질 수 없는' 남자와 여자. 강찬과 찬강. 서로 뒤바뀌었으면서도 같은 이름마저 너무나.. 도착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나무가 되기를 선택한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엔 그저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연결되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연인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하루만이라도 특정한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모든 걸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본인 말고도 더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불행의 극치를 달리는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는 독자들도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소연과 상혁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있는대로 뿌려댈테니, 양해해주시길.

 소연은 말 그대로 '상처입은 짐승'같은 캐릭터이다. 그녀에게 반한 자원봉사자 상혁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심한 말을 하면서 매정하게 뿌리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너무나 화가 났었다. 그러나,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나서 본인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상처입어가는 과정도, 성격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건 확실히 내 모습이었다. 싹싹하고 일처리에 능숙한 간호사캐릭터는 아니지만 간호조무사를 배우고 있고, 남자에게는(특히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무섭게 쏘아붙이는 내 모습은 한 마디로 위선적이고 역겨웠다. 소연은 결국, 상혁이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었다. 소연은 자신의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그 불덩어리를 견디지 못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심하고 풀어놓은 것이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상혁은 끝내 그녀의 신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분노가 무서워서 숨어버리고, 소연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버린다. 그들은 결국 몸으로는 하나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소설이라서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그 분노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정녕 그녀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원한을 풀고 새 인생을 시작하려면, 요양원을 떠나야 했다. 상혁과 상혁의 어머니가 있었을 때, 자존심이고 뭐고 무릎꿇고 싹싹 용서를 빌어야 했다. 설령 자신이 요양원에 남더라도 아이만은 요양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요양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결국 그녀는 마지막까지 용기가 없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혁에게는 차마 용서를 빌 용기도 없고, 요양원도 아이도 풀어줄 수 없어서 자신이 다 가지고 가야 했던 것이다. 그 다정함, 그 친절함 속에 분노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뭐 상혁을 볼 낯도 없고 보기 싫다고 하니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상혁의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그녀의 말에서부터 왠지 나도 심기가 뒤틀렸다. 그녀를 좀 더 용기 있는 여성으로 표현해 줄 수는 없었을까?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다 감동적이었지만, 나는 소연과 상혁의 결말만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해두고 싶었다.

 강찬의 이야기에서까지 스포일러를 뿌리고 싶진 않지만, 이 한마디만 하고 싶다. 모든 불행은 인과응보로 인해 생긴 것. 이 책에서는 '권선징악'같은 흔한 스토리를 쓰지 않고서도 그 사실을 아주 서정적으로, 그리고 지독하게 냉정히, 담고 있다. 결국 '용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용서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니,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소연처럼 '어쨌거나 쿨하게', 나에게 그 모든 고통을 가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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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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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심플하기 그지없지만 이 책 읽고서 한바탕 우울증이 재발해서 끙끙 앓았다. 남자주인공이 걱정한다, 나를 떠나가지 않을까, 여자주인공이 생각한다, 나를 떠날거야. 결국 사랑은 줄다리기보다는 눈치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르고 서로 알지 못하기에 거울로 드러나는 겉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이 책 또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1년동안 벌어진 일이다. 남자의 직업은 돈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해커, 여자의 직업은 그 쪽 세계를 아는 남자들 모두가 욕망하는 동시에 천대하는 모델.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첫 만남부터가 스펙타클했다. (스포일러이니 내용은 자제.) 그 이후로 여자는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감옥에 갖히는 등 갖가지 사고를 치고, 남자는 여자가 저지른 일을 뒷처리하는 식이다. 그렇다. 작가의 모든 상상력과 온갖 미사여구를 뺀다면 이렇게 스토리는 처참해진다. 그러니 직접 봐야 안다는 것이다. 울다가 웃다가 기가 차다가 화가 나다가 감동했다가.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뒤틀음과 동시에 소설 속에 드라마 하나 연극 시나리오 하나까지 알차게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혼을 빼놓는 전개였다. 독자를 압도하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마치 우리나라의 막장 아침드라마를 1화부터 완결화까지 밤새 본 듯이 피곤하고 흥분되고 얼떨떨했다. 돌이켜보면 실제로 막장드라마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인공 캐릭터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에서도 그렇겠지만 이 책에서는 유달리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 외에는 모든 인물들이 뭉뚱그려져 나온다. 단점일 수도 있고 장점일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더 선명히 각인되는 건 주인공 준성의 끊임없는 관용뿐이다. 좋게 말하면 불굴의 의지, 좀 비꼬아서 이야기하자면 참으로 성인군자의 태도이다. (비록 중간에 그녀에 대해서 회의하고 비난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세상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갑자기 외국의 어떤 동화가 생각났다. 남자들과 적절한 선에서 거래를 치르는 명품족은 사랑하는 남자와 첫 관계를 맺지만, 남자는 루이비똥 가방 하나를 남기고 떠나가버린다는 내용이다.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무시무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당장 어린이들의 그림 전시회같은 데라도 갔다와보라.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돈을 그려대는 데 충격을 먹고 돌아오리라. 세상이 뭔가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집회를 한다고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고 그 난리를 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거래한다. 이렇게 사랑이 중요시되는 현대시대에서는 점점 이런 남자들이 인기인가보다. 남자든 여자든 커플이던 그냥 사랑하는 관계던 이렇게 끈질기게 필사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다 보면 결국 '심판의 날'에서 우리는 전부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은 '남자들은 전부 몹쓸 짐승들'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지만, 이 남자주인공과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극도의 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해커가 되는 건 원하지 않지만, 많이 동일시했다고 해야 할까. 울면서 이 책을 얼굴에 가까이 대보니 내 얼굴이 갈기갈기 갈라져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실험해보고 싶으면 얼굴을 책에 가까이 들이대보시라. 아무튼, 추했다. 호랑이를 본 아이마냥 울음이 절로 멎었다.

 

 나도 괴물일까?

 [괴물이겠지.]

 내가 속한 괴물은 어디일까?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이 책에서 시나리오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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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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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책이었다. 문헌으로 자세히 조사된 바가 없어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 있다. 아마 책에서 차마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허전한 공백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덕혜옹주와 관련된 책은 이 책 이전에 쓰여진 소설 딱 한 권 뿐이었다. 그것도 일본에서 나와서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다. 문득 '역수출'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절로 쓴 웃음이 지어졌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를 미워할 수 없게 쓰여져서, 더 마음 아픈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케유키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딱한 인물이다. 덕혜옹주를 끝끝내 감싸주지 못한 채 평생을 죄책감에서 보냈으니.
 그러나 조국을 잃은 분노와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한국에서 공주로 살았을 때도 일본에 갖혀 살았을 때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모든 정서를 한 데 모은 채 살던 인물이다.
 그만큼 자의식도 강한 인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한 사람의 원한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원한을 한데 모은 채 살았으니 제정신이 아닐 수밖에.
 덕혜옹주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여성이 겪을 수 있을만한 수모들도 암암리에 묘사되어 있다.
 남자친구는 단순히 재밌어서 이 책을 추천했다고 하지만, 혹시 내 조절되지 않는 분노와 소설 속 덕혜옹주의 분노를 동일시 한 것은 아닐지... 읽으면서 속이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 쯤 만나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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