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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제목은 심플하기 그지없지만 이 책 읽고서 한바탕 우울증이 재발해서 끙끙 앓았다. 남자주인공이 걱정한다, 나를 떠나가지 않을까, 여자주인공이 생각한다, 나를 떠날거야. 결국 사랑은 줄다리기보다는 눈치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르고 서로 알지 못하기에 거울로 드러나는 겉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이 책 또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1년동안 벌어진 일이다. 남자의 직업은 돈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해커, 여자의 직업은 그 쪽 세계를 아는 남자들 모두가 욕망하는 동시에 천대하는 모델.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첫 만남부터가 스펙타클했다. (스포일러이니 내용은 자제.) 그 이후로 여자는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감옥에 갖히는 등 갖가지 사고를 치고, 남자는 여자가 저지른 일을 뒷처리하는 식이다. 그렇다. 작가의 모든 상상력과 온갖 미사여구를 뺀다면 이렇게 스토리는 처참해진다. 그러니 직접 봐야 안다는 것이다. 울다가 웃다가 기가 차다가 화가 나다가 감동했다가.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뒤틀음과 동시에 소설 속에 드라마 하나 연극 시나리오 하나까지 알차게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혼을 빼놓는 전개였다. 독자를 압도하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마치 우리나라의 막장 아침드라마를 1화부터 완결화까지 밤새 본 듯이 피곤하고 흥분되고 얼떨떨했다. 돌이켜보면 실제로 막장드라마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인공 캐릭터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에서도 그렇겠지만 이 책에서는 유달리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 외에는 모든 인물들이 뭉뚱그려져 나온다. 단점일 수도 있고 장점일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더 선명히 각인되는 건 주인공 준성의 끊임없는 관용뿐이다. 좋게 말하면 불굴의 의지, 좀 비꼬아서 이야기하자면 참으로 성인군자의 태도이다. (비록 중간에 그녀에 대해서 회의하고 비난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세상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갑자기 외국의 어떤 동화가 생각났다. 남자들과 적절한 선에서 거래를 치르는 명품족은 사랑하는 남자와 첫 관계를 맺지만, 남자는 루이비똥 가방 하나를 남기고 떠나가버린다는 내용이다.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무시무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당장 어린이들의 그림 전시회같은 데라도 갔다와보라.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돈을 그려대는 데 충격을 먹고 돌아오리라. 세상이 뭔가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집회를 한다고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고 그 난리를 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거래한다. 이렇게 사랑이 중요시되는 현대시대에서는 점점 이런 남자들이 인기인가보다. 남자든 여자든 커플이던 그냥 사랑하는 관계던 이렇게 끈질기게 필사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다 보면 결국 '심판의 날'에서 우리는 전부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은 '남자들은 전부 몹쓸 짐승들'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지만, 이 남자주인공과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극도의 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해커가 되는 건 원하지 않지만, 많이 동일시했다고 해야 할까. 울면서 이 책을 얼굴에 가까이 대보니 내 얼굴이 갈기갈기 갈라져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실험해보고 싶으면 얼굴을 책에 가까이 들이대보시라. 아무튼, 추했다. 호랑이를 본 아이마냥 울음이 절로 멎었다.
나도 괴물일까?
[괴물이겠지.]
내가 속한 괴물은 어디일까?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이 책에서 시나리오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