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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평점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은 거대기술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에 주목하여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1986년 울리히 벡이 발표한 『위험 사회』라는 저서는 20세기 말 유럽인이 쓴 사회 분석서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위험 사회』에서 울리히 벡이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이 위험 사회를 너머 '새로운 근대'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조직은 고도로 복잡하게 체계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고도의 조직화, 체계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고도의 인공적 조직물이나 체계는 반드시 그것이 창출된 의도 외의 부수적 효과(부작용)를 발생시킨다. 문제는 이 체계화된 조직이라는 것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효과들은 완전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도나 바람과는 전혀 무관하며,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인간의 능력으로는 통제 불가능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로, 화학 공업과 화석 연료의 대량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고도로 조직화된 인공물은 그 자체로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인데 그 위험은 그 체계가 어떤 우연한 사고나 인위적 조작에 의해 순간적으로 와해될 때 발생할 수 있다. '폭탄'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비유가 될 수 있다. 모든 폭탄이란 말하자면 인공적으로 구조화된 사물인데, 그것은 순간적으로 그 구조와 조직이 와해됨으로써 치명적인 위험을 발생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은 애초에 그러한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이 그것의 '순기능'에 해당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인공적 구조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이러한 위험을 '부수적'으로 안고 있다.
하나의 상황을 가정하여 ‘위험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2010년의 인텔리전트 빌딩 (Inteligent Building). 이 건물은 모든 것이 컴퓨터 브레인에 의해서 작동된다.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된다. 햇볕의 강도를 창에 부착된 센서가 감지해서 조명등의 조도를 조절한다. 냉장고에는 모니터가 부착되어 냉장고 안에 어떤 식품들이 있고, 그 양은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식품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인터넷으로 주문이 완료된다.
2010년 어느 일요일 오후 4시,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점심을 먹을 때 잠깐 컴퓨터 앞을 뜬 것을 빼면 종일 컴퓨터다. 온라인게임, 인터넷 채팅, MP3, 아바타, 사이버 애완동물, 인터넷 쇼핑, 모든 것이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이버 수족관에서 키싱구라미, 레드베타 등의열대어를 기르고, 사이버머니를 주고 구입한 식물들을 온라인상에서 재배한다. 하루라도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날이면 이 모든 것이 끝이다. 아버지는 인터넷으로 주식시세와 신문과 잡지를 보고, 업무관련 이메일을 열어 본다. 손목에 부착된 컴퓨터는 매일 혈압과 맥박과 당뇨수치를 무선 e메일로 주치의에게 통보한다. 이상이 있을 때는 휴대폰으로 ‘병원에 한 번 들러 달라’는 연락이 온다.
자, 이 모든 시스템이 멈춰 섰다고 가정해보자.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냉장고 안의 음식물이 썩는 냄새도 냄새지만 50층 건물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불편이 여간이 아니다. 병원마다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려고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인텔리전스 빌딩은 온도조절 시스템이 비정상이니 실내는 후텁지근하고, 채광시스템이 이상이 생겨 한낮에도 실내가 캄캄할 수도 있다. 정수공급 장치가 고장이 났으니 물도 안 나오고 정화조는 막히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 조건 속에서 전산 시스템의 순간적 와해나 정지는 단순히 컴퓨터의 고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전체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전산망에 의해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생긴 편리만큼의 위험성이 그 체계 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기술은 인간의 편리성을 증대시켜주지만 인간이 기술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 또한 그만큼 불안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속도보다는 안전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생각하자
유전자 조작 기술은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준다. 가령 바닷물에도 재배할 수 있는 벼를 개발한다면 인류의 식량난은 곧바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벼가 인체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엄청난 것이다. 벼와 같은 기본적인 식량은 커피나 아이스크림과 같은 기호식품과는 달리 그 영향과 파급의 범위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울리히 벡 교수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맹목적인 '근대화'를 비판하고 있다. 근대화의 과정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기관차처럼 인류의 의지나 목적과 상관없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반성적 근대화가 초래한 위험성을 인류가 인식하게 되면, 인류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반성적인 근대화'로 전환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울리히 벡 교수의 '위험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선택'이다. 지금까지의 근대화는'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에 의존해왔다. 곧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위험을 우리는 통제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거나, 그 위험이라는 것도 결국 안전기준치 범위 내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기술을 '선택'해 왔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식품의 겉봉에 쓰여 있는 식품 첨가물이 허용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그 음식물을 선택했고, 도심의 대기오염을 나타내는 전광판에 아황산가스의 농도가 안전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적은 양이라도 그것이 지속적으로 자연 생태계와 인체에 축적된다면, 그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은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운전자가 굽은 길에서 속력을 줄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측하지 않은 위험'(danger)이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위험,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한 위험'(risk)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을 양산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또는 정책적 선택에 의해서도 양산되고 있다. 승용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합성세제나 일회용품, 전자파, 폐수, 농약과 비료, 동·식물의 남획, 간척지의 개간, 댐의 건설, 핵발전소 등이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한 위험한 선택이다.
정부나 기업, 일반국민 모두에게 위험을 무릅쓰는 태도가 보편화된 이유는 안전이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이라는 데 기인한다. 가령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다면 공사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비용은 그만큼 증대될 수밖에 없다.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을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줄이자는 태도를 울리히 벡 교수는 무반성적인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근대화를 달성해야 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추구'를 영웅시하는 태도다. 1969년 9월 11일 착공한 지 290일 만인 1970년 7월에 경부고속도로 428km가 개통되었을 때, 언론은 세계의 기적이라고 찬양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기술과 속도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술의 위험성이 눈에 보일 리 없다. 과학적으로 신중하게 설계되지 않은 졸속공사의 결과로 오늘날 경부고속도로는 고속도로 사망율 세계1위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지난 세기는 성장의 크기와 속도를 지향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속도'보다는 '안전'을, '외형'보다는 '내실'을,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면 과연 이런 속도추구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