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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1990년대 초반, 소설에 재즈도 넣고, 와인도 넣고, 좀 그럴싸한, 뭐 좀 있어보이는, 문화적 코드들을 왕창 집어넣는 작가들이 있었다. 하루끼가 그랬고, 흉내라도 내는 듯 하재봉도 그랬고, 박일문도 그랬다. 박일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오늘의 작가상까지 거뭐졌다. 이후로 열심히 흉내를 내는 작가들이 생겼다.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근사해보이려고 하는 노력들이 달갑지가 않았었다.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굳이 있어보이려고 하는 ‘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반성은 없고 포즈만 무성했다.
김애란은 소위 신세대 작가에 대한 불신을 싹 거둬가게 했다. 구질구질한 가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한때 운동 좀 했다고 NL, PL 들먹이며 나서지도 않는다. 신경숙처럼 아픈 상처를 살살 문지르지도 않는다. ‘가난’을 가지고 신파스럽게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난을 내세워 선동적 멘트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나 이렇게 살았다. 부끄럼없이 김애란은 말한다.
1980년생이니까 소설가 김애란의 나이는 스물여덟이다. 『침이 고인다』는 『달려라 아비』에 이은 두 번째 소설집이다.
제대로 된 방 하나 구하지 못해 빌빌거리는 청년 군상들이 김애경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슬픔의 나르시시즘은 없다. 취업 때문에 바둥거리는 젊은이들은 술에 취하거나, 분노에 눈동자가 싯뻘개지지 않는다. 그냥 담담하고 쿨하다. 물론 애써 쿨한 척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담담함이 좋다. 책 뒤표지의 이런 멘트는 김애경을 잘 요약해준다.
<슬픔도 담담하게 쓸쓸함도 유머러스하게>
나이들수록 성숙해진다는 말은 이런 작가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한다. 성숙은 연륜의 결과가 아니라 내공의 결과다. 저절로 성숙되는 법은 없다는 이야기다. 성인(聖人)은 꿈꾸지도 말자. 성인(成人)이라도 된다면 내 인생은 절반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