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한 치 앞도 모르면서’의 작가 남덕현은, 장르는 모름지기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규범에 자신을 얽어맬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장르의 본질을 규정한 후, 시는 이래야 한다, 소설은 저래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나 간섭을 그는 거북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닐까. 왜 ‘나’ 이전의, 어떤 틀에 ‘나’를 옭아매야 하는 것인가. 왜 타인이 만든 규정에 ‘나’를 복무시켜야 하는가. 나는 내 안의 자발성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대체 무슨 벼슬을 하겠다고, 대체 어떤 타이틀을 획득해 어떤 영화를 누리겠다고?

얼마 전에 펴낸 그의 시집, ‘유랑’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는 어떤 ‘장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시가 어떨 때는 청승어린 넋두리 같아 보이는 것도 ‘감정의 객관화’, 어쩌구저쩌구 하는 ‘근사한’ 이론들을 일찍이 개에게나 주어버린, 그의 불온성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제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것이면 몰라도 세상...에는 그렇게, 누가 무얼 하라고 하면 엉덩이뼈를 뒤로 바짝 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장르의 규칙, 장르의 요청이란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번 책, ‘한 치 앞도 모르면서’는 장르적으로 소설에 가장 근접해 있다. 무엇보다 이번 책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의 시선이 ‘밖’을 향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들을 향할 때, 이야기는 해학과 능청으로 가득 찬다. 한 마디로 웃기고 재밌고 골 때린다. 촌로들의, 내외간의, 공양간 보살님과 스님과의 이야기는 깨를 볶는다. 그러나 웃음의 뒤끝은 달달하지만은 않다. 작가의 개명(改名)을 둘러싼 이야기 ‘작전실패’는 전형적인 블랙코미디, 소위 ‘웃픈’ 이야기다. 한 청년의 신세 ‘조지는’, 비장한 실패담을 촌로들의 토속적인 너스레에 섞어 넣을 수 있는 서사 능력, '충청도의 힘'은 남덕현만의 희귀하고 탁월한 능력이어서, 책을 덮고도 오랜 울림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선이 ‘안’을 향할 때,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초점이 작가의 내면을 향할 때, 그의 이야기는 쫀득쫀득한 매력을 잃고 아연 청승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스님은 개만두 못혀’에서 공양간 보살님과 스님과의 찰진 대화가 전개되다가 엔딩 장면에 가서 ‘아, 나는 어쩌다가 팔자에 없이 잠귀 밝은 암자 식객이 되어 저 얘기를 듣고 있는가’라고 급하게 마무리하는 대목이 그렇다. 작가가 타인들의 이야기를 주도할 때는 능수능란하다가도 막상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때가 되어서는 서툴기 짝이 없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데 수줍은 성격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글은 고백에 서툴다는 점에서 산문에서 멀고, 이야기에 능하다는 점에서 소설에 가깝다.

 

소설이면 어떻고, 산문이면 어떻고, 또 그 ‘중간’이면 어떻고, 또 다른 그 무엇이면 어떠랴. 그의 글은 그냥 웃음이고 한숨이고 넋두리다. 삶이 무엇에 규정당할 것 같으면 삶이랴. 삶은 그냥 삶이다. 그의 글이 그냥 그의 글이듯.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주저리주저리 무엇을 떠들어댔다. 하나를 빠뜨렸다. 그는 ‘모’가 아니면 ‘도’인 사람,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개’와 ‘걸’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 속에 답이 있다. 눈깔 쪽 찢어지구, 광대 톡 튀어나오구, 주둥이 대빨 나온, 사람의 책,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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