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blue의 서재에 어떻게 찾아들게 되었습니까?
언제 처음 오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당신이 왔던 걸음을 되밟아 갔겠지요.
- 첫인상을 말씀해보시죠.
지금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 유어블루의 아이콘을 보고, 이 사람의 스타일로는 랄프 깁슨의 사진들이 어울리겠단 생각을 처음 했다는 걸 겝니다. 깁슨의 사진에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계조(階調)감이 있어요. 계조란 말보다는 인쇄쪽에선 그라데이션이라고 하는데, 흑백의 계조감이라하면 결국 흑과 백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 거겠죠. 당신에게선 그런 흑과 백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의 차이, B&W의 계조감 즉, 회색의 다양한 음영이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블루와 상관없이 나는 당신에게서 그레이의 질감을 보았습니다.
- 글 때문에 계속 찾아오게 된 건가요?
물론이죠, 글 이외에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란 거의 없었으니까... 문제는 글이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제 흥미를 유발하는 요인들이 계속 드러났거든요. 뭐랄까? 적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처럼 보이는데,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페이퍼들, 리뷰들이었으니까요. 그런 것이 절 끌어당긴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미스테리해서 전혀 풀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선 완전히 접어버리는데, 유어블루는 미스테리하면서도 공개된 부분들이 또 적지 않아 저를 계속 끌어들였거든요.
- 어째서 urblue를 알고 싶었을까요?
음, 일단 제가 남자보다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건 제 성향 자체가 굉장히 남성적이면서 - 이 말은 저 자신과 매칭이 잘 안 되는 말이기도 한데, 거친 면에 비해서 또 섬세하다면 섬세한 결을 느낄 수 있는 - 여성적인 측면에 대한 선호도가 강한 편이라 더 그렇기도 하지요. 대개 남자들은 입으로는 의리를 말하면서도 결을 따라 짚어가며 표현하고, 호응해주는 측면에선 거의 빵점에 가까운지라... 재미가 없거든요.
앞서 urblue님에 대해 "회색의 그라데이션"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전체적으로 모노톤(일관된 성품)의 사람으로 느껴지는데, 그 모노톤이 일관된 사람들 특유의 경직된 포즈가 아니라 일관된 성품으로 느껴지고, 그 반면에 다양한 계조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어요. 저는 조용히 지켜봐주는, 그러면서 중요한 순간에 맥을 짚어주는 그런 친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과도한 참견과 수다에 의한 해소보다는 과소하다 여겨지는 순간, 그간 날 지켜봐주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한 마디를 던져주는 이가 더 끌리거든요. 내가 urblue님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바로 그 끌림, 끌어당김에 이끌린 탓이겠지요.
- 그래서, 지금은 urblue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몇 가지 사실은 알고 있죠. 예를 들어 대학 다닐 때 저랑 비슷한 동기와 취지에서(이 부분은 명확하진 않지만) "문화연구회"란 이름(흐흐, 문화연구라니 도대체 뭘 연구하겠단 건지는 몰라도)의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거, 최근에 이 동아리에 더이상의 신입회원이 들지 않아 결국 문을 닫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그리고 당신은 토성에서 온 사람이란 것도... "토성에서 온 사람" 크크, 전번에 제가 8타입이었고, 당신이 5타입이었는데, 5타입의 단점을 바꾸기 위해선 8타입의 꺽이지 않는 긍지를 배우란 말이 있더군요.
이건 친구로서의 궁합이 맞다는 뜻일수도 있고, 반대로 궁합이 최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제 스타일엔 맞지만 urblue님 스타일로 보자면 좀 아닐 수도 있겠죠. 어찌되었든 urblue는 저같이 건달과에 가까운 혹은 건달을 지망하는 인간보다는 확실히 범생이 꽈에 해당합니다. 우리 둘의 공통점이라면 아마 나름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상대적인 말이 되겠지만 저는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그걸 깨버릴 때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악동이기도 하지요.
종종 당신의 글에서 저는 어떤 한 가지 결핍을 느끼곤 해요. 그건 아마도 자신감 부족이랄까. 치고 나가는 패기랄까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당돌한 후배를 귀여하고, 친구는 듬직한 이들을 좋아하는데, urblue에게서 약간의 파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의 별자리는 너무 안정적이라 종종 심심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 그럼 urblue의 글쓰기에 대해 말해 볼까요.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따분해 보인다. 방관자들은 묻는다.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한 인간 외에 무엇을 보는 걸가?" 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은 종종 더이상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회피하게 되지요. 사랑의 과도한 에너지 방출을 소모적인 것으로 보거나 자신에겐 그런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제가 urblue의 글쓰기에서 느끼는 건 때로 그런 부분들이었습니다. 견자(見者)의 시선에선 종종 냉소가 묻어나곤 합니다. 물론 당신이 견자의 시선이란 뜻도, 냉소적이란 뜻도 아닙니다. 다만, 글의 중심에 서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객관이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을 현혹했습니다. 어째서일까? 그것이 공정하다는, 혹은 공정해보이는 탓이지요. 객관은 단지 관객의 역어에 불과하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도 있지만, 진짜 객관적이고 싶다면 상대의 주관까지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객관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상대의 주관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선 그 거리를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저는 대상과의 거리와 밀도에서 긴장이 발생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되었든 어떤 사건이 되었든 간에... 그래서 저의 긴장은 늘 몰입과 거리두기를 반복하며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것을 책이라고 했을 때, 읽는 내내 저는 대개 저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음, 이 자식! 천재 아냐?"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 비로소 저의 뒷다마를 시작하는 편이죠. 책을 덮는 순간 저자와의 거리는 다시 멀어집니다. 그런데 urblue의 글은 늘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형성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물과의 관계는 얼마나 오래 지켜보았는가 하는 시간의 밀도와 더불어 그 사물의 외연에서 심연까지 밀고 당기는 거리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단렌즈가 아니라 줌렌즈가 필요한 것이죠.
urblue의 모노톤은 물론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 urblue의 요청에 의해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둘 사이에서만 있었던 재미난 대화 형식이었던 것을 이번 urblue님의 이벤트에서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저는 종종 누군가를 좋아할 때 짐승처럼 좋아한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있어 계산적이고 싶지 않다는 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고, 그만큼 거친 제 심성을 드러내주는 표현도 드물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위선만큼이나 위악도 위험한 사기술의 일종이란 점에서 이 짐승스러움은 종종 누군가를 물기도 합니다만, 목에 걸린 줄의 거리만큼 또한 안전을 보장받기도 하지요.
8,000히트 축하드리고, 이건 또한 제 애정고백(?)이기도 하다는 거 아시죠?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