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내 이야기도 조금 필요할 것 같다. 당신은 닉네임에 떡하니 블루를 가져다 놓고 나, 파랗다, 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당신을 보던 순간, 아차 싶었다. 언젠가 친한 동생이 neoblue 이름 표를 달았을 때도 이렇게 아깝진(?!) 않았다. 그애의 표면은 핑크색이므로 블루를 써버린 것이 다른 옷을 입고 싶은 욕망으로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블루는 달랐다.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댓글과 페이퍼, 리뷰. 그러니까 어쩌면 당신은 철저하게 서재안에서만 블루일지도 모르는 거다. 회색인데 블루로 위장 혹은 블루라서 블루로 서 있는. 나는 왜 내 닉네임을 고작 좋아하는 향수에서 가져온 것일까. 당신은 내 닉네임을 다시 짓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당신의 색깔이 블루인 것이 부럽다. 당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블루란, 파란색이란 얼마나 편한 색깔인가. 태극기의 파란색은 슬퍼보이기도 하나, 태극기를 벗어난 파란색은 얼마나 멋스럽냔 말이다. 파란색 스트라이프 침대 시트가 주는 시원함, 파란 하늘의 무한한 자유, 초록 신호등이라 하지 않고 푸른 신호등이라고 하듯 횡단보도에 막 도착할 때쯤 켜지는 푸른 신호등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며 횡재한 것 같냔 말이다. 키에슬롭키의 영화 블루 속편을 찍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파란색을 가져다 쓸 것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당신의 파란색을 가져다 장편 드라마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당신은 나를 말리지 않을 거란 걸 잘 안다.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은 만족한다 해도 과찬을 하지 않을 것이며 불만이라 해도 흥분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신이 열광하고 좋아하는 이미지는 내가 지켜보건데, 아이들이었다. 서재 지인들의 귀여운 아기들 앞에서 당신은 자주 무너졌다. 난, 그런 당신이, 참 귀엽더라. 그리고, 참 좋더라. (서재 지인들의 귀여운 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알라디너들은 본 적이 없긴 하다만...^^) 마치 당신의 허를 보는 것 같아서. 마치 당신의 고독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결혼이나 사랑을 면전에 둔, 그것으로 인한 고독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신은 블루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고독한 줄무늬를 갖고 있다. 흉내내고 싶을 만큼, 부러울 만큼의 고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당신만의 파란 고독. 만약 내가 그런 모습을 따라하고 싶었다면 당신이 보는 모든 영화들을, 당신이 읽는 모든 책들을 섭렵해 나갔을 것이다. 알라디너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많이 따라하는 내가 당신은 별로 따라하질 않는다. 참 이상하다, 당신, 블루, 당신의 색깔 블루는 당신만의 고독을 갖고 있다. 이렇게 쓰다보니 당신이 참 부럽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당신을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무조건 무분별하게 따라하지 않는, 내 주제를 아는 사람이다. 으흠~
서재를 왕래하다보면 양파껍질을 까듯 하나하나 차근차근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다. 그런데, 당신, 블루, 당신은 좋은 말로 하면 한결같고, 좋은 말을 조금 덜어내면 (나쁜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심심하다. 당신, 서재 이름 참 기막히게 잘 지었다. 당신은 아주 적정량의 소금과 적정량의 설탕으로 무장한 블루로 보인다. 나는 그래서 당신이 편하다. 가끔은 서재 지인들을 부러 챙겨야 하는 날이 있는데, 당신에겐 그렇지 않았다. 생각이 나면 바로 찾아와 불을 켜는 걸 좋아하는데, 난 그냥 당신 서재를 기웃 거리다 가곤 한다. 순수하게 이유는 단 한 줄이다. 블루님은 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당신의 닉네임 블루를 탐내던 혹자였으나 나는 당신의 절친한(?!) 서재 지인 중에 한 사람이고 싶으니까. 그래서 내 방식대로 당신에게 인사하고, 토라지고, 히히낙낙 할거다. 당신, 블루, 당신 고독의 테이프를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댄스 뮤직이나 휴게소 메들리 테이프로 바꿀때도 되지 않았나. 하지만...! 난 지금 이대로의 블루가 편하다. 어느날 갑자기 너무도 살갑게 군다면 골 낼지도 모른다. 심심한 나날, 심심한 서재 쥔장, 이모습,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