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1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2 편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1편을 쓰고 자신 있게 'To be continued'를 외쳤건만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바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귀차니즘이 더 작동했다. 머릿속으론 종종 썼다. 그러나 머릿속 글은 아무리 열심히 써대도 활자화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 말은 2015년 내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 <공공상담소> 운영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박사가 한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이 때 경험된 자극들이 몸 안에 저장돼 자기를 통해서나 타인을 통해 외부로 발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타인의 응시를 넘어 내가 나를 어떻게 응시하고 있는가, 즉 내 안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차원으로 넘어가야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 개인의 이미지는 외부의 시선에 조형될 수 있다. 나는 내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전에도 말했듯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를 가진 훌륭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에 별 하나를 뺀 것은 작가의 의도(행복한 가정의 허상)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이 한 아이를 끔찍할 만큼 무서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달라 당황스럽지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다르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아무도 정말 아무도(심지어 의사조차) 고민하지 않았다. 엄마를 비롯해 모두가 다섯째 아이 벤을 소름 끼치는 "도깨비나 요괴", "외계인", "난쟁이", "괴물"로 보았다. 벤은 비정상의 아이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일 뿐이었지만, 엄마 해리엇은 이 아이를 "보통 아이"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노력이 좌절되자 아이를 요양소에 보냈다가 동네 청년에게 맡겨 버린다. 내가 장담하는데, 장애아이를 가진 요즘 부모들은 해리엇과 데이비드처럼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많은 부모가 요인을 찾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앤 지나치게 활동적인 아이에요 ㅡ 그게 요즈음 쓰이는 용어죠."(<<다섯째 아이>> 86쪽)
"그 앤 비정상적으로 과민하죠? . . .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그 앤 조용히 오래 못 있어요. . . ."(같은 책 135쪽)
책에서는 벤의 성향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학계에서 이런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이다. ADHD는 전전두엽 발달 미숙에 의한 기질적인 질환으로, ADHD 아동의 경우 전두엽이 평균 아동에 비해 10% 작고, 대뇌 전상부와 전하부의 크기도 10% 작다고 한다. 문제는 벤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가져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과민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ADHD라는 꼬리표를 달아 약을 복용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우리집 느린 학습자도 2학년 때 3개월간 약을 복용했다. 약을 끊은 것은 약의 효과는 전혀 보지 못하고 부작용만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소개했듯 우리집 아이는 ADHD보다 경계선 지능에 가깝다. 읽은 책과 내 경험으로 볼 때 ADHD 아동은 대개 지능이 높거나 정상이다. 이 아이들의 주된 특징은 산만함이다.
<<산만한 우리 아이 혹시 ADHD?>> 김태훈/ 청출판
이 책은 우리 아이 담당 임상 치료사가 추천해준 책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집 느린 학습자가 ADHD인 줄 알았다.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한 김태훈 박사는 ADHD의 A부터 Z까지, 치료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지침까지 소상히 다루고 있다. 다만 나는 이 선생님의 견해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남자아이들 중에는 장난이 심하고 산만하며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 아이도 그런 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이들 모두를 ADHD라는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 이영민/ 팜파스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와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문제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인드와 대화법과 대처법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영민 엄마는 아이 때문에 날마다 당황스럽고 지치고 힘들지만 아이를 외계인 취급하지 않는다. 아이의 행동과 아이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않고 아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 내 경우에는 이 책이 위의 책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는데, 더 구체적이고 더 실천적이며 무엇보다 공감이 많이 되어서였다.
"가장 먼저 부모가 자녀의 편이 되는 것이다. 자녀의 ADHD 행동과 자녀의 인격을 분리시킨다. ADHD의 행동 양상을 잘못된 행동으로 꾸중해서도 안 된다. 자녀도 원치 않는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다. 꾸중보다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주려면 행동보다 인격을 칭찬해야 한다."(156쪽)
<<ADHD는 없다>> 김경림 / 민들레
제목이 도발적인 이 책의 저자는 ADHD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과 약물 치료의 위험성과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저자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ADHD 진단과 약물 치료 남발성에 동의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한, 기질적 질환인 ADHD,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경계선 지능,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언어 장애 아동은 모두 주의집중력이 약하다. 약도 한 가지 대안일 수 있으나, 나는 이 엄마 저자의 문제 해결 방식, 이른바 CPRT(부모-자녀 관계치료) 방식이 훨씬 바람직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보다 이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부모나 선생님이 자기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인식은 아이 자신에게 내면화된다. 자기 가치의 부정, 자기 존재의 부정과 맞서 싸워서 스스로 자기 가치와 존재를 증명해 내는 일은 아이에게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자기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더 큰 부정과 거부를 경험하게 되면 그 학습 효과로 인해 '해 봐야 어차피 안 된다'는 믿음이 굳어진다."(127쪽)
"엄마,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그날 하루만큼의 위로만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엄마가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러면 나는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위로도 못 받아. 나는 그게 더 힘들어'라고 했다.(161쪽)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며 존중해 주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 ADHD 판정을 받아던 이 아이가 한 말이었다. 이 친구는 ADHD가 아니라는 것에 나 역시 동의한다.
"'어떤 아이로 키우겠다' '어떤 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나에게 태어난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아이에 대해 배우고 맞춰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녀가 둘이면 자식을 두 번 새로 키우고, 열이면 열 번 새로 키운다고 하는 것이다."(184쪽)
<<리틀 몬스터>> Robert Jergen / 학지사
나는 이 책을 아이와 함께 가는 치료 센터(놀이, 언어, 인지)마다 보았다. '대학 교수가 된 ADHD 소년'이라는 부제 때문인지, ADHD 아동의 성공 사례로 치료사들이 많이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자신의 장애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ADHD를 가진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약물만으로 ADHD를 가진 사람들을 돕는 것은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다른 전략들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약물이 가르쳐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약물은 사람들이 집중하거나 조용히 있는 것을 도울 수는 있지만, 아동에게 책을 읽는 방법이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까지는 알려줄 수는 없다."(310쪽)
"우리 생각들을 부정적이게 하고, 우리 행동을 파괴적이게 하는 것은 ADHD 그 자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와 우리의 ADHD를 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일어난다. 우리 부모님들, 선생님들, 또래 친구들이 나를 비웃고, 조롱했고, 그들의 비난이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서 반향을 일으켜 왔다. 만약 그들이 좀더 지지적인 태도로, '애, 넌 괜찮다. 넌 좋은 아이야' 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내 읺생에서 좀더 일찍 행복해지는 법을 세웠을 텐데 말이다."(284)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 조응주 옮김 / 민들레
이 책은 정말로 훌륭한, 강강추 책이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교사로 일한 저자가 ADHD 진단을 받은 아홉 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 해결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아이들은 이런저런 좌충우돌을 겪지만 자신들을 문제아로 바라보지 않는 선생님들의 다정한 응시와 기다려주는 태도에 서서히 좋아진다. 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도 나아지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나간다.
"우리가 보기에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아이는 활동적인 것이지, '과잉행동'이 아니다. 전자는 아이를 묘사하는 단어고, 후자는 아이를 규정짓는 단어이다." (10쪽)
"우리가 사회적 발달을 많이 강조하는 이유는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자신 있게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나아가 행복하고 자신 있는 아이들은 더 빠르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목표를 달성한다. / 우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회화라는 배움의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전하고 애정이 넘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교사가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 . 우리에게는 어른중심적인 통제 대신 전체회의라는 제도가 있다. 아이들은 전체회의의 틀 속에서 서로 솔직하게 소통함으로써 의견 차이를 좁히고 해결책도 스스로 마련한다. 교사는 그 자리에 동석하는 것이지 관리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선생으로서 우리는 안내인이자 조언자 역할을 할 때도 있다 . . . 아이들이 스스로 얻거나 서로에게 배우는 교훈이야말로 평생 가는 경우가 많다. /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한 애매모호할 때가 많고, 전진과 후퇴가 거듭될 수밖에 없다."(107)
데이비드 시리즈 / 데이빗 섀논 / 지경사
많은 남자아이가 데이빗 같다. 우리집은 딸도 데이빗 같았다. 손에 닿는 서랍 속 물건을 모조리 꺼내 놓고, 소리 지르고, 쿵쿵 뛰고, 책장을 암벽인 양 오르고, 욕실을 물감으로 도배하고, 칫솔을 변기에 빠뜨리고 물 내리기 등등등. 이 책은 남매 모두 좋아해 닳도록 보았다. 데이빗의 말질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안 돼'가 뒤따르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데이빗은 눈물을 글썽인다. 그때 엄마가 말한다. "그래 데이빗 / 엄만 널 가장 사랑한단다." 그리고 꽉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딸이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내게 부탁했다. 엄마도 데이빗 엄마처럼 해달라고. 말썽 부리는 아이들을 언제나 정답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잠들기 전에는 아이들과 화해할 수 있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아이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부모의 눈길은 순해진다. 아이들은 그 응시를 몸에 새긴 채 잠이 든다.
<<무민의 특별한 보물>> 토베 얀손 / 서하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이 책은 느린학습자인 아들이 5학년인 지금도 생각나면 펼쳐보는 책이다. 무민은 아빠와 엄마와 친구들에게는 있는 자기만의 특별한 보물이 없는 것이 슬퍼 길을 나선다. 바다에도 가고 숲에도 간다. 그런데 나만의 보물이 될 만한 물건을 발견할 때면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숲에서 길을 잃은 무민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모험담과 함께 끝내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엄마가 무민을 꼭 끌어안고서 다정하게 하는 말. 직접 찾아 보시라. 스포라 쓰지 않겠다.^^ 정서 지능이 높은 아이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무민 시리즈는 무조건 읽기를 권한다. 데이빗처럼 어디로 튈지 몰라 뒤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녀야 했던 우리집 말썽쟁이는 무민처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어린이로 변했다.
ㅡ 엄마, 검도 동생이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은데 못 논다고 막 울었어요.
ㅡ 어머, 그랬구나. 동생이 많이 속상했나 보네.
ㅡ 네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ㅡ 으응, 뭐라고?
ㅡ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고! (캬!!)
Again, To be continu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