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4 #시라는별 39
설탕길
- 허수경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으로 보내고
발자국을 깊이 묻으며 노인은 노상에서 울고 있다
발자국에 오목하게 고인 것은
여름을 먹어치우고
잠이 든 초록
가지 못하는 길은
사레가 들려
노인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내가 너를 밀어내었느냐 ,
아니면 네가 나를 집어삼켰느냐
아무도 모르게 스윽 나가서
저렇게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을 걷느냐
노인은 알 수 없는 나나들 속에서는
늙은 아내가 널려 있는 빨랫줄 위로 눈이 내린다고 했다
당신의 해골 위에 걸어둔 순금의 눈들이
휘날리는 나라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아서
오래된 신발을 벗으며
여름에 깃든 어둠은 오한에 떨며 운다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거의 다 읽었다.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쓸쓸함, 서러움, 서글픔, 허무함 그럼에도 살아냄이다.
<설탕길>은 첫 연과 둘째 연에 ˝목덜미˝가 잡혀 읽어 내려갔는데,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어 그만 ˝사레가˝ 들렸다. 허수경 시인은 이 시집에서 줄곧 소통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 나란 사람은 ˝다만 나여서˝(<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고독하고, 그렇기에 나와 너 사이엔 어떻게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에 놓고 오는 노인의 발걸음은 무겁다. 미우나 고우나 몇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였으니, 늙어도 아파도 끝까지 곁에 두고 살고픈 맘이 왜 없었을까. 다만 그러기 힘들었을 테지. 너무도 힘에 부쳤을 테지. 아내를 거기 그렇게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여름을 먹어치우고 / 잠이 든 초록˝이 발자국에 고일까.
늙은 아내가 가고 있는 길은 노인이 ˝가지 못하는 길˝이고 ˝알 수 없는 나날˝이다. 늙은 아내의 눈에 보이는 ˝빨랫줄 위로˝ 내리는 눈은 노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그 간격,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그 세계 앞에서 노인은 자꾸만 목이 메여 눈물을 삼키다
˝사레가˝ 들린다. 아내는 기억을 잃어가다 끝내는 사라질 것이고, 노인 역시 언제고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눈처럼 휘날리다 녹아 없어질 생은 ˝오한에 떨며˝ 울게 만든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날마다 치매 아내를 보러 오는 70대 어르신이 있었다. 요양원은 경기도 양주 장흥. 어르신이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넘게 말없는 아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를 보러 가는 날이면 거의 어김없이 어르신이 보게 돼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이렇게 날마다 그 먼 길을 오시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돌보던 때에 비하면 전혀 안 힘들어요. (어르신은 늘 존대어를 썼다) 내가 다리 성해서 날마다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내는 날 못 알아보고 내가 다녀갈 줄도 모르지만, 그게 어떤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괜찮아, 내가 알아보고, 내가 기억하면 되지,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
어르신의 답변 중 나를 가장 뭉클하게 했던 말은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였다. 아! 눈과 가슴이 동시에 뜨끈해졌다.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어르신은 날마다 의식처럼 행하던 아내 만나러 가기를 못하시지만,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다리 운동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빙하기의 역> 중)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도 나눌 수 있는 건 고작 ˝기별의 기척˝뿐이다. 그러나 잠깐에 불과한 ˝기별˝이어도 그 잠깐이 불가능의 가능을 꿈꾸게 하는 소통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 꿈이 실어주는 것이 다리의 힘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