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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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경고가 붙은 이 책을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다. 서문과 본문 한 편 읽었는데, 미쳐 버리게 좋다. 생각과 작법의 혼연일체. 흡입력 짱! 시원시원함! 기대 밖 감동까지! 르 귄의 ˝정신과 교감˝하게 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 만땅!! 잠자냥님께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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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3-03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책장 확장범! 위험경고 발령!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3 19:16   좋아요 2 | URL
에앵에앵. 경고음 발령중. 책 맨 뒤에 저자가 읽은 책 주루룩 수록해 놓았는데. 더 미칠 지경임요 ㅋㅋ

han22598 2021-03-03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치버리게 좋다 ㅋㅋㅋ 느낌이 확 오네요. 저도 르권님 조만간 영접하려 합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3 23:56   좋아요 0 | URL
아. 영접. 좋아요. 좋아.^^

scott 2021-03-04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번역 책갈피 그리고 르귄여사의 문장 !!
모두 모두 맘에 쏘옥 드는 이책
르귄여사의 글 더이상 만날수 없다는 슬픔이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3-05 23: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표지 번역 정말 잘 뽑았아요. 저는 르귄 여사의 글을 한 편도 보지 않은 관계로 이 책을 필두로 천천히 만나볼까 합니다. 먼먼 하늘나라서 표지 저 모습으로 독자들을 내려다보실 것으로 추정됨요.^^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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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시라는별 14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 이성복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 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텐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밀리며 속삭였다
ㅡ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의 발문을 쓴 나무 조각가 홍경님은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소세키의 문장을 빌어 표현한다. ˝용케 여태까지 무사히 지내오셨소. / 예, 그럭저럭 어쨌든 무사히 지내왔습니다. / (그러나) 그 마음 또한 그 얼굴처럼 주름이 접혀 파삭파삭 메말라 있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한다.˝(<<유리문 안에서>>, 김정숙 옮김, 민음사 pp. 100, 149)

그렇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이승에서 60년의 삶을 산 시인이 독자인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잘 지내십니까, 고단하시지요, 그래도 오늘 하루 용케 견디셨군요. 삶이 겨울 같지요, 그러나 언제고 봄은 온답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홍경님처럼 나도 ˝여든두 편의 시와 함께 미소짓고 어깨 토닥이고 한숨 쉬고 손 잡아주고 눈물 글썽이고 쓸쓸해하고 다시 미소 짓기를 반복˝했다.(p 145)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해석되는 <<래여애반다라>>는 나처럼 인생을 반백 년 이상 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다. 우리 인간은 ‘응애‘ 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던져진 그 순간부터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 윷말˝ 같은 존재다.(‘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중) 목적지향을 꿈꾸나 인생은 결국 정처가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생은 속절없지만, 인생 초입엔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줄을 /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식탁‘ 중) ˝속속들이 바람 든 순무˝처럼 어리석어도 괜찮다. ‘來​(오다)의 시기다.

이어 남들과 같아지려고 분투하는 ‘如(여)‘의 시기가 온다. ˝어제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 내일 걱정을 다 쓸어 담을 만큼 / 두개골의 용적은 충분하다.˝ 아직은 팔팔하다. 그러다 슬픔이 차오른다. 슬픔은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에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뚝지‘ 중)처럼 무더기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들어찬다. ‘애哀‘의 시기다. 슬프고 애달프고 허물어지고 ˝무언가 안 되고˝(‘극지에서‘ 중) 있지만 그래도 ˝어린 다람쥐처럼 이 생의 저변을 콩닥거리며 뛰어다˝닐 여력이 아직은 남아 있다. ‘반反(맞서다)‘의 시기다. 이제 맞서 대드는 것도 지친다. 하여 돌아보게 되는 것은 돌과 물과 나무와 어둠과 연과 소멸과 남지장사와 북지장사 같은 삶의 면면들이다. ‘다多(많은 일을 겪다)‘의 시기다. 그렇게 50년을 보내고 60에 이른 나는 이런 모습이다.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來如哀反多羅 1‘ 중)

뱃속이 콘크리트처럼 굳어 나는 마치 ˝남의 순간을 사는˝(‘來如哀反多羅 3‘ 중) 존재 같고, 내가 ˝어떤 누구인지˝(‘來如哀反多羅 6‘ 중)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런데도 더 살아야 하나. 더 살아 무엇하나. 살아 있음의 속절없음, 하고 있음의 부질없음이 내 속을 박박 긁는다. 그러나 ˝수의처럼 찢어지는˝ ˝걸으며 꾸는 꿈˝(‘來如哀反多羅 7‘ 중)에 불과하고 ˝애초에 잘못 끼워진˝ 단추 같고 ˝장난기 가득한˝(來如哀反多羅 9) 생일지라도 우리는 끝끝내 살아야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기에. 이 깨달음 앞에서 나는 ‘羅라‘, 비단처럼 펼쳐질 수 있다.

아메리칸원주민들에게 나무는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주목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이다. 우리의 생도 어쩌면 그러할지 모르겠다. 한 생은 짧지만 그 생의 앞과 뒤를 잇는 역사성을 생각하면 이 생이 결코 짧은 생이 아닐 수 있겠고, 그렇기에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여기까지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나는 올해 이성복 시집을 모조리 읽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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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의 순간을 사는 존재 같고, 내가 ˝어떤 누구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
이 문장은 인생의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하는 문장
아메리칸원주민들에게 나무는 ‘서 있는 사람‘ 천년이 지나도 나무, 천년이전의 세계에서도 나무
코로나 질병으로 인간의 수명을 확 줄이거나 사라져버리게 만든
지구 생태계를 위협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자연의 무섭운 섭리, 생명을 존중하라는 깨우침이라는것,,,,


행복한책읽기 2021-03-01 09:21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엔 스캇님이 저보다 시 읽는 눈이 밝아 보이십니다. 읽기 도사 같으심 ㅋㅋ

희선 2021-02-27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성복 시인 시집 다 보시기로 하셨군요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가끔 사는 게 덧없고 뭔가 하는 게 무슨 뜻이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없겠지요 그게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부질없고 덧없다 해도 사는 동안은 괜찮겠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1 09:21   좋아요 0 | URL
즐겁게 만나려 했는데 급 좌절 중이요 ㅡㅡ

라로 2021-03-01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결심이에요!! 응원합니다!! 빠샤~~~

행복한책읽기 2021-03-01 09:23   좋아요 0 | URL
라로님 응원에 힘입어 꿇은 무릎 다시 세워보지요. 영차!!! 감솨!!!^^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에밀리 디킨슨 시선 1
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혜란 옮김 / 파시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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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2 #시라는별 13

군함 없이도 책 한 권이면 돼
-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군함 없이도 책 한 권이면 돼
우리를 멀리 대륙으로 데려다주지
군마 없이도 한 페이지면 돼
시를 활보하지ㅡ
이런 횡단이라면 아무리 가난해도 갈 수 있지
통행료 압박도 없고ㅡ
인간의 영혼을 실을
전차인데 이다지도 검소하다니ㅡ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ㅡ
This Traverse may the poorest take
Without oppress of Tollㅡ
How frugal is the Chariot
That bears the Human Soulㅡ


파시클 출판사에서 2018년에 출간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거의 한 달 만에 다 읽었다. 디킨슨의 시는 거의가 짧아서 맘 잡고 읽으면 몇 시간만에 완독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느릿느릿 쉬엄쉬엄 읽었다. 이 시집에는 총 56편의 시가 실려 있다. 번역가이자 파시클 출판사 대표인 박혜란님은 디킨슨의 시들 중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시들을 첫 권에 담았다고 한다. 또한 독자들에게 ˝에밀리 디킨슨을 읽는 즐거움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시들을 골랐다고. 그런 점에서 절반은 성공한 듯하다. 기존에 출간된 디킨슨의 시집들에 소개되어 있는 시들이 많아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문도 함께 수록돼 있어 영시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는 디킨슨의 시가 가진 군더더기 없는 응축의 정수를 십분 맛볼 수 있다.

내가 절반의 성공이라 한 것은 번역의 아쉬움 때문이다. 시는 사실 번역이 가능한 것인가에 의문 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는 영역 같다. 산문 번역과 달리 운문 번역은 내용 전달 뿐 아니라 운율도 살려야 하는 애로가 따른다. 박혜란 번역가는 디킨슨만의 줄표 기호와 간결함을 잘 살려 번역했다. 이렇게 다듬기까지 얼마나 노고가 컸을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내용 번역은 대체로 깔끔한데, 아주 가끔씩 오역이 보인다. 저번에 올린 ‘희망은 한 마리 새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가 그랬다. 물론 시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고, 번역가의 말대로 읽는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원문을 실은 건 번역가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나처럼 이런 딴지를 거는 독자가 없지 않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용기를 발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좋아한다. 대학원 시절 디킨슨의 영시를 읽고 차암, 좋다, 고 생각은 했지만 생활에 치여 다른 관심사에 쫓겨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시집 외에 다른 것을 일부러 찾아 읽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서 파시클 출판사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계속 출간해 주고 있어 기쁘고 고맙다. 디킨슨 시 전집 첫 권인 이 책은 시인의 주관에 입각해 여덟 개의 소제목으로 나눠 시를 소개한다. 파트별로 나름의 주제가 있다.

‘파시클 fascicle‘은 분할 간행되는 책의 한 권을 뜻하는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생전에 발표한 시는 7편 정도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당시의 문학계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파격성과 도발성을 띤 실험시들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디킨슨은 평단에서 외면 당한 후 자기 스스로 평단을 외면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일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날마다 썼다. 그녀가 글을 쓰는 시간은 매일 새벽 세 시부터 아침 식사 준비 전까지였다. 그렇게 쓴 시들을 40여 편씩 묶고 바느질로 엮어 책자를 만들었다. 그런 책자를 ‘파시클 fascicle‘이라고 부른다. 디킨슨이 이렇게 만든 시집은 모두 44권이었고 시의 수는 무려 1800여 편에 이르렀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12월 10일에 태어나 1886년 5월 15일에 눈을 감았다. 인생 후반부에는 ‘신경쇠약‘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증은 오래 전부터 내재되어 있던 질환이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 통증이 격발했을 것이다.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슬픔이야. 그게 전부야.˝(<<진리의 발견>> 586쪽) 라고 디킨슨은 한 친구에게 말했다. 마리아 포포바는 고작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에밀리 디킨슨을 삶을 두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달랠 길 없는 슬픔을 품은 채 그토록 오랫동안 살기 위해서는 영웅적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느낀다. 에밀리 디킨슨은 가장 사랑하는 친구, 통렬할 정도로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36년 동안 자신의 온 존재를 다해 사랑했다.˝(<<진리의 발견>> 609쪽)

달랠 길 없는 슬픔. 디킨슨이 사랑한 사람은 친구이자 오빠의 아내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을 먼 발치서 바라보며 그녀는 ˝달랠 길 없는 슬픔˝을 시로 달랬다. 그 위안이 얼마나 컸을까만은 55세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줄만큼은 되었다. 오랜 세월 시인은 분명 뼈가 깎이는 고통을 겪었을 테지만, 깎인 뼛가루에서 ‘시‘라는 사리가 탄생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수천 개가. 그 구슬들은 하나같이 반짝거렸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십 대 후반부터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녀는 두 개의 창이 있는, 햇살 잘 드는 작은 방에서 가로세로 대략 45센티미터의 책상에 앉아 세계를 누볐다. 책이라는 ˝군함˝을 타고 시라는 ˝군마˝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며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아름다움과 추함,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디킨슨의 시를 읽는 것은 그 노래를 듣는 것이다. 이 노래에는 다운로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가난해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매일 들어볼까 일단 생각만 해본다.^^;;;

If I read a book and it makes my whole body so cold no fire can warm me I know that is poetry. If I feel physically as if the top of my head were taken off, I know that is poetry. These are the only way I know it. Is there any other way?
내가 읽은 책 한 권이 내 온몸을 어떤 불로도 데울 수 없을 만큼 싸늘하게 만든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벗겨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면, 그게 시예요. 나는 시를 이렇게밖에 알지 못해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ㅡ 에밀리 디킨슨이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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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22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함이란 단어보고 처음에 응?뭐지 했다가 감탄했네요! 시에 있어서의 번역. 전에 팔스타프님이 한국의 어떤 시를 올려주셨는데 그걸 보니 그 문제가 보다 더 와닿더라구요.
‘작은 방에서 세계를 누비다 ‘이 말도 너무 좋으네요!!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2-23 10: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미미님은 글을 넘 잘 읽어주셔 참 고마워요. 디킨슨은 시의 압축미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 같아요. 어려운 말로 식자연하지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이유^^

scott 2021-02-22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아름다움과 추함,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디킨슨의 시를 읽는 것은 그 노래를 듣는 것]
˝아무리 가난해도˝ 들을 수 있는 시,에밀리 디킨즈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시네요.
저도 매일 라이브러리 오더블에서 에밀리의 시 한편씩 들어야겠네요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Emily Dickson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oul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And never stops - at all

And sweetest - in the Gale - is heard
And sore must be the storm
That could abash the little Bird
That kept so many warm

I’ve heard it in the chill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Yet - never - in Extremity,
It asked a crumb - of me

희망은 날개가 달린 것



에밀리 디킨슨



희망은 영혼 속에 앉아 있는

날개가 달린 것이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며

결코 그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거친 바람 속에서 가장 달콤한 노래 부른다.

아무리 매서운 폭풍일지라도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준

그 작은 새를 당혹하게 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가장 추운 땅에서도,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떠한 극한상황 속에서도 결코

그것은 내게 빵 한 조각 달라고 하지 않았다.


행복한책읽기 2021-02-23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의 영역은 무궁무진하신 듯. 라이브리리 오더블. 지는 아직 전자책과 오더블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어요. 그저 종이책이 좋아서리. 암튼. 같이 읽거나 듣게 돼 좋아요~~~~^^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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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호수처럼 일렁이고 내용은 양분처럼 스며든다. 토박이 식물학자 시인이 들려주는 식동물 이야기는 삶의 지혜로 가득하다. ˝생명에 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명과 한편이˝ 되어 나눔의 경제를 요구할 용기를 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메그웨치 키네게고(감사하고 또 감사). 강강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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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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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반납일이 임박하여 지난 일요일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다 읽었다. 일주일 전 30페이지 가량을 읽었지만 두어 가지 에피소드 외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즘은 읽자마자, 아니 읽는 그 순간부터 까먹는다 ㅠ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첫 단락에서 나는 감지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기법. 거리 두기 작법.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작가는 분명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 위주로 글을 썼는데, 나는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고, 코를 풀어야 했다. 책 한 권을 내내 울며 읽기는 처음이다. <한 여자>는 맘 잡고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뚝딱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다. 총 110쪽. 그러나 책의 무게가 꼭 쪽수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무게는 제목 그대로 '한 여자'의 인생 무게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한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18)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19)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처음 접했다. 특이한 글쓰기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가장 가까웠던 존재의 인생을 이만큼 떨어져 서술할 수 있다니. 작가 스스로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있는 글이라 칭하는 작법. 감정은 밀어 놓고 있었던 사실들을 충실히 따라가는 자기분석적 글쓰기. 

나는 내 인생에 딱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다. '싶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열여섯에 내 어미가 들려준 엄마 인생의 한 귀퉁이. 고작 귀퉁이만 들었을 뿐인데 내게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제고 엄마 이야기를 써야지.

이 책을 읽다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성격이 내 어미의 삶과 성격과 너무나 닮아 있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물론 내 어미는 책, 음악, 영화 따윈 모르는 분이었고 대신 저자의 어머니처럼 한때 가게를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다 버려두고 어미는 혈혈단신으로 첫 남편의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 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전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51) ​

 

내 어미는 내게 조금도 살갑지 않은 엄마였다.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이 있어 나의 엉성함과 미숙함과 가벼움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내 뒤통수에다 대고까지 지겹도록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였다. 나는 내 엄마가 티비 속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교회도 안 다니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도무지 싫기만 한 내 어미를 나는 이십대 중반 무렵부터 저자처럼 개인사와 사회사를 엮어 한 인간으로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가 엄마같이 살았다면 지금의 엄마만큼 끈덕지게, 의연하게, 살았겠냐고. 답은 '아니오'였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삶을 존중하게 되었고 어미를 존경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분만큼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군가 너를 열두 살에 공장에 처넣어 버렸다면 너도 그렇게는 못할 거다. 넌 네가 누리는 행복을 몰라.> 그리고 또, 종종 나에 대한 분노 섞인 생각. <저런 물건이 사립 기숙 학교엘 다니다니.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건만.> / 어떤 순간들에는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65) 

내 어미의 말은 이랬다. "내가 니년만큼 공부했으면 판검사를 하고 있거나 청와대 들어가 있었을기다!" 그랬을 것도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억척스럽기가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했던 어미가 팔순 생일을 기점으로 생을 부여잡은 손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녀는 변했다. . .  소소한 불편 거리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말이지 신물이 나>라고 말했다."(89)​

"일이 보배다"라는 말을 성경 말씀처럼 가슴에 품고 일을 보물단지마냥 끼고 살던 어미가 "사는 게 무재미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 어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밥을 같이 먹는 것, 아이들 재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것조차 해주기 힘들어지는 날이 오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다.  왜. 내 어미는 언제나 강건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돈에 호기심을 보인다며 그들 전부를 싸잡아 비난하고 . . .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더러운 꼴 보기도 지겹다 지겨워.>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는 위협에 맞서느라 뻣뻣하게 굳어 버린 듯했다."(90) 

쌈짓돈이 없어졌다, 통장이 안 보인다, 도장이 사라졌다, 주민등록증이 보이지 않는다 . . . 도둑이 들었다 . . . 나와 옆지기는 졸지에 "칼로 배때지를 찔러 죽일 년놈"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지 팔순을 한참 넘긴 내 어미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살피지 않았고, 살필 생각도 하지 못했다. MRI 촬영 사진 속 내 어미의 뇌는 해마가 많이 망가져 있었고, 전두엽도 쪼그라든 상태였다. 치매 판정과 함께 어미는 심장 부정맥 판정을 받고 스탠드 시술을 받았다. 어미는 점점 여위어 갔다.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여러 번,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가 그녀만을 돌보고 싶다는 급작스러운 욕망, 그리고 곧 그럴 능력이 내게 없다는 깨달음. (사람들이 말하듯 <나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는 해도, 어머니를 그곳에 놔뒀다는 죄책감."(105) 

나는 어미를 겨우 6개월 돌보고 요양원에 모셨다. 요양원에 모신 첫 한 달은 많이 울었다. 죄책감에 날마다 한숨을 쉬고 가슴을 쳤다. 이런 전철을 밟아본 많은 사람들과 요양원 관계자들은 어미가 요양원에 정착할 때까지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따랐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런 경우 모든 치매 환자의 말은 거의 동일하다. "왜 나를 여기 놓고 갔어. . . . . ."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더욱 복받쳤다. 하여 나는 그네들의 말을 모두 무 자르듯 잘라버리고 날마다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랑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엄마가 부르는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안정을 찾아갔다. 다행히 어미는 기억만 시나브르 읽어갈 뿐 요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잘 지내고 계신다. 어미는 여전히 나와 사위와 손녀손자를 기억하고 우리가 오면 반가워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음식을 맛나게 드신다. 나는 아직은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110)를 잃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어미가 내게 허락한 시간, 내가 어미를 돌볼 수 있게 해준 시간에 감사한다. 켜켜이 묻어 두었던 말들을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 토해내 준  것에 감사한다. 그 말들은 내게 울음을 넘어 통곡을 끌어냈지만, 어미라는 한 여자를, 어미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로도 이끌었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함부로 가여워하지 말라.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15)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이다. 기억을 잃어간다고, 수족을 못 쓴다고, 누워만 지낸다고, 살 권리를 박탈 당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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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5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여기 놓고 감 ^0^

행복한책읽기 2021-03-05 16:17   좋아요 1 | URL
나보다 먼저 알고 축하글 남겨주는 scott님이 바지런함을 어쪄. 고마워요. 애들 개학하니 좀 정신없음요. 특히 둘째 땜에 ㅋㅋ 경칩이었다니. 아. 그래서 햇살이 이리도 좋았군요. 넘 따땃한 날이어요.^^ 난중에 스캇님 페이퍼 놀러갈게유~~~^^

희선 2021-03-06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사실 저는 그런 말 들으면 좀 창피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네요 이 글 봤을 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맞았네요 행복한책읽기 님 어머님이 기억은 잊는다 해도 건강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6 14:05   좋아요 0 | URL
희선님 쑥스러움 누르고 축하글 남겨줘 고마워요. 희선님은 매번 당선되던대요. 책도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쓰고, 본 적은 없지만 뭔가 야리야리하실 듯한데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궁금한 분이에요. ㅋㅋ 저희 엄마는 기억은 시나브르 잃어가지만 순간순간 즐겁게, 건강하게 살고 계세요. 다행히도요. 희선님이 기원을 해주니 넘 뭉클한 거 있죠. 고마워요~~~~^^

2021-03-1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19 19:05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 고마워요. 댓글 읽다 울컥했음요. 엄마 책 쓰고팠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