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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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코스모스 대항해를 마치며 

우주를 글로 탐험하다 

2020년 11월 2일 ‘코스모스호 타고 히치하이킹 100일‘이란 거창한 이름 아래 여섯 명의 대원들과 글로 탐험하는 우주 대항해에 돌입했다. 대원들 중 한 명은 중도 탈락했다. 다행히 우주를 유영하지 않고 어딘가에 정착해 자기만의 항해를 이어가는 중이다. 나머지 다섯 명의 대원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의 간격을 너무 멀리 떨어뜨리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그리하여 2020년 12월 27일, 100일로 예정되었던 코스모스 대항해는 대원들의 열정과 성실 덕에 44일이나 앞당긴 56일만에 끝이 났다. 이 뿌듯함. 이 감격. 이 기쁨.

˝과학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쓰든 인류의 운명은 과학에 묶여 있다. 과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한 자들이 생존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25)

코스모스 1장에서 세이건이 한 말이다. 대항해 첫 날, 나는 저 글 옆에 이렇게 썼다. ˝재미 있기를 진심 바란다.˝ 세이건은 옳았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한 독자에게는. 나는 과알못이다. 과학계까진 아니어도 과학 서적에는 눈을 돌려볼까 생각하며 책을 뒤적거려본 적이 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책은 정말 재미 없어! 이런 나에게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이란 세계의 문턱을 약간 낮춰준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왜냐.매 정거장마다 어라, 이건 뭐지 하며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는 느낌이었고, 머릿속이 불룩불룩해졌다 꺼졌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게 선사한 의외의 즐거움은 어렵기만 한 천문학 설명으로만 가득하리란 내 수준 미달의 어리석은 예상을 단칼에 쳐내고, 우주 연구에 관한 세네카의 글을 시작으로서양 철학, 동양 사상, 역사학, 사회학, 생물학, 화학, 고생물학, 수학 등등 온갖 지식에다 맛깔난 이야기들까지 곁들여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행성 지구의 크기를 정확하게 잰 에라토스테네스, 그는 레이철 카스 이전, 그것도 기원전 3세기에 시와 과학을 결합할 줄 알았던 작가였다.​알렉산더리아의 최고 자랑거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었다. 이곳은 ˝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연구 현장이었다.˝(57)​

˝도서관 관계자들은 세상의 모든 문화와 모든 언어를 샅샅이 뒤졌다.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서 책을 사들였고 장서를 확충해 갔다. 알렉산더리아에 정박한 상선은 관리의 검문을 받았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찾기에 있었다.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즉시 빌려다가 베낀 뒤,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 . . . . 알렉산더리아 도서관에는 일일이 손으로 쓴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이 50만여 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8)

이 모든 이야기가 1장에 등장한다. 과학책에서 책과 관련된 이런 흥미진진한 역사를 듣게 되다니, 1장부터 나는 <<코스모스>>에 매료되었다. 코스모스는 과학적 사실만이 아니라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이것은 글을 아름답게 풀어나간 세이건의 문장력일 것이다.아무리 머리 굴려도 이해 못하겠는 건 저만치 밀쳐놓고 내 이해 범위 안에서의 과학책 재미나게 읽기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일깨워 준 책. 하늘의 별이 된 세이건은 또 한 명의 추종자가 탄생한 것을 보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리라.

나는 세이건이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작가는 글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볼 때, 나는 세이건이 세상과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가 좋았다. 긍정적이면서 반성적이다. 그는  1장에서  강조한  과학의 자정 능력을 마지막장에서 다시 소환한다.

˝과학하기 규칙.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이란 가정은 모조리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 과학에서 권위에 근거한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는 있는 그대로 이해돼야 한다.˝(660)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발견한 것이 곧 진리라고 건방을 떨지 않기. 의심하기. 수정하기. 또 탐구하기. 이건 과학 이전에 내가 아는 인문학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은하처럼 너무 멀게만 느껴지지 않고 우리 태양계 달이나 행성들처럼 조금 가깝게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세이건은 평화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이다. 그는수소의 재에서 시작한 인류가 광막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지금 여기까지 걸어온 지난한 역사를 알기에, 우리인간이 희귀종이자 멸종 위기종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함부로 미워하거나 죽이지 말자고 말한다.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이야 어찌할까만, 미움이 차별과 박해와 학살로 이어지는 짓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이건이 우리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이렇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675)

세이건 덕에 한층 더 귀중해진 나는 나와 같은 과알못 지인들에게 <<코스모스>> 전도사 행세를 할 생각이다. 코스모스 덕에 유성도 육안으로 보았고, 목성 토성 대근접은 유튜브로 시청했으며, 며칠 전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오딧세이까지 찾아 보았다. 내가 과학으로 다가가고, 과학이 내게로 다가와, 내 세상도 조금 넓어졌다. 우주처럼 광대하게 ~~~~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실이 젤 뿌듯하다. ^^​
^^

마지막으로 초딩님이 내 댓글에 달아준 영상을 첨부한다. 

https://youtu.be/8YfolfC4K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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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2-30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 중도 탈락 4회 경험자 syo가 찬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31 00:11   좋아요 0 | URL
축하 감사요. 마음 어수선할 때 이런 것까지 살뜰히 챙기다니. 몸둘 바를^^;;;

라로 2020-12-30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인체의 과학에 도전해 보세요!! 저는 해부학 책 읽고 과학이 너무 좋아졌어요!!😅

행복한책읽기 2020-12-31 00:13   좋아요 0 | URL
윽. 인체까지. 라로님 그곳은 은하계보다 더 복잡한 우주 아닌가요? 그 세계를 좋아하고 누비는 라로님이 그저 존경스러워요^^
 
사키 - 스레드니 바슈타르 외 7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3
사키 지음, 김석희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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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편중 단 네 편 읽었는데 완전 대박. 다른 버전의 모파상을 만난 기분. 구성. 스토리. 반전. 훌륭하다. 사키를 발견한 번역자분과 출판해준 현대문학에 감사. 사키는 불행한 어린시절을 이런 호러 이야기로 승화해낸 듯.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그녀의 장기였다˝(273) 사키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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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26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문학 하니 저는 ‘크눌프‘가 생각납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는데,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이라서 좀 더 기억에 남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26 22:34   좋아요 1 | URL
찜했습니다용. 헤세를 언제 읽었는지 까마득합니다^^;;;;
 
경계에 선 아이들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뿔(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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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 사놓고 이제야 읽는 중. 삼분의 일을 넘어섰는데 ‘스밀라‘와 비슷한 구조다. 아이들은 지키는 일.어둡고 아리송하고 쫄깃쫄깃하다. 뜨끔뜨끔해지는촌철살인들로 가득하다. 교사. 부모. 필독을 권하고 싶은데 난독에 걸릴 듯. 난 궁금증을 참고 천천히 읽는다. 근데 품절이라니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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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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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편 중 네 편을 읽었다. 낄낄대다(도덕적혼란) 훌쩍대다(실험실의소년들). 애트우드 언니. 글을 이렇게 잘 썼던 거였어? 왜 이제야 읽냐고. 애잔한 이야기를 거리 두기 화법으로, 시적으로 그려낸다. 연작 단편이라니. 이제부턴 순서대로 읽겠음. 좋으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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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0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복한책읽기 님과 함께 미션에 참여하고 싶어요!! 애트우드 순사대로 읽기 미션. 👍

행복한책읽기 2020-12-10 21:32   좋아요 0 | URL
좋아요 좋아요. 완전 환영이요^^
 

20201209 매일 시읽기 72일 

나는 아침마다 이 세계의 산(山)1628개의 이름들을 불러서 왼다. 
- 서정주 

나는 
날이날마다 아침이면 
이 세계의 산(山) 1628개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서 왼다. 
이것은 늙어가는 내 기억력의 침체를 막기 위해서지만, 
다 불러서 외고 나면
<킬리만자로> 산(山) 밑의 사자떼들, 
미국 서부산맥의 깜정 호랑이떼들, 
<히말라야> 산맥의 흰 표범의 무리들도
내게 웃으며 달려와서 아양을 떨고, 
또 저 <트리니다드>의 하늘의 홍학(紅鶴)의 무리들도
수만마리씩
그들의 수풀에 자욱히 날아앉어
꽃밭이 되며 꽃밭이 되며
나를 찬양한다.
해와 달도 반갑게는 더 밝어지고
이래서 나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를 구매했다. 이 시집은 안도현 시인의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에서 알게 되었다. 시인이 <<늙은 떠돌이의 시>>(1993)이후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쓴 시들을 간추려 펴낸 시집이다. 이 늙은 나이에도 시집을
내는 것이 민망했던지, 시인은 시를 쓰는 자신을 ˝늙은 숫소 한 마리가 . . . 먹은 풀들을 거듭거듭 되뱉어내 되새김질 하고 있는 꼬락서니˝라 묘사한다.

˝이 책의 제목을 <80소년 떠돌이의 시>라고 한 까닭은 내 나이가 올해 83세인데다가, 아직도 철이 덜든 소년 그대로고, 또 도(道)도 모자라는 떠돌이 상태임을 두루 요량해서 그렇게 했다.˝(시인의 말 중)

나이 들면 철이 든다는 것, 지금은 이 말을 전부 신뢰하진 않는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백 년을 살고 보니 철이 좀 든 사람 같다가도 여전히 철들지 않는, 혹은 철들지 못하는, 그것도 영영 철들지 못하는 ‘나‘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서정주 시인도 바로 그 점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기억력 침체를 막기 위해 아침마다 1638개의 산 이름을 외운다는 시인의 처지가 아주 먼 일 같지 않아서, 마흔일곱 편의 시들 중 이 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내가 이 시집을 구매한 것은 이분의 친일 이력을 떠나 이만큼 산 사람은 무엇에 기대 삶을 영위하는지 궁금해서이다. 늙은 시인의 눈엔 사람과 자연이 자리해 있다. 1638개의 산 이름을 외고 났더니, 온갖 짐승들이 웃으면서 달려오고 홍학이 날아들고 해도 달도 반가이 인사를 하더랜다. 그들과 더불어 시인 자신도 다시 살아났다고. 아. 나는 저 나이가 아직 한참남았는데 (과연 그럴까), 늙었음을 호쾌하게(?) 인정하는 시인의 기분을 왜 알 것만 같을까.

반백 년을 살았는데, 손에 쥐는 게 없는 삶을 산 듯한 헛헛함이 어느 날 덜커덩 찾아들었다. 한 번 찾아든 이 느낌은 무시로 찾아온다. 무시로 와서 때론 무섭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아, 이 헛헛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겠구나. 나 죽는 날까지 같이 가겠구나. 나도 80세
되면(그때까지 살려나?) 시인처럼 1638개의 산 이름을 외우리(살았으나 그런 기력이 있으려나?). 그러면 허파로 드나드는 바람 한 점 잡을 수 있겠지.

서정주 시인은 1915년 일제강점기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00년 12월 24일에 이승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80소년 떠돌이의 시>> 를 출간하고 3년 후인 86세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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