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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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5 매일 시읽기 99일 

채광 
- 강성은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오늘은 다시 강성은 시집 《Lo-fi》. 2005년 데뷔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자 2018년 제26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이다.

새해 벽두에 이 시집을 눈으로는 다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내가 느낀 점을 1월 2일 시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죽은 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시인. 시인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입 노릇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좀 아프고 꽤 먹먹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닌 세 글자가 있었다. 세 월 호. 2014년 4월 16일. 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면 대개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미안함. 죄책감. 무력감. 우울감. 이 참사는 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정말로 무슨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어 그런 건지 나는 아주 많이 궁금하다. 제삼자인 나조차 이렇게 궁금한데, 당사자들과 그 당사자들의 부모들과 자식들과 친지들의 의문이야 오죽할까.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대산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강성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시집 이후 5년 사이 벌어진 사건들 중 세월호 참사와 문단 내 성폭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 . 시에 암울한 세계가 많이 담겼다 . . . 이 세계가 이미 사후 세계가 아닌가 싶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 그 일을 글로 써 주길 바랐다. 강성은 시인은 자신이 잘 휘두르는 시라는 무기로 시커먼 바다 속과도 같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세계를 투명하게 그리고 있다. 그가 휘두르는 칼끝은 매섭고 시리고 아득하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나와 너를 가르는 창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 세상은 시인의 말대로 ˝이미 사후 세계˝일지 모른다. 두드리면 열려야 하고 던지면 깨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제 한 몸이라도 던질 밖에.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쳤을 때 깨지는 것은 바위가 아니라 계란이다.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이 시구에서 뜨끔하고 따끔했다가, 다음 연의 ˝투명한 창문 /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에서 서늘해지고 섬뜩해졌다. 내가 저 투명한 창문 안쪽의 사람들, 즉 방관자들 중 한 명이 아닌가 해서.

시인의 말따나 ˝암울한 세계가 많이 담겨˝ 있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유쾌함보다 불편함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내 속의 양심이 계속 말을 걸기 때문이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이 세계를 사후 세계로 만드는 우는 되도록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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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느질 수다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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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실로 날마다 ‘사랑해‘를 쓰다

​이 리뷰는 사심이 들어간 리뷰임을 밝힌다. 왜냐. 내가 이 저자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놀랐다. 알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 된 것에 우선 놀랐고, 책을 읽으면서 알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 됐는데도 내가 몰랐던 그 사람이 많아서 또 놀랐다. 글이란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속을 열어 보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책 출간과 동시에 저자의 손편지가 담긴 책을 받았다. 나는 단숨에 후루루 읽고 100자평을 올린 후 옆지기와 중딩 딸에게 일독을 강요했다. 옆지기의 평, ˝천승희씨는 현모양처네.˝ 딸의 평, ˝엄마는 왜 이모처럼 바느질을 못 해?˝ 고로 이 책은 나를 ˝바느질 못하는 악처˝로 내동댕이쳤다. 꺼이~~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저자는 그렇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쳐 저자가 한 땀 한 땀 천천히 바느질을 한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글 속에는 내가 아는 그녀와 내가 모르는 그녀가 공존해 있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내가 몰랐던 그녀 역시 내가 알던 그녀와 다르지 않게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정성스럽게 짓는 누비 이불처럼 말이다. 

​˝바늘과 실로 날마다 아이들에게 ‘사랑해‘라고 쓰던 날들이었어요.˝(26) 

​​부자를 나누는 기준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라고 한다면 저자의 집은 대한민국에서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 것이다. 이 집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이 드글드글하다. 이불, 드레스, 한복, 모자, 셔츠, 가방, 머리끈, 인형 세트, 테이블보, 손수건, 콩주머니, 컵받침대, 행주, 생리대까지. 아홉 살 때 처음 바늘과 실을 잡고 엄마에게 배운 바느질을 저자는 두 딸을 낳은 후 저자의 표현대로 정말 ˝야무지게˝ 써먹고 있다. 아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잘하고, 프로라고 하기에는 살짝 어설픈 솜씨지만, 적어도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선 그녀는 항상 최고다. 책은 읽는 동안, 나는 진심 이런 엄마를 둔 저자의 두 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니 내 딸이야 오죽 했을까.

바느질에 얽힌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은 무슨 심오한 담론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우러나는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썼기에 때로 저릿하고 때로 뭉클하고 때로 감동이다. 우리네 일상에 자리한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무엇보다 내가 100자평에도 쓴 것처럼 사람을 마구 따뜻따뜻, 다정다정, 포근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저자를 알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는 걸까? 다른 독자들도 나처럼 느낄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책에도 등장하지만, 이 저자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저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동네 엄마들과 독서 모임을 가지고 마을 사업을 벌이고 책이라면 진저리 치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그 모든 과정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이다. 나도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책놀이 봉사를 해본 적이 있다. 지루해하는 아이들, 장난 치는 아이들, 소리 치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은 봉사가 아니야, 할 게 못 돼 라며 한 학기만에 접었다. 저자는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해에는 육학년 아이들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거칠고 뾰족뾰족하고 마음이 아파 보이는 아이들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 말에 상처를 받고 집에 와 끙끙 앓기도 했지요.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른이니 오래 화를낼 수없지요. / 그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잘 자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동네에서 오가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눈이 되고 싶습니다.˝(175) 

​마을의 등대 같은 어른. 이 저자가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바느질처럼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모든 일을 하려는 사람. 저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길에 서 있고 싶어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와 같은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이 책이 느리더라도 꾸준히 읽혔으면 좋겠다. 아니아니. 나의 더 정직한 마음은 이 책이 불티나게 팔려 아끼는 동생이 ˝언니들, 어쩌죠. 저 유명해져 버렸어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여 오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큼직하고 시원스런 계획을 세우기보다 하루하루를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것에 더 열중하지요. 모든 일들을 좀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해내며 살고 싶습니다.˝(196) ​

사진은 중딩 딸이 쓴 독자평이다. 딸의 허락을 얻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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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05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고 책 님 때문에 이 책 관심가는데 전자책으로 안 나왔더라고요. ㅠㅠ 언제 꼭 읽어보겠어요. 그런데 중학생 따님이 엄마 닮아서 그런가? 글을 조리있게 잘 쓰네요. 저보다 낫다는!!👍😅

행복한책읽기 2021-01-05 09:52   좋아요 0 | URL
전자책 나옴 라로님께 쏴드릴게요. 부웅~~~~^^ 라로님 감성이랑 잘 맞을 것 같아요. 중딩딸은 엄마의 강압으로 책읽고 글쓰기를 매주 한 번 해요. 요약하기 핵심짚기를 제법 해서 저도 가끔 깜놀한답니다. 라로님 칭찬을 딸에게 전달했습니다요. 감솨!!!^^
 

20210102 매일 시읽기 96일 

Ghost 
- 강성은 

나는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는 아이였다 
식은 밥과 국을 들고 서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문득 오리너리구는 어쩌다 오리너구리다 된 걸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긴 복도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고 햇볕만 가득한 삼월 


2021년 첫 시집으로 선택한 것은 강성은 시인의《Lo-fi》다. 나는 단편이랑 시가 좋아 라며 책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해준 것은 강성은의 다른 시집이었지만, 대출 중이어서 이 시집부터 읽는다. 젊은 시인인가 했더니 73년생이다.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제목인 ‘Lo-fi‘는 low fidelity(저음질)을 뜻하는 음향용어이면서 고음질을 뜻하는 hi-fi와 달리 저가의 녹음 장비와 악기를 사용하여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구현하는 음악 장르로 쓰인다고 한다. 시의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수박
겉핥기로 읽은 내 느낌으론 거칠기보다 정제된 음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죽은 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시인.

시들을 후루루 들이키는 동안 내게 떠올랐던 문장이다. 시인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입 노릇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좀 아프고 꽤 먹먹하다.

이 시집에는 ‘Ghost‘라는 제목의 시가 여섯 편 수록돼 있다. 다섯 번째 ‘Ghost‘인 저 시를 읽다 시가 묘사하고 있는 광경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올라 나도 얼음 땡을 당한 사람처럼 식판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더 멍해졌다. 삼월 ˝햇볕만 가득한˝ 아무도 없˝는 교실. 무엇이 연상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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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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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매일 시읽기 93일

겨울 꿈 
- 이규리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불가능  
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 

갈 수 없어요 
가고 싶어요 

안녕 

용기를 내어 
죽자사자 뛰어왔는데 
여보 
이건 꽃이 아니잖아 

그토록 아무것도 아니었던 의문들 
이 간결한 근심들 

눈알을 버린다면 그때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데 

미안해 
당신을 버릴래 

부질없음을 부질없어하는 회오리 
꽃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어 

그리고 쏜살같이 먼 풍경이 되고 마는 북서풍 


2020년을 이틀, 더 정확하게는 하루하고 두어 시간을 남겨둔 12월 30일 수요일. 밤 아홉 시 30분. 내가 사는 곳 현재 기온 영하 11도. 한파가 몰려든 겨울밤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이규리 시인의 <겨울 꿈>.

<겨울 꿈>은 첫 두 행이 시의 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압축과 응축의 미학. ˝언제 언디서나 가능한 불가능 / 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나온 날들이다. 물론 그 날들로 절실히 가고 싶지는 않고, 어떤 날들은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꽃인 줄 알고 ˝죽자사자 뛰어왔는데˝ 꽃이 아니었어 라고 해서 무릎이 꺾였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던 ˝의문들˝과 속이 타들어가도록 애태우던 ˝근심들˝이 그저 ˝간결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었노라 해서 또 다시 무릎이 꺾였다. 허무하고 허무한데 ˝부질없음˝조차 ˝부질없˝다 해서 꺾인 무릎이 또 꺾여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꽃은 처음부터˝ 없었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듯한 ˝북서풍˝은 내 손에 잡히지도 못한 채 떠난 화살처럼 ˝먼 풍경˝으로 물러났다. 허무하고 또 허무해라.

한 해가 저문다. 올해 나는 무슨 꿈을 꾸었지. 꿈을 꾸기는 했던가. 생각해 보니 내가 꾸는 꿈은 꾸어봤자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깨닫고 언젠가부터 꿈을 꾸는 것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듯하다. 그래도 살더라. 꿈을 꾸어도 살고, 꿈을 꾸지 않아도 산다면, 어느 쪽을 택해서 살까. 시를 읽고 긁적이기 시작한지 93일째. 이 모든 행위도 ˝부질없음˝의 회오리로 날아올라 아주 ˝먼 풍경˝으로 자리하다 기억 속에서조차 잊힐지 모른다. 그럼 어떤가. ˝부질없음을 부질없어하는 회오리,˝ 부질없음을 전복시키는 역설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꺾였던 무릎 우두둑우두둑 곧추 세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삐거덕거려도 길을 가야지. 꿈은 걷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니.

겨울 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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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무민 가족과 크리스마스 대소동 + 무민 가족과 마법의 모자 + 무민 골짜기로 가는 길 - 전3권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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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격하게 소장하고프다. 울가족이 사랑하는 무민. 본다, 읽는다, 스민다, 가 바로 적용되는 무민. 울아들의 애장 도서들 중 하나. 새 시리즈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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