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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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매일 시읽기 68일

오늘 Today 
- 메리 올리버 

오늘 나는 낮게 날고 있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야망의 주술을 잠재우고 있지. 

세상은 갈 길을 가고 있어, 
정원의 별들은 조금 붕붕대고,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각다귀는 잡아먹히지. 
기타 등등.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쉬고 있어, 
깃털처럼 조용히.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사실은 굉장히 멀리 
여행하고 있지. 

고요.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들 가운데 하나. 
Stillness. One of the doors​into the temple. 


메리 올리버가 일흔일곱의 나이에 낸 시집 <<천 개의 아침 A Thousand Morning>>을 열흘 만에 다 읽었다. 모두 서른여섯 편.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이 모두 좋기는 거의 처음인 듯하다. 하루 몇 편씩 시들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차분한 즐거움, 조용한 쾌활함, 빛나는 통찰력, 스미는 행복감.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고향이라는 프로빈스타에서 반평생을 살았다지.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가보지 못할 그곳은 풀과 나무와 새와 바다와 물고기 등등 온갖 생명체로 넘쳐나는 곳이라지. 시인의 눈은 세상에 대한 환희로 반짝거리고 시인의 뇌는 환희에서 탄생한 통찰로 번뜩인다. 번역도 빛난다.

˝정말이지 개미는 활기가 넘친다니까! 
발에 밟히면서 얼마나 법석을 떠는지 봐.˝(<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개미는 시인 자신 같다. 사는 동안 누구 ˝발에 밟히˝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밟히고 찢겨도 ˝활기˝를 잃지 않는 것, ˝쾌활하게˝ 살아가는 것, 그런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나? 메리 언니의 경우에는 자연이다. 자연은 또한 신이다. 신은 도처에 있다. ˝먼지 속˝ ˝꽃밭˝ ˝바다˝ ˝섬˝ ˝얼음의 대륙들˝ ˝모래의 나라들˝에 (<아름다운 장소들로의 여행에 대하여>). 나는 무신론자지만 자연의 경이를 접할 때면 조화가 넘치는 세상을 창조한 그 누군가가 꼭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메리 올리버는 그런 소우주들의 세계를 시로 그려냈다. 경쾌하나 경박하지 않게. 유쾌하나 유치하지 않게. 심오하나 심각하지 않게.

시들을 읽는 동안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워즈워스, 코울리지, 키츠, 셸리가 떠올랐다. 대학원 시절 그들의 시들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나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빛 조각들이 얼마나 눈부신지, 비 온 뒤 물기 머금은 초록빛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를 그들은 노래했었다. 그들의 노래 덕에 나는 산과 숲에 들어섰을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코를
크게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자연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메리 올리버는 낭만주의 시인들의 정서를 따르되 감정의 과잉에 빠지지 않는다. 환희에 젖어들되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 의문이 들만큼. 시인의 젊은 시절 시들이 궁금해질 만큼.​

1935년생인(우리 엄마보다 한 살 적다) 메리 올리버는 2019년 1월 19일 여든세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나는 나의 개 퍼시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라는 시는 시인이 꼭 퍼시처럼 살다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병이 날 때마다 이겨내고 또 이겨냈으니까,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이겨내다가 떠났으니까. 

그는 엄숙함과 익살스러움의 혼합체니까.˝  

나는 풍진 세상을 견디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는 ‘유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메리 언니는 고개 숙이지 말아야 할 것에 고개 숙이지 않는 ˝엄숙함˝과 나를 좌절시키는 것에 좌절하지 않으려는 ˝익살˝을 동시에 지닌 시인이 아니었을까. <나의 개 퍼시 . . >에서 시인은 말한다. ˝나는 구름 속에서 그의 형상을 자주 보고 그건 나에게 끊임없는 축복이니까.˝ 바다 건너 한 독자가 이 시구를 빌어 하늘의 별이 된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당신의 시집에서 당신의 형상을 자주 볼게요. 그건 나에게 끊임없는 축복continual blessing입니다.˝

오늘, 나는 이 축복을 누렸다. 아들과 함께 뒷산을 산책하며 알록달록 치장을 벗어 던진 가난한 나무들과 흰구름들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열한 산 아들은 늘 내게 말한다. ˝엄마 늙지 마요, 할머니가 되지 마요.˝ 나는 이제부터 메리 언니가 쓴 시를 비틀어 답해주리. ˝너는 자랄 거고 / 그렇게 되려면 / 나는 늙어야만 하고 / 그다음엔 죽을 거야, 그리고 그건 / 네 탓이 아니야.(원문은 ‘네 탓이 될 거야˝ <붕, 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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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06 14:35   좋아요 0 | URL
떠남은 늘 새롬을 선사하는 듯해요. 일어나 떠나시라, 권합니다요~~

라로 2020-12-0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부터 메리 올리버 팬이지만 행복한책읽기 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놓쳤던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 읽고 싶어졌어요!! 메리 올리버는 돌아가신 제 친정 엄마보다 5살 더 많으신데 더 오래 사셨네요...... 조용한 쾌활함이라니 넘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메리 올리버!!😍

행복한책읽기 2020-12-06 14:41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야 메리 언니를 알게 됐어요. 엄마뻘이나 언니라고 할라고요.ㅋ 산문집보다 시집이 더 좋네요. 라로님 어머님은 멀리 떠나셨군요. 제 엄니는 기억의 끈을 줄이면서 이승의 끈을 붙잡고 계세요. 코로나로 자주 못봐 마음이 ㅠㅠ 해요
 

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 것이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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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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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매일 시읽기 61일

내 청춘의 영원한
-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거의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를 몽땅 읽는 경우가 잘 없는데(얇은데도 쉽지 않다) 이 시집은 다 읽고야 말리라는 투지를, 까지는 아니고, 읽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의 내적 정서가 마음을 울렸고 기억해두고 싶은(물론 기억 못할) 시구들이 정말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랑>>을 요약해주는 시가 위의 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이 세 가지 감정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자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1981년 출간된 이 시집은 시인의 나이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까지 쓴 시들을 역순으로 배치해 놓았다. 1부는 1981년에, 2부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3부는 대학 3학년때부터 대학 중퇴까지 쓴 시들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이십대 청춘의 시기를 기록한 것인데, 이 시집은 청춘의 풋풋함이나 낭만보다 청춘의 괴로움과 절망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 여자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기형도보다 절망의 나락이 더 깊어 보인다.

나무위키에는 최승자 시인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가족이 없었고,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가기도 하였다.˝ ​

시들을 보면 시인이 유복함이나 행복함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아주 먼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 .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일찍기 나는) ˝애비는 역시 전화도 주지 않았다.˝(‘슬픈 기쁜 생일)

시인의 삶은 외롭고 슬프고 괴롭고 아프다. 많이도 가련하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셔 보지만(‘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로움과 괴로움은 시인의 몸에 ˝장전되어˝ 시인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외로움의 폭력‘). 외로워서 슬프고, 슬퍼서 외로운데, 슬픔은 도돌이표처럼 부메랑처럼 ˝튕겨져 나갔다 다시/ 튕겨져˝ 들어온다(‘청계천 엘러지‘). 시인의 어깨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슬픔의 외투˝가 걸쳐져 있다.

시들을 읽다 가슴이 얼마나 저릿저릿해지던지, 서른의 시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꼭 부둥켜안고서 등을 토닥이며 ˝힘들었구나, 애썼구나, 장하구나˝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시인처럼 나 또한 그 시절을 그렇게 힘겹게, 그렇게 꾸역꾸역 관통해왔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십 대는 ˝뼈아픈 사랑˝이 ˝한의 못˝을 이루고(‘버림받은 자들의 노래‘), 외로움이 ˝불침번˝처럼(‘과거를 가진 사람들‘) 서 있고, ˝고독의 핏물˝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이고˝(‘외로움의 폭력‘), ˝절망의 골수분자˝가 ˝구더기처럼 꿈틀거리˝고(‘어느 여인이 종말‘), ˝저승의 물결 같은 선잠˝이 ˝머릿골을 하얗게˝ 씻긴다(‘선잠‘).

이 모든 감정들의 귀결은 그리움이다. 거머쥐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것들을 쥐고 싶은 간절함. 그 ˝그리움의 그림자들은/ 짓밟히며 짓밟히며/ 다시 일어˝선다(‘부질없는 물음‘). 그리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 배워야 했다. / 다르게 사랑하는 법 / 감추는 법 건너 뛰는 법 부정하는 법, /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올 여름의 인생 공부‘ 중)

내 이십 중반부터 삼십까지는 아주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그 어둠 속 빛이 되어 준 것 중 하나가 책이었다. 시인에겐 시를 쓰는 것이 저 시절의 어둠을 통과하게 만든 빛이 아니었을까. 52년생인 시인이, 2020년에 예순아홉의 할머니가 된 시인이 ˝아이처럼˝ 웃고 살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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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77)
겉보기에만 괜찮은 표정으로 /남 좋은 일 시켜줍니다(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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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 효?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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