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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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민음사에서 출간된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단의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블라드』는 단편이다. 민음사에서는 그 동안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작품을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했다. 『아우라』는 세계문학전집 229번으로 나왔고, 『의지와 운명』은 전 2권으로 251, 252번으로 출간된 것이다. 단편 『블라드』는 원래 단편집 『불안 사회』에 수록되었던 것을 따로 떼어내 작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단행본이라고 한다. 사실 단편 하나를 양장본으로 제작한 것은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붉은 색의 책 표지 디자인부터 전체적으로 예쁘게 잘 만들어진 책이었지만, 132쪽 밖에 되지 않은 책이라는 점은 분량 대비 가격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반드시 책의 분량이 가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자의 가격이 몇 십만원으로 책정되지 않듯이, 몇 십 쪽에 불과한 책이 만원의 책으로 나오듯이 말이다.(인문서 『사라짐에 대하여』나 『피로사회』 같이 백쪽 안팎의 책들처럼) 
 그렇지만 굳이 단편 하나로 나온 단행본을 출판사에서 계약해서 냈을 필요가 있었을까. 단편집으로 계약 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작품을 읽고 다시 원래 수록되었단 단편집 제목을 상기하면 단편집 형태가 더 완성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계약금의 문제이거나, 계약상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았다. 여러 출판 판형 시도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이렇게 단편 하나를 파는 방식도 바쁜 현대 사회에 새로운 출판 트렌드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007년도에도 황석영 작가는 경장편이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말하면서 경장편을 발표하고 시작했다. 민음사에서는 계간 문예지인 『세계의 문학』에 작가들의 경장편을 수록하고 단행본으로 내며, 이번에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경장편 시리즈를 출범했다.
 황석영은 다른 인터뷰에서 경장편을 "1천 매 안쪽의 경장편을 저는 ‘시적 서사’라고 표현하는데, 삶 자체가 변하면서 시(詩)가 현대사회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서구에서는 서점에서 시집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또,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개밥바라기 별』 출간 후 인터뷰에서는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자연묘사나 사물묘사를 늘어놓는다든가, 세부묘사를 한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글을 쓰게 되죠. 아니면 영화의 씬처럼 장면이 넘어가게 끔 구성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스피디하게 속도를 붙였어요. 이런 형식은 <손님>, <바리데기>에도 사용하긴 했죠. 아무래도 경장편을 쓰게 되니까. 예전처럼 열 권짜리 장편 누가 읽어요. 세계적 문화 분위기가 달라지고, 독자들 읽는 취향도 달라졌잖아요. 점점 압축되고 짧아지겠죠."라고 하면서 세계적 문화 분위기가 달라지고 영상 세대에 맞는 글쓰기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영화 감독들과 얘기를 해 보니까, 몇천 장짜리 서사를 다루면 영화가 원작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디테일과 내용에 치이고, 단편을 다루면 예술영화의 맛은 나지만 소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 때문에 고민을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서사를 가지고 있되 한 두 시간 분량의 필름에 담을 수 있는 걸로는 경장편이 맞겠다 싶은 겁니다. 중편보다 조금 더 긴 분량의 짧은 장편이죠. 그렇게 되면 작가 스스로도 압축하게 되고 지지부진한 묘사도 성큼성큼 건너뛰면서 영상적인 신으로 표현하게 되겠죠. 그게 영상에 어울릴 뿐만 아니라 요즘 독자들의 구미와 생활방식에도 맞는 형식이 아닌가 생각한 겁니다. 원고지 7, 800장 분량이면 주말을 이용해 읽어 한 권을 읽어 치울 수도 있고, 직장인들은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며칠 만에 끝낼 수도 있겠구요. 그런 경장편은 쓸 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즉, 이런 관점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대하 소설은 읽히기 힘들며, 영상 세대에 맞는 경장편 내지 중편이 세계적인 트렌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도 역시 편집에 여백이 많은 경장편으로 176쪽 밖에 되지 않으며, 배명훈의 스페이스 오페라 중편 『청혼』도 양장본으로 편집이 동화 식으로 줄간격이 넓고 글자 크기가 커서 한 페이지에 몇 줄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260쪽이다.
 소수의 독서가만이 좋아할 두툼한 책들은 지금 서점을 찾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블라드』와 같은 민음사에서 나온 이탈로 칼비노가 엮은 『세계의 환상소설』을 보자. 총 668쪽에 2만원이 정가인 책으로 총 2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분량 대비로 『블라드』에 비해 엄청 값싼 책이라지만 이 책이 『블라드』보다 요즘 일반 독자들에게 더 잘 다가올 수 있을까. 서점에서 가볍게 지하철에서 읽을 책으로는 『블라드』가 더 나은 게 아닐까? 다른 예로 SF로 보자면, 로저 젤라즈니의 SF 중단편집 『드림 마스터』는 양장본으로 684쪽에 총 1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테드 창의 SF 중편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문고본으로 216쪽 분량으로 단 한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벽돌책과 얇은책 중에 일반 독자가 서점에서 집어들 가능성이 높은 책은 무엇일까? 집에서 며칠 씩 책 읽을 틈이 없는 현대 사회의 독자들에게는 지하철에서 혹은 주말에 가볍게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얇은 책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단행본이 사람들에게 하루 이틀은 시간을 써야 다 읽을 수 있는 매체로 인지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가 두시간이면 감상을 확실히 끝낼 수 있는 것에 반해 책은 감상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그만큼 영화가 더 쉽게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블라드』처럼 단편이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처럼 중편이 책으로 나온다면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두 세 시간이면 한 권을 끝낼 수 있다. 역시 영화의 상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단편이나 중편이 출간되는 경향은 새로운 출판 문화 트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전 독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색하고 읽고 나서 김이 빠진다든가 섭섭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출판이 시각적, 심리적 부담감을 줄이고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힌다면 출판사에서는 적극 시도해볼 것 같기도 하다.
 단편 하나를 판매하는 방식은 문고본으로 얇고 싸게 만든다든가, 들고 다닐 때나 책장을 장식할 때 좋을 만한 고급스런 표지의 양장본으로 만드는 방식이 있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책이 있을 것이다. 전자책으로 단편이나 중편을 다운 받아 두 세시간만에 읽고 넘길 수 있는 게 앞으로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이고 실제로도 전자책은 이런 식으로 단편집 하나를 쪼개 단편 하나나 두 세편을 따로 금액을 책정해서 팔기도 한다. 『블라드』 역시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다.

 그럼 이제, 판형에 대한 단상을 이쯤에서 끝내고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단편이기 때문에 복잡한 스토리를 가진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익히 하는 드라큘라, 왈라키아의 공작 블라드 체페슈가 멕시코 시티로 온 이야기를 다룬 소품인 것이다. 블라드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죄인이나 포로를 꼬챙이 꿰어 죽이는 공포 정치를 했기 때문에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어 지금도 흡혈귀 하면 드라큘라라는 체페슈의 별칭을 떠올리게 된다.

 "문제는 내 오랜 친구가 멕시코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는 거라오. 일반적인 통념이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 알겠소. 친구의 영지에 있던 저택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오. 그런데 그 친구가 바로 이곳 멕시코시티에서 보금자리를 구하고 있는 거요."(22)

 여기서 말하는 오랜 친구란 바로 드라큘라, 블라드다. 그러나 이때까지 주인공은 사장의 오랜 친구라는 블라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일상이 무너져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일상에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절대적인 비일상이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인간은 모두 필멸자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유약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만들고, 영생을 믿는다. 한편으로 여러 서브컬쳐에서는 언데드가 등장한다. 죽지 않은 채 시체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들. 그들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존재들이다. 이 역시 죽음의 공포에 대한 반항이 엿보인다. 흡혈귀들을 보면서 인간은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생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선악과처럼 탐낸다. 영생과 흡혈 같은 비일상 앞에서 죽음이 정해져 있는 고단한 짧은 생의 반복은 하루살이처럼 하찮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블라드는 섬뜩하다. 평범한 가정이 무너지는데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력함이 이 소설 전체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렬한 정서다.
 주인공의 단촐한 가정이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아들을 바다에 잃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음으로 인한 결핍을 가졌기 때문에 그 틈새로 영생의 유혹이 스며들어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혹은 아니다. 마치 숙명처럼, 징벌처럼 내려오는 철퇴 같이 막을 수 없게 묘사된다. 거장의 솜씨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필자가 느낀 공포는 단순히 흡혈귀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일상을 조여 오는 이 비극의 물결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안정적인 구성으로 차츰 작가가 설계한 결말로 치닫는데, 그 과정이 정갈해서 단편의 모범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야기도 새롭지 않고,(특히 장르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멕시코인이라면 더 와닿을 설정도 다른 나라의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한국 작가가 서울로 온 흡혈귀를 묘사했다면 신선한 느낌을 받고 더 잘 이입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에서 외국으로 이동하는 느낌에서는 타지에서 고향으로 침범한 이질적 존재에 대한 낯선 두려움이 좀 퇴색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화나 묘사, 문장들은 번역된 소설임에도 아름답다.(물론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다. 라틴 아메리카 문단 거장의 공력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백작은 머리를 갸웃하는 바람에 가발을 매만져야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 우리를 덮친단 말입니까? 그 슬픔들에도 어떤 원인이나 근거가 있어야 해요. 알겠어요? 우리는 완전히 고갈된 민족이에요. 무수한 내전, 쓸모없이 뿌려진 수많은 피……. 이 얼마나 우울한 상황입니까? 모든 것에 부패의 씨앗이 들어 있어요. 사물에는 쇠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씨앗이."(43)

 환상적인 이미지들도 있고,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핏빛 이미지도 있다. 고풍스런 고딕 소설의 느낌이 나기도 하며, 현대적인 감각이 섞여서 이 소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잊지 마시오. 부인에게…… 아수시온, 맞지요? 부인에게 전해 주시오. 따님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인이 촛불을 주인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며 덧붙였다.
 "우리 같이 놀 수 있어요, 셋이서……."
 하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았다.(47~48)

 비루한 삶의 균열 속으로 이질적인 타인이 침입하고 마침내 붕괴한다. 그리고 새로운 불안의 세계로 이어진다는 서사는 익숙하면서도 음울하고 두렵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언제든 주변을 둘러싼 삶이 한 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전혀 다른 세계로 미끄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인의 불안을 환상적인 장치를 통해 표현했다고 독해한다면, 소설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주인공이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조금은 지루하지만, 이게 사실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것이라면. 평이한 일상이 결코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것. 그것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이 단편은 서늘하게 다가온다. 블라드는 죽음의 의인화처럼 보이지만,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또 다른 죽음이다. 어긋나버린, 세상과 불일치 된 죽음. 절망의 절벽 속으로 떨어져 내리듯이. 고대에서 혹은 전설 속에서 육신화 된 죽음이며 주인공을 혼돈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령이다. 어쩌면 주인공의 무의식의 발로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내와 딸이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다는 욕망, 잃어버린 아들의 대한 죄책감. 모든 게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환영일 수도 있다는 것이, 혹은 블라드가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그만큼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불안이 스멀스멀 영혼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치밀하게 다룬다. 겉으로 행복해 보이던, 그러나 견고하지 않았던 가정이 한 순간에 낯설어지는 그 찰나의 불쾌한 이질감. 도무지 손댈 수조차 없는, 악이 아닌 불멸의 저주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이 소설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아수시온이 나를 쳐다보던 그 원한에 사무친 눈초리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의 실존과 다름없는 그 부재. 소리쳐 울부짖는 그 침묵. 어린 시절에 영원히 붙박인 그 사진…….(31)

 "아십니까? 어린아이는 아직 죽지 않은 작은 신과 같아요."
 "죽지 않은 신이요?" 나는 움찔하며 말했다. "그건 사탄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사탄은 추락한 천사예요."(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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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징크스 - 김주영 환상문학 단편선 작가와의 만남 1
김주영 지음 / 기적의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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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로 쓰인 여러 단편들, 다시 쓰는 동화 이야기들, 이미 여러 장편을 낸 역량있는 작가의 단독 단편집이라 기대가 큽니다. 배송이 얼른 되면 좋겠네요. 기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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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월드 래리 니븐 컬렉션 2
레리 니븐 지음, 고호관 옮김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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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수많은 영향을 끼친 대작 SF의 재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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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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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언트와의 퍼스트콘택트 관점으로 본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을 안 읽은 분은 절대 읽지 마세요. 본문의 직접 인용이 꽤 많습니다.



 “저도 디지언트를 키워 봤지만 갓난애가 말을 하는 수준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뉴로블래스트 디지언트를 키우셨나요?”
 “예. 발매되자마자 하나 샀죠. 애나 씨와 마찬가지로 잭스 마스코트의 인스턴트였습니다. 피츠라고 이름 붙이고 일 년쯤 키웠죠.”
 이 사람, 어린 잭스를 키우고 있었어. 애나는 생각했다. 이 사내를 오너로 아는 잭스의 갓난아이 버전 하나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175)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쉽게 말하면 가상 애완동물 사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아주 단순하게 보는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야기나,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비유로만 좁게 파악하는 우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SF이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면서 바로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가 SF인 것이다. 인간과 그 삶에 대해서, 우리들의 가능성에 대해서, 소설은 다양한 열린 세계를 펼쳐 놓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디지언트’라는 존재다. 데이터어스라는 가상 세계 속에 사는 디지털 존재로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생명체다. 본문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진짜 동물이 아니면서 사람들에게 애교를 떠는 이상적인 애완동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존재인가? 새로운 생명체가 아닌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생명체. 인류의 자식이다. 고전 SF에서 ‘로봇’으로 상징되던 인간의 자식을 여기서는 사이버 생명체인 ‘디지언트’로 치환했다.


 로빈은 퍼뜩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넓은 시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야.”(61)
 


 앞에서 말했듯 아기나 동물로 디지언트의 의미를 굳이 좁힐 필요가 없다. SF는 우주와 그 안에 사는 인간을 통합적으로 다루며, 어떤 장르보다도 인류 자체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문학이다. 의미를 좁히는 게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소설 속 로빈의 대사가 애나의 반대항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애나의 입장에서 그 소리는 반박되어야 하는 것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로빈의 대사는 좁은 생각이고, 편견이며, 이 소설의 주제와 동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반대로 의미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로빈이 고양이, 개, 디지언트는 대용품에 불과하다며, 아이를 임신한 것이 ‘내 입장에서 넓은 시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 대사를 이 소설의 주제와 연관시켜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개별적인 한 인간과 한 디지언트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인류가 디지언트라는 새로운 종족을 품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인간들도 언젠가는 디지언트가 뭘 의미하는지, 정말로 뭘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될 거고, 그러면 모든 게 바뀔 거야. 그런다면 예전에 느꼈던 모든 감정이 실제로는―,”(61, 나에서 인간, 아기에서 디지언트로 변형해서 인용.) 즉, 인류의 입장에서 넓은 시야로 사물(또는 세계)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디지언트’가 될 것이다.


 수많은 SF에서 ‘로봇’이 인간이 죽고 없어진 뒤에도 자기들만의 문명을 이루어 나가듯이 ‘디지언트’는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어 무한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가능성은 흥미로운 것이 창조주보다 더 넓은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의식이 똑같으며 몸은 기기로 대체가 가능한 사이버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서 진화가 가능하다면, 결국에는 특이점(싱귤러리티)을 지나 인간을 초월한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제노사이드』의 신인류처럼 자연법칙을 계산해내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차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엑셀 월드』에서 가상 세계에서의 사고 속도 차이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소설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나, 만약 그 기술을 정밀하게 이용한다면 전 인류가 다이브해서 문명의 발달을 촉진시킬 수 있을 테고 특이점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디지언트는 가상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체이므로, 이들의 발전 가능성 역시 인류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그 불가능한 지점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과 다른 시간을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법칙 속에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상한 존』처럼 인간의 지능이 넘어선 순간부터 자기들만의 공간과 문화를 쌓아나가다가, 정보로 이루어진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닿아 버린다면, 그들은 외계인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소설에서도 인위적으로 그런 외계인,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만들려는 실험이 언급된다. 물론 정부나 기관,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진다. 동호인들이 제노테리언이라고 명명해서 사설 대륙에 외계 문명을 무부터 창조하는 것이다.(이런 곳곳에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흥미로운 발상들이 많은데, 그 간극들을 짚어보면 정말 놀라운 경이를 느낄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가상 생명체를 진화시켜, 외계인을 창조하고 다시 그들과 퍼스트 콘택트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해결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을 풀게 되거나, 전혀 다른 문물을 전달 받을 수도 있다. 역으로 인간이 없어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생명체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 또 다른 우주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해당 대륙의 디지언트들 앞에서는 인공 언어인 로지반logiban을 특화한 방언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릭은 동호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문턱이 엄청나게 높기도 하지만, 제노테리언 육성으로는 그와 애나가 방금 마르코를 관찰하면서 느꼈던 종류의 기쁨을 얻을 수는 없다. 동호인들은 순수하게 지적인 보상만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과연 그것만으로도 충분할까?(50)


 디지언트는 인간의 자식이면서도 다른 사고와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신인류이며, 신종족이다. 그들의 의식을 인정했을 때, 여기에는 애완동물이나 아이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바로 다른 지성을 가진 신종족과 유대를 쌓고 그들이 인간세계에 접촉하며 자신들의 가능성을 파악해 나가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 『디스트릭트9』에서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핍박하고 생체실험만 자행했던 인간처럼, 이 소설 속에서는 그런 가능성은 주목되지 않고 자본의 논리로 회사가 없어지고 디지언트들은 존립이 어려워진다. 결국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에는 돈이 필요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소설은 관념적이나 추상적으로 디지언트를 다루지 않는다. 철저하게 지금 시대를 비추어서 있을 법한 현실 속에 ‘디지언트’를 던져 놓고, 이들의 삶을 밀착해서 그린다. 그로 인해서 현실성이 느껴지고, 이들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독자 역시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테드 창이 예전 강연에서 판타지에서는 마법의 양탄자가 나와 소수만 이용이 가능한 세계를 그리지만, SF에서는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 보편적인 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개혁하는 세계를 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판타지에서 요정 같은 존재가 등장해서 진화의 가능성 없이 그 시대에만 머무는 보수성을 띈다면, SF인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디지언트’는 공개된 기술이며 어느 회사에서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게놈 엔진이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로 인해 세계가 진보한다. 인류의 삶과 유희가 변화한다. 이게 계속 된다면 디지언트와 인간은 상호 보완 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신 구조까지 변해버릴 것이다. 이때, 테드 창은 SF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한 인물이 어떤 피해를 입는가를,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는가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SF는 결국 과학 논문이 아니라, 인간을 다루는 소설이므로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테드 창의 창작론에 맞게 이 작품은 전략적으로 쓰였으며, 인간과 과학기술로 태어난 신종족의 유대로 변화하는 세계를 그리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삶, 희생, 상처를 다룬다. 그리고 그 둘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재미와 의미가 파생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다른 SF들과 차이점을 지닌다면, 바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소비해서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즉,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한 번에 완제품으로 제시되어 인간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인공지능을 키워내야 하는데, 이것은 좀 더 생명체에 대한 접근처럼 보이며, 이들이 신종족으로 파악해야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뒤에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을 쌓는 시간이 몇 십 만년, 몇 백 만년이라면, 이 종족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신종족의 탄생기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 성별을 정하고, 돈을 벌고, 추후 법인을 세워 경제적 자립을 하고,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면 자기 자신을 이해서 스스로를 해부할 수도 있다.(이미 소설 내에서도 보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암시가 나왔다. 이것을 이용해서 이들은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 보상 조건을 어떻게 잡느냐가 존재의 그릇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혀서 스스로를 해부한다면? 필립 K.딕의 단편 「전자 개미」나 테드 창의 「숨결」처럼 스스로의 인지 단위를 조작함으로써 세계를 조작하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초월해버릴 것이다.


 “잠깐.” 마르코가 항의했다. “우리 법인 되면 뭐든 다 결정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했지.” 데릭은 시인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자기 보상 시스템을 편집할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 했어. 그건 아주 위험할 수도 있거든.”
 “하지만 인간은 자기 보상 시스템 편집할 수 있어.”
 “뭐라고? 인간도 그런 일을 하지는 못해.”
 “섹스할 때 사람들 먹는 약은? 체은제는?”
 “최음제.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
 “인스턴트라포도 일시적이야?” 폴로가 물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지. 하지만 인간이 그걸 쓸 때는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특히 회사가 급료를 미끼로 그걸 강제로 하라고 할 때는 말이지. 데릭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법인 되면, 잘못 저지를 자유 있어.” 마르코가 말했다. “그게 포인트.”
 “너희들은 아직 법인이 될 준비가 안 되어 있어.”(163)


 소설에서는 계속 이들이 데릭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함으로써 이질감을 주는데, 이것은 이들이 인간도 아니고, 애완동물도 아니며, 제3의 종족, 우리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또 이 우주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생명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이 종족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 당연히 인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테니까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교류하며 애정을 보이는 인간의 본성과 삶을 파헤치면서도, 디지언트라는 종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그리면서 경이를 선사한다. 단순히 외계 지성 종족 간의 퍼스트 콘택트와 인간 사회의 법적인 자격의 문제라면 존 스칼지의 장편SF 『작은 친구들의 행성』에서 흡인력 있으면서도 진중하게 잘 다루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다른 종족과의 접촉이 아니라, 하나의 가상 종족을 만들고 그들을 진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생활 밀착형으로 그림으로써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잘못을 저지를 자유는, 인간의 상식을 넘어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종족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소설의 결말은 열린 채로 끝난다. 이 뒤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 있고, 그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만으로도 작가는 독자를 새로운 우주 속에 던져 넣은 것과 마찬가지다.
 중편임에도 장편처럼 느껴지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인공 언어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사유, 인스턴트라포의 기능과 가능성? 게놈 엔진의 종류와 역할, 새로운 엔진에 대한 사유, 디지언트의 진화 가능성, 디지언트의 문학, 춤, 음악 같은 문화, 새로운 사이버 공간, 미래 문화, 인류의 사고 변화) 과작인 작가의 특성이 여실이 드러날 정도로 세세하게 과학적 조건과 배경을 설정하고 인간과 디지언트의 관계를 조명한다. 인간이 디지언트에게 보내는 것은 무한한 사랑이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것과도 같다.(흥미로운 점은 이게 바로 인간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디지언트에게 보상이 설정되어 있듯이, 인간은 육성과 관찰로 인한 기쁨을 보상으로 얻고 있다. 이 동력이 디지언트를 유지하게 만들고 다시 디지언트가 보상을 얻게 만든다. 이 순환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는 부모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지는 않는다. 디지언트는 소설 속 지능 묘사로 인해 아이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데릭의 지적처럼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사고로 판단한 것이다.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실제로 동물이나 아기,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이 접하지 못한 신종족인 것이다. 디지언트는 인류에 대한 것들을 습득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긍정하거나 인류의 사고 방식을 베끼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하며, 많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생명체를 이해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나, 또한 두렵기도 한 것이다. 과학적 사고에 의한 이런 사고 실험은 SF 특유의 강렬한 매력이며, 독자 역시 이 실험에 참여함으로써 놀라운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이건 마치 소설 속에서 디지언트에게 직접 다양한 것을 제작할 수 있는 장난감을 선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소설을 사고 실험의 장난감으로 볼 때, 대입할 수 있는 변수가 다양하여 가능성이 무한한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데이터어스로 같이 가서, 거기 포탈을 열어줘.”
 “거기 네가 입을 몸이 있다면 너야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난 다른 몸을 입을 수가 없어. 난 이 몸을 직접 움직여서 가야 하고, 그런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마르코는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데릭은 디지언트의 얼굴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바깥세상 멍청해.” 디지언트가 선언했다.
 데릭과 애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48)


 디지언트가 바깥 세계에서는 포탈을 열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가상공간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태어난 인공 생명체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의 차이점을 배워나간다. 이때, 이들은 얼마든지 가상 세계에서 포탈을 열고 다닐 수 있으며, 현실에서도 각 장소마다 실체를 가진 외부 디바이스만 있다면 순간 이동으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이것은 디지언트와 인간의 차이점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장면이다. 데릭과 애나는 웃고 넘기는 부분이지만, 수십 만년 뒤에 이 차이가 무엇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은 이렇듯 디지언트의 입장을 핍진성이 느껴지게 그리고 있는데, 이런 점들이 독특한 감각의 전이 느낌을 받게 한다. 인간이 다른 가상의 생명체의 감각을 추측하고 느껴보면서 이 세계에서 유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선한 충격은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만이 느껴볼 수 있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가상 공간에 있던 생명체가 로봇 외피를 통해서 바깥 세계를 만지고 보고 걸어 다니고 컴퓨터를 만지는 묘사들이 텍스트를 통해 차원을 넘나다니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들은 정지될 수도(따라서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에 도착할 수도 있고), 일정 날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런 생명체가 느끼는 감각과 사고관을 유추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지면서도 다양한 가능성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 세계에서 대체물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로봇 외피는 조종자가 없는 방목 기계로 분류되기 때문에, 애나나 카일이 동반하지 않는 한 공공장소로의 입장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잭스는 아파트에 갇혀 지내면서 지루해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몇 주 전부터 애나는 로봇 외피를 입은 잭스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리얼스페이스에 로그인하게 해 보았지만, 잭스는 더 이상 그러기를 거부했다. 애당초 진짜 컴퓨터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카메라가 인간이 아닌 로봇 외피의 제스처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등 유저 인터페이스상의 문제가 있었다.(118~119)


 특히 인상적인 것은 디지언트인 ‘잭스’가 청소년들과 친구가 되며, 이들은 잭스를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친구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지금도 가능할까? 트위터로만 교류하는 인공지능과 젊은 세대) 이 세계는 이미 가상현실이 깊숙하게 퍼진 곳이기 때문에 그런 인식과 사고관을 가진 세대가 출현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이 이후의 세대는 당연히 디지언트와 다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이는 디지언트의 진화와 연계될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이를 암시하고 있다.


 디지언트와 함께 자라난 새로운 세대의 인간들이 잭스를 포용하고, 애나의 세대에서는 불가능 했던 새로운 방식을 통해 디지언트들을 잠재적인 연애 상대로 바라보는 것을 상상했다. 잭스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논쟁을 벌이고 타협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잭스가 희생을 치르는 광경을 상상했다.(197)


 결국 디지언트와 함께 인류도 진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인류는 자식을 키워 자신들의 동반자로, 친구로 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초래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는 없다. 소설에서도 먼 미래를 다루지 않는다. 근미래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세대의 인간과 디지언트가 동등한 관계가 되어 친구나 연인이 될 미래를 애나의 상상만으로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다. 인간이 과학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든 가상 생명체를 통해 다시 한 번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것이다. 그 세대가 바라보는 세계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오직 사고할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테드 창은 작품 곳곳에 외삽법으로 치밀하게 구성한 다양한 장치들을 심어 놓았다. 하나하나가 하나의 단편 또는 장편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발상들이 숨어 있다. 이를 다시 되짚는 것도 인상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가령, 인류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잭스가 이식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 쥐 업로드 실험이다.


 “쥐 비디오 봤어?”
 애나는 잭스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업로드 연구 팀이 최근 공개한 동영상 얘기였다. 흰쥐 한 마리가 급속 냉동된 다음, 데이터를 스캐닝하는 전자 빔에 의해 일 마이크로미터씩 기화되며 한 줄기 연기로 변한다. 스캐닝된 흰쥐는 테스트 화경花梗 내부에서 생성되어 가상적으로 해동된 다음 각성한다. 그 즉시 쥐는 발작을 일으키고 주관 시간으로 이 분쯤 불쌍하게 경련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업로드된 포유류의 생존 시간으로는 현재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너한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애나는 장담했다.
 “내가 그거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잭스가 말했다. “기억하는 건 전이가 성공했을 때만.”(130~131)


 살아있는 쥐를 급속 냉동해서 물리적인 데이터를 전자 빔으로 스캐닝 한 뒤에 가상현실에 업로드하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짧게 서술된다.(SF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순간이동 기술이나, 복제, 백업 등도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환상적인 이미지로도 그려지며 인상에 깊게 남는다) 이 연구와 기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도 말이다. 이 세계에서는 먼 미래에 모든 인류가 업로드 되어 디지언트와 함께 가상현실에서 무한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일종의 특이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전이에 관한 두려움과 테스트스위트에 대한 언급이 주된 관심사이며, 디지언트의 인식과 기억과 실재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면서 현실성 있게 드러내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다양한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지부터,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바뀌어나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이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테드 창이 구현한 세계 속 디지언트 역시 인간과 우주를 이해해 나갈 것이다. 그들의 사고와 이해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추리하게 된다. 사고의 전이. 책을 덮고 나서도 여러 화두가 머릿속을 떠돈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생애 주기란,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인류의 생애와 같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인간이 없어지고 혹은 인류는 디지언트와 통합된 머나먼 미래. 우주가 차갑게 식어버린 시대에 잭스가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애나를 그리워할까. 어떤 사고 시스템을 갖췄을까.


 “누적 실행 시간이 대부분의 행성 수명보다 더 긴 디지언트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으니까요.”(174쪽, OS를 행성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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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M-B 1 - 시체들의 학교 대런 섄의 신화를 잇는 오싹한 상상력의 New 호러 시리즈
대런 섄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좀비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소수만 보던 장르였던 좀비물은 어느새 『워킹 데드』 (The Walking Dead, 2010)같은 드라마와 『웜바디스』(Warm Bodies, 2013), 『월드워Z』(World War Z, 2013) 같은 좀비 영화가 국내에서도 흥행을 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워킹 데드』(로버트 커크먼 지음, 토니 무어 그림, 황금가지, 2011년 7월)의 원작 그래픽노블이 소개되었고, 『월드워Z』의 원작 소설 『세계대전Z』(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08년 6월)는 2008년 출간되어 올해 영화 개봉 후 누적 판매 10만부를 기록했다.(역시 이전에 영화가 개봉한 『나는 전설이다』 역시 10만부가 넘게 팔렸음은 물론이다.)
 이 외에도 『나는 전설이다』(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 2005년 6월), 『셀』(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6년 11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1년 10월), 『세계대전Z 외전』(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2년 11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제인 오스틴,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해냄, 2009년 8월),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1, 2』(J.L 본, 황금가지, 2009, 11월), 『종말일기Z』(마넬 로우레이로, 황금가지, 2013년 5월) 등이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국내에서는 김중혁 작가가 창비에서 『좀비들』(김중혁, 창비, 2010년 9월)이라는 책을 출간했었고, 정명섭의 한국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제너레이션』(정명섭, 네오픽션, 2013년 5월), 구현의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구현, 휴먼앤북스, 2009년 1월)을 비롯해 라이트노벨, 웹툰에서도 좀비물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을 개최하여 『섬, 그리고 좀비』(황희 외, 황금가지, 2010년 6월),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황태환, 황금가지, 2012년 8월) 등의 수상집과 이 중 장편으로 발전시킨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백상준, 황금가지, 2013년 4월)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또한 1회 수상작 중 하나인 황희 작가의 「잿빛 도시를 걷다」는 MBC에서 《나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좀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렇듯 국내에서 좀비물은 인지도를 넓히며 여러 매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학수첩에서 『해리포터』(조앤 K. 롤링, 문학수첩, 1999년 11월)의 작가 조앤 롤링이 격찬한 작가로 국내에 소개된 대런 섄 작가의 신작 좀비물을 출간했다. 일단 책의 외형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시중에 진열되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뺏을 만한 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직 좀비 독자들에게만 시선을 끌 수 있게 좀비가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 좀비 소설을 안 읽던 독자라도 처음 입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괜찮은 책이다. 책을 받아보고 인상적인 것은 무게가 가벼운 종이를 쓴 탓인지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드는 감촉이 참 마음에 든다.(한편, 가격 역시 저렴하고 좋은데, 요즘 웬만하면 만 몇 천원이 기본이 된 상황에서 9,000원의 가격이라 사기에 큰 부담이 없다.)
 『ZOM-B』(대런 섄, 문학수첩리틀북스, 2013년 7월)는 이미 국내에 소개된 여러 좀비물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패턴의 좀비물이라는 걱정 없이 신선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뒤편에 “올해 최고의 YA소설!”이라는 추천사처럼 굳이 이 소설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영 어덜트 좀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영 어덜트는 미국 십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르로 국내로 보자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ZOM-B』를 청소년만 읽어야 하는 장르소설로 제한하기에는 이 작품의 매력이 아깝다고 할 수 있다. 십대뿐만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재미있는 좀비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재미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일단 책을 펼치면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는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전개가 빠르고 문장이 잘 읽힌다. 흡인력이 뛰어나고 특히 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다. 좀비 소설이든, 장르소설이든 소설을 읽게 만드는 흡인력은 바로 문체와 캐릭터에서 갈린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이입할 만큼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등장하고,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읽히며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으면 놀라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되어 최고의 흡인력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얼마든지 킬링타임으로 오락적인 장르소설을 찾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 마치 전염병처럼, 혹은 메뚜기 떼처럼 펠라스켄리 마을을 휩쓴 것은 가장 깊고 어두운 한밤중이었다. 잠을 자다가 머리가 부서져 골을 파먹힌 채 죽은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운명과 마주해야 했으니.(9쪽)


 제1권 「시체들의 학교」 편은 첫 장면부터 영화 5분의 법칙처럼 속도감 있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몇 장의 프롤로그만으로 독자에게 기대감과 강렬한 충격을 주며 다음 장을 얼른 읽게 만드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한 마을이 좀비로 뒤덮이는 광란을 한 소년의 눈으로 선보이면서 독자를 소설 속 세계를 초대한다. 그 뒤에 제1장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인종차별주의자 아버지를 둔 비행 청소년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가 아빠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나는 일찍부터 아빠의 말에 반기를 들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래서 아빠가 무슨 말을 하건 그냥 잠자코 듣는다. 더러는 인종 차별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책자를 읽기도 한다. 아빠의 유치한 농담에는 웃음을 터뜨려야 한다. 심지어는 아빠를 따라 성난 백인들이 한 방 가득 모여서 잔혹한 살인을 거론하는 회의에 몇 번 참석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부터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인지를 헛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44쪽)


 흥미롭게도 주인공은 정의감에 넘치기 보다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그 말에 따르고,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도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불량 학생이다. 이 갈등은 1권의 핵심 소재이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고, 2권 「악몽의 지하탈출」에서도 이 고민과 주제는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소재와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작가의 영리한 전략이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일러, 나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 좀 해줘. 너랑 나는 좋은 친구 사이고, 그저 농담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잖아.”
 “얘는 끌어들이지 마.” 낸시가 말한다. “시비를 걸고 싶으면 나한테 걸란 말이야.”
 나는 굳은 미소를 짓는다. “좋아.” 나는 한 발 더 다가서서 낸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까치발을 해야 했지만, “흑인 이야기를 한 거 맞아.” 이렇게 나가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만약 낸시가 정말로 나를 인종 차별 혐의로 신고할 생각이라면 어차피 빠져나갈 구석은 없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하거나 아니면 진짜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사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특히 이런 여자애한테는.
 낸시가 나를 와락 밀치며 소리친다. “넌 쓰레기야.”(88쪽)


 학교에서 저학년의 음식을 빼앗거나 약한 애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등 전형적인 문제아의 행태를 보이는데, 이때 친구들의 묘사라든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절묘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묘사가 과하지 않고 서술 위주의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장면들이 생생하게 연상되고, 인물들이 다 있을 법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대사도 위트가 있고, 요즘 영국의 청소년이 연상되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드라마를 다운 보고 인터넷을 하다가 잠드는 요즘 시대의 생생한 묘사도 공감대 형성이 좋았고, 좀비가 등장하는 부분의 긴박감도 뛰어나다.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당돌함과 솔직한 내면 묘사가 묘한 매력을 형성한다.
 소설은 인터넷에서는 좀비 동영상들이 퍼지고, 뉴스에서도 야간 통행 제한이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방영하는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수 촬영이라고 믿고 좀비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좀비에 대한 토론이 잠시 벌어져도 마땅한 근거가 나오지 않을 만큼, 우리가 생각해도 좀비가 실재 한다면 그에 대한 그럴 듯한 과학적 근거를 덧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상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평소에 비슷하게 지낸다. 그러면서 소설은 절반이 넘도록 주인공의 생활과 친구들의 묘사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또한 프롤로그에서 독자는 이미 이 소설에서 좀비들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 주인공의 기괴한 아기가 나오는 악몽 때문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공기 중에 퍼지는 것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의 대화에서도, 조금씩 페이지가 넘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언제 좀비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성된다.
 마침내 주인공이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에서 드디어 좀비들이 학교에 해일처럼 밀려오고,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고 대화했던 친구들을 하나씩 잃어가면서 폐쇄된 학교 안을 질주하며 필사의 탈출을 벌이게 된다.
 1권은 특히 인종차별을 주도하는 아버지와 그 자식의 내면 갈등이 좀비보다도 더 핵심 갈등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그럼에도 소설의 재미는 뛰어나며 좀비물로써의 재미도 전혀 놓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좀비라는 소재를 인종차별적인 문제와 더불어 몇 개의 층으로 교묘하게 짜놓은 듯한 솜씨가 인상적이며 이에 좀비에 대해 여러 은유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장르소설 만이 할 수 있는 추상적인 관념을 실재적인 것으로 치환해서 드러내고 상징화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주제는 1권보다 2권에서 더욱 세세하게 다뤄진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화이트보드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염두에 두도록. 세상에는 더럽고 사악한 영혼을 가진 개자식들이 엄청 많다.” 선생님 입에서 평소에는 좀처럼 듣지 못한 과격한 표현이 나오자, 나직이 탄성을 내뱉는 아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늘 그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너희들 자신이 바로 그 더럽고 사악한 영혼을 가진 자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는 점이야. 따라서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단다.”(81쪽)


 작품 자체의 구성이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매 장이 짧게 끊어지면서 이어지는 소설인데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가독성만 높이고 있다. 번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매끄러워서 술술 읽힌다. 요즘 젊은 세대의 내면 묘사나 행동 묘사가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특히 십대나 이십대가 읽으면 공감할 부분도 많아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과연 영 어덜트 좀비 소설로써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볍지만 빠르고 재미있으면서도 작품의 완성도까지 높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복선들이 1권에서 여러 개가 제시되고, 이는 2권을 읽어서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으며 다음 권을 기다리게 된다. 결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자극적인 좀비 소재와의 단순한 결합으로 쓰인 글이 아니라, 치밀하게 암시와 복선이 깔린 구성이 뒷이야기를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프롤로그 남자의 정체는? 돌연변이 괴물의 정체는?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꾸는 악몽의 정체는?) 특히 놀라운 것은 1권을 다 읽는 순간, 절로 “악!” 소리를 내지르게 만드는 극적인 전개를 선보이며 당장 2권을 집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이런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는 결코 책날개의 문구조차도 읽지 않고 그저 본문만 읽기를 추천한다.)
 2권 역시 1권과 비슷한 정도로 흥미와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읽는 내내 새로운 의문들과 상황들이 놀라움을 선사하며, 어떻게 보면 1권보다 더 새롭고 본격적인 좀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2권 역시 1권처럼 후반부에 정신없이 독자를 밀어붙인다. 이 아치는 능력이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를 선사하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3권을 외치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당신이 좀비를 좋아한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좀비 소설이 당도했으니.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는 좀비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복도를 내달린다.
 어느 교실 앞을 지나치는 순간, 린저가 열린 교실 문 안으로 뛰어든다. “난 여기 숨을게!”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우리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메드스가 속도를 늦추자, 스태거 리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그냥 나둬!”(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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