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 이 리뷰를 읽을 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90년대 장르 소설의 상징이자, 하나의 문화였던 [퇴마록]의 외전이 20년이 지나 출간되었다. [퇴마록]은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었고, 특별한 마케팅이 없이도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열광적으로 읽은 책이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하나의 현상이었다. [퇴마록]은 단순히 베스트셀러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신드롬이자 문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높았냐면 사람을 만나서 할 말이 없을 때, [퇴마록]을 읽었는지 물어보고 그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이제야 출판사를 옮겨 1,000만부가 팔린 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새로 나온 소장판을 합치지 않더라도 더 팔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퇴마록] 말세편 6권 출간 당시 2001년 누적 판매량이 970만부였으며, 완간 이후 지속된 판매량을 예상하면 상당한 수치일 것으로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퇴마록]은 엘릭시르(문학동네) 출판사로 옮겨 소장판이 출간되었고, 여러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문열의 [삼국지](이문열·나관중, 민음사, 1988년 5월)가 순수 창작물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조정래, 한길사, 1986년 10월)과 함께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한 시리즈다. 이렇듯 판매량만 놓고 봤을 때 [퇴마록]은 한국 장르소설계에 깨지지 않을 전설이다.
[퇴마록]은 PC통신에 연재되었던 작품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로 대표적이며,(93년 하이텔 공포/SF(summer)란에 연재) 작품 속에는 90년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삽입되어 있다. 거대담론과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한국 문학계와 달리 귀신, 기공, 투시, 염력, 도교, 불교, 밀교, 기독교, 신화, 전설, 무속 등 온갖 판타지·오컬트 소재를 혼합하여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다.(초기 국내편의 경우 이 소설의 장르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반해 2000년대 이후에 출간된 말세편에서는 판타지 소설로 말할 만큼, 시대를 앞서나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퇴마록]의 영향력은 15~24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나선 영화가 1998년 8월 15일에 개봉했으며 그 당시개봉 이후 1주일 만에 전국적으로 6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서울관객 45만, 전국 관객 150만) 한국영화 사상 최단기간의 흥행기록을 세운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① 영화가 원작(소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고, ② 평이 최악일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③ 청소년 관람불가였는데도 불구하고 100만을 넘었다는 소리다.(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 기록) 그 당시 [퇴마록]의 핵심 팬들이 십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람 연령을 낮추고 완성도를 높였으면 [쉬리] 이전에 진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퇴마록]은 고루한 소설의 인식을 깨트린 90년대의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으며,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지금보아도 매력적으로 그려졌으며, 한국 장르소설 역사를 봐도 20년 동안 팬덤이 유지될 정도로 강력한 개성과 생동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또한, 따로 해설집이 발간될 정도로 방대한 조사량의 [퇴마록]의 정체성 중 하나인데, 이는 작품의 매력이며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퇴마록]의 매력 요소로는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관념에 부합한 면도 있다. 그리고 장르적 감성에 직격하는 다양한 기공과 주술은 당시 십대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퇴마록]은 지금의 판타지, 무협, 라이트노벨이 하고 있는 오락적 성격이 강한 청소년 소설의 역할을 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없듯이, 습작 경험이 없는 작가가 PC통신에 충동적으로 연재한 처녀작이었기 때문에 문장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지나친 국수주의나 역사관 등이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책 뒤에(혼세편 6권) 직접 그런 비판적 논지를 실어서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90년대 초반 장르소설의 대표 아이콘인 [퇴마록]은 2001년 작가가 초반부터 예정한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작가 의식이 드러나는데, 장르 소설 중에서 인기를 얻으면 중단하지 못하고 몇 십권씩 아직도 책을 출간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퇴마록]은 돈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가 계획한 대로 끝났다. 이는 조앤 롤랑의 [해리 포터]를 연상케 하는데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작가는 처음에 계획한 결말을 맺고 끝내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퇴마록 외전]의 경우도 당시부터 출간이 예고되어 있던 작품으로 갑자기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미 PC통신에서도 몇몇 외전은 짧게나마 연재가 되었고, 어린이 동아에도 준후가 학교를 가는 에피소드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즉, 다른 작품의 집필이나 작가의 슬럼프, 출판사를 변경하는 일들이 맞물리면서 공교롭게 20주년 기념으로 나오게 되었을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외전에서 말세편 이후의 이야기는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팬들이 오랜 기간 기다렸던 [퇴마록 외전]은 그럼 어떤 모습일까. 일단 외전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은 본편에 수록되지 못한 이야기이다. 즉, 본편의 성격과 다르며 이야기도 가볍기 짝이 없다. 보편에서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펼쳐지고, 씁쓸한 감정이나 감동을 주었던 것에 반해 외전은 주인공들의 숨겨진 일상을 팬서비스 성격으로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대상 독자층은 이미 [퇴마록] 전권을 읽은 사람이며, 주인공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은 팬인 것이다. 이점을 간과한다면 제대로 독자층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의 성격 역시도 알지 못한 채 읽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왔어야 했다는 평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부 사정 때문에 차치하고라도 외전의 특성상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평이나, 이야기가 다소 김이 빠져서 약한 인상을 받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지하고 심각하며 구성이 치밀한 작품들이었다면 이미 본편에 수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들은 [퇴마록]이 옴니버스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외전을 정의하자면 늦게 도착한 추억의 편지다. 이미 90년대 퇴마록과 함께 자라온 세대에게는 [퇴마록]은 자신의 90년대이자 유년시절 추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여기, [퇴마록 외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90년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늦은 추억이 도착한 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 미처 읽지 못한 친구의 편지를 개봉하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면 90년대 [퇴마록] 독자들을 울고 웃게 했던 인물들이 약간은 낯선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서로 어색한 것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만든다는 점에서 외전은 의의를 지닌다.
 [퇴마록]의 매력은 그 뛰어난 캐릭터성과 온갖 초자연적인 소재뿐만 아니라 탄탄한 구성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열렬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장르적인 소재를 사용해도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지만, [퇴마록]은 계속 사건을 발생시키고,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추리적 구조를 취했기 때문에 페이지 터너(Page-Turner,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이다.
 외전에서는 그러한 추리적 요소는 확실히 약하며, 항상 비장하고 참혹하기까지 했던 전투 역시 없는 편이다. 따라서 본편에서 느낀 매력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캐릭터들의 일상이다. 비일상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닌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게 외전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인 것이다. 여기에는 본편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의 허술한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국내편 「하늘이 불타던 날」 직후의 에피소드를 담은 단편이다. 바로 세 명의 퇴마사가 처음 만나는 역사적인 첫 에피소드의 직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에 합류한 승희는 여기에 등장하지 않고, 세 남자가 어떻게 뭉치게 되었는지 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은 결코 화려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궁상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안면이 없던 세 남자가 갑자기 모여 살게 되었는데, 서로 성향도 살아온 이력도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른데 금세 화합이 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본편에서는 알 수 없었던 준후의 적응기를 볼 수 있다. 본편만 봤을 때는 금세 세상에 익숙해진 아이로 알았지만, 사실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 단편에서 드러난 디테일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서 그 뒤에 준후가 겪었을 어려움도 독자는 이제 더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능해졌다. 또한, 세 사람이 서로를 놀랍게 본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보편에서는 익숙해진 모습만 봤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의 능력에 감탄하고 놀라는 부분은 민망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현암이 벽을 부수고 그것을 다시 메꾸는 것을 내면의 구멍의 은유로 보여주는 것도 단순하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초였다. 또한, 결국 이들이 관계의 진전을 보이며 끝맺음을 했을 때, 이미 19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결국 이들이 어떤 과정을 겪을지 알기 때문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


 바로 앞 에피소드의 며칠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는 주로 대화를 통해서 세 사람이 소개를 하는 일종의 인트로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의 첫 퇴마행을 다룬다. 전설적인 퇴마사들의 첫 퇴마행이라니. 설명만으로는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엄청 기대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외전답게 본편과 달리 엉망진창인 퇴마행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잘 하는 경우는 없고, 모든 퇴마행이 화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편에 들어갈 수 없었던 수 천의 퇴마행들은 대부분 이토록 사소해보이면서 혹은 중요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에피소드이자, 현실의 사회문제까지 내포한 의미심장한 단편이었다. 본편에서도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와(「아무도 없는 밤」 네트워크를 타고 원령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깃든 에피소드(「아라크노이드」) 등에서 네트워크와 주술적인 요소를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는데, 이번 단편 역시 마찬가지다. 단말기로 PC통신을 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박신부만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준후와 현암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미세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건 과연 무엇일까? 퇴마사들은 고생 끝에 그 정체가 원귀가 아닌 악의, 증오심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여기서 작은 힘으로 소멸시켜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고립된 인간의 마음을 좀 먹는 존재이며,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외전 전체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사건으로 묘사하지만, 지금의 인터넷에 만연한 문제들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퇴마록]에서는 낙태아들이 모인 원귀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능력자들도 모조리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는 식으로 초자연적인 현상과 사회적 문제점들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람들을 자살로 모는 악플들이 만연한 지금은, 이 세 명의 퇴마사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뒤덮은 악의의 화신이 되었다. 현암이 과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준후의 학교 기행」


 오래 전 사설 BBS 혁넷에 연재하기도 한 작품으로 그때와는 설정이 바뀐 채 나왔다. 준후가 처음 학교를 가게 되는 이야기는 외전에 수록될 대표적인 에피소드였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본편에서도 짧게 준후가 학교를 갔었지만 문제가 생겼고 금방 나와야 했다는 것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속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준후의 모습은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준후의 앳된 모습은 준후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야기는 현암의 조언으로 점입가경으로 빠지는 준후의 학교 생활을 보여주며 잔잔한 웃음을 준다. 동시에 준후는 학교에서 어린 영을 보게 되고 그 영을 위한 진언을 외운다. 준후의 행동은 학교에서 용납되지 않을 일들 뿐이었고, 무리에서 이탈하는 일이었다. 그건 퇴마행이 결국 사회에 편입되기 힘든 비일상이라는 소리며,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준후가 학교에 적응 못하는 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준후가 자신이 퇴마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현암 역시 준후의 모습을 보며 아무 이득도 없고 어둠 속에서 이름 없는 영을 도와야만 하는 일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라는 깨닫는다.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외면하고 무사히 학교 생활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후는 그러지 않는다. 이미 퇴마사이기 때문에.


「짐 들어 주는 일」


 [퇴마록] 세계편 초반, 승희가 막 합류한 더운 여름날의 에피소드다. 드디어 외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희가 등장하는 외전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가장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승희가 현암에게 마음이 있어서 같이 쇼핑을 가는 게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벼운 외전답게 둘의 소박한 첫 데이트를 그리고 있다. 초반에는 쇼핑에서 여자들이 장시간 활기 넘치게 하고 남자들은 지루해 죽는다는 속설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속설을 이용해서 승희와 현암의 모습을 그리는 게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약간은 뻔해서 아쉬웠다. 후반부에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승희가 보답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하고, 불량배들과 일부러 트러블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여기서 승희는 자신을 보호해서 현암이 멋지게 싸울 것을 기대했지만, 현암은 목석처럼 맞기만 한다. 현암은 함부로 공력을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승희는 자기 생각은 안 하냐며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때, 현암의 속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미 승희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 척하기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현암의 마음은 말세편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절절히 숨기고 키워나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서 애틋해진다. 그리고 제목이 단순히 쇼핑 본 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승희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자는 이들의 이후 미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야기였다.


「생령 살인」


 네 명의 주인공 다음으로 처음으로 조연의 에피소드를 다룬 단편이다. 바로, 퇴마사 일행만큼이나 인기 있는 주기 선생(박상준)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다. 퇴마사들이 세계편에서 {왕은 아발론에 잠들고} 편에 해당하는 영국으로 출국했을 무렵, 검사 백호는 할 수 없이 주기 선생에게 초자연적인 사건을 의뢰한다. 주기 선생의 팬이라면 정말 즐겁게 읽을 만한 단독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외전이라면 역시 이렇게 조연들이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이 다 목격한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목격되어 무죄로 판정난다. 그러나 이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한 살인이기 때문에 주기 선생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주기 선생은 교주가 생령을 통해 살인을 했다고 추리한다. 이 단편은 주기 선생이 현암을 계속 의식하는 점이나, 기부를 하는 점이나, 양과 늑대에 대한 생각 등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본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심리묘사가 자세하게 되기 때문에 내면을 더 들여다보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인물에 대해서 더 뚜렷하게 알 수 있었고, 앞의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인간미가 입체적인 모습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외전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단편이었고, 작가도 즐겁게 써내려간 느낌이 났다. 흥미롭게도 말세편의 현암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황금의 발」과 거울의 상처럼 쌍을 이루는 단편인데, 여기서 현암과 주기 선생의 차이가 드러난다.


회상을 마치며


 그야말로 전설이자 신화인 [퇴마록]의 외전은 일단 다시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인물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살아나 움직이고 들어보지 못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신기했고,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물론 그 [퇴마록]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도 분명 크게 다가왔다. [퇴마록] 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흡입력과 긴장감이 최고인 장르소설 아니던가. 외전에서는 힘이 빠졌기 때문에 추억을 음미하면서 읽을 뿐, 손에 땀이 난다든가, 뒤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표현대로 국민학교를 사용하지만 ‘몸’, ‘반려동물’ 같이 그때 잘 안 쓰인 용어들의 등장은 어색했고, 대화들도 지나치게 평이하고 친절해서 전체적으로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서먹서먹한 관계이고 초반이라지만 일상에서의 대화들은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본편에서 주로 비장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어색한 연기를 하듯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보여주자, 낯 뜨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나왔는데 외전의 편수도 아쉬웠다. 주기 선생을 제외하고 다른 조연들은 등장조차 못하다니. 출판사의 말세편 소장판 보도자료에서도 ‘일제 강점 시절 무련(현정)의 추적담’ 같은 작품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빠졌고, 그 외에도 다른 조연들도 충분히 외전의 에피소드로 나올만한데 분량의 문제인지 계획이 없는지 안 나와서 아쉬운 감이 있다. 이후 외전이 한 권 더 나온다고 하니 이런 아쉬움들이 해소될만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물론 이 책만으로도 20년의 세월 동안 [퇴마록]을 잊지 않고 그 인물들을 가슴 한켠에 새겨놓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간이 지나도 독자들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퇴마사들은 유년 시절을 함께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허구 속의 존재이면서도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영원히 기억 속에 살아간다는 것. 이야기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고, 추억을 갖게 만든다. 허구의 모험과 삶 그리고 친구를 선물한다. 삶에서 이야기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외전을 통해 이들의 일상을 엿본 덕분에 독자는 이제 이들의 비일상 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상상할 동력을 얻었다. 퇴마사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악령을 없애지만 한편으로는 궁상맞은 모습도 보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읽었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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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로봇 크로스로드 SF컬렉션 5
고장원 외 지음 / 사이언티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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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이 리뷰를 읽을 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웹진 크로스로드에 게재되었던 SF를 묶은 창작 SF 단편집 [연애 소설 읽는 로봇]. 국내에서 창작 SF 단편집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인 해외 SF소설도 많이 팔리지 않는 시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창작 SF 단편집이 팔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크로스로드에서 나오는 SF 단편집이 몇 번이나 출판사를 바꿨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진 크로스로드는 한국 작가들의 창작 SF를 높은 원고료를 주며 게재하고 이를 매번 책으로 묶어서 내고 있다. 웹진 크로스로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5권의 한국 작가의 창작 SF를 꾸준히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웹진 크로스로드에서 SF 단편집이 나오면 반드시 사서 리뷰를 쓰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누구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빼놓지 않고 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웹진 크로스로드의 단편집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개별 작품의 리뷰를 들어가도록 하겠다.






「메다스」 / 김몽


 SF 장르에 '좀비'를 결합한 소설이다. 쎄른(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에서 생겨난 웜홀을 통해 미세한 바이러스 형태의 우주 생명체가 우리 우주로 흘러들어왔다는 설정. 좀비라는 표현 보다는 이상식용증후군을 줄여서 '메다스'(MEDHAS)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며 표제에도 쓰고 있다. 이는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보이지만 큰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약간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느낌을 받는다. SF 장르 안에서 좀비를 다루기 위해서 요즘 화제인 거대강입자충돌기를 끌여와서 아이디어로만 쓰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인물들은 단조로우며 인물 관계는 도식적이고 평범하며 관계에서 오는 재미가 없다. 세계는 점점 메다스에 전염되어 멸망을 향해 치닫고 연구원인 주인공은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진부하게도 이야기는 치료약을 완성하나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고 끝난다. 뒷부분의 메다스가 발발한 주인공의 의식으로 서술된 부분은 많이 본 형태라 클리셰처럼 느껴지고 사족으로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차라리 없는 게 깔끔하지 않았을까.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 용어 등에 신경을 쓴 점이 눈에 띈다. 그에 반해 플롯이 일반적인 좀비물과 너무 흡사해서 이야기의 매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SF의 측면에서는 버키볼을 이용한 치료제를 만드는 과정이 집중적으로 그려지면서 리얼리티를 살리고 흥미로우나 지나치게 설명적으로만 처리된 듯하다. 메다스의 원인을 찾는 과정은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뜬금없이 평이하게 처리된 것도 아쉬웠다. 소설의 핵심을 바이러스의 근원과 해결책으로 잡았다면, 전개도 달라지고 소설도 새로운 매력을 창출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연애소설 읽는 로봇」 / 이재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로봇이 어느 날 이상 행동을 한다. 이에 조사관인 주인공이 파견된다. 이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대출순환업무 순번을 그냥 바꿨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 SF에서 등장하는 로봇이 그런 행동을 보일 경우 이상한 일이 된다. 인간에게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정밀한 사고 처리 체계를 가진 로봇이라면 그럴 수 없다. 조사관은 바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로봇을 점검하고 주변 상황을 살핀다.
 로봇은 20대에 눈에 띄는 여성 외모를 가졌고, 윤지수라는 이름을 지녔다. 문고판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으며 성실하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그려진다. 조사관은 과거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는 남자로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현재는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 두 주요 인물은 소설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인물 조형이 상당히 잘 되어 있으나 상대적으로 이야기는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간다. 로봇이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동성인 인희 씨와의 이별 때문이라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는 사건이다. 따라서 소설 전체의 핵심 서사가 독자를 깊이 끌어들이지 못한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서사를 즐거워하지 못 하는 법이다.
 안정적인 문장으로 세계관을 그리고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개하고 있는 점은 이 소설의 장점이다. 긴 분량임에도 크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없었다. 또한, 주인공이 어떻게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지가 서브플롯으로 전개되면서 긴장감을 부여한다. 로봇이 주인공의 연애 서사를 궁금해 하듯이, 독자 역시 주인공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밝혀지지 않는데, 인희가 로봇과 헤어진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초반에 나온 '그냥'의 문제와도 같다. 인간에게는 해명될 수 없는 감정적인 행동이 존재한다. 엄밀히 따지면 복잡한 이유 속에 그 행동의 근거가 밝혀질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누구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누군가와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해명될 수 없듯이, 헤어지는 이유 또한 헤어질 수 없으며 이런 일은 인간의 존재가 내포하고 있는 필연적인 것이다. 단순히 감정의 문제로만 치환될 수 없으며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 세계가 불가해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암흑물질이나 암흑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을 알지만, 그 정체나 근원에 대해서 해명할 수 없듯이 세상은 불가사의로 둘러쌓여 있다. 조사관은 로봇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속성이 또한 그런 불가해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순히 이번 일을 술 취해 필름이 끊기듯 지워버려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반복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긴 생애를 살아갈 로봇에게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로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로봇이 가지고 있는 이공 인격, 인공지능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아무리 수 천 권의 문고판 로맨스를 읽는다고 해도 세계나, 인간, 연애,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책은 만능이 아니며, 삶은 책 속의 텍스트와 같지 않다. 따라서 조사관은 로봇이 진짜 세계를 감내하기 위해서 실패한 기억 역시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가리비를 태우는 실수를 한다고 해서 지워버리고 넘어갈 수 없듯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기억이 누적되어야 하며, 이해못할 것들을 이해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보다 오래 사는 존재는 때로는 인간의 감시자의 위치에 오른다. 드래곤라자에서 아무르타트가 그랬고, 피를 마시는 새에서 치천제가 그랬듯이. 이 소설에서는 로봇은 인류의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인간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끝을 목격하는 역할을 맞게 된 로봇에게 필요한 것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서의 행위와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로봇의 직업이 사서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로봇은 인간이라는 책들을 관리하는 사서로써 모든 인간의 책(데이터)이 된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다. 그때의 로봇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할 지라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로봇일 것이다.


「경계」 / 황태환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초능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꿈의 여행자'라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꿈을 꾸는 동안 다른 생명체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장자의 호접몽을 초능력으로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꿈의 경계에서 한 노인을 만나고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납치범에게 납치된 여아의 의식 속에 접속을 하게 되고, 그 여아를 구하기 위해서 능력을 활용하는데, 납치범 또한 다른 특수한 능력자였다는 게 밝혀진다. 결국 능력자들끼리의 진득한 대결이 펼쳐지고 결말까지 치닫는 작품이다. 초반에 모기 같은 생명체에 의식이 깃드는 것은 아주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몰입감이 있었다. 만약, 인간이 아니라 모기로 태어난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가끔 하게 되기 때문일까. 꿈을 꾸는 동안만 다른 생명체에 의식에 깃들 수 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매력적이다. 종이 곤충이나 벌레가 아니라 인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이야기의 가능성은 급격히 넓어진다. 듀나의 단편 {꼭두각시들}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같은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서사들이 떠오르면서 이 단편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풍성한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식적이고 뻔한 방식으로 수렴하는 듯해서 아쉬웠다. 일반적인 능력자 배틀물 식으로 다른 능력자를 등장시켜서 갈등을 생성하는데, 이는 독자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김을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대결 또한 그렇게 새롭거나 흥미롭지 않았다. 긴장감도 적었고 특별히 한쪽을 응원하는 마음이 별로 들지 않은 것이다. 초반부터 능력자들의 대결을 또한 극한까지 밀어붙인 테드 창의 {이해} 같은 느낌보다는, 소년만화에서 뻔하게 누가 능력을 제시하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능력을 사용해서 이기는 단조로운 구성이라고 할까.
 한 마디로 이후 전개는 더욱 진부하게 흘러가서 아쉬웠다. 마주친 납치범이 하필 또 다른 능력자라는 점에서 기시감이 느껴졌고, 이들의 대결은 평범했다. 또한, 조력자의 역할을 맡은 노인이 너무 편리하게 설명해주고 도움을 주기 때문에 NPC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색하고 구성에서 겉도는 느낌이었다. 분량에 한계 때문에 생동감을 줄 수 없고, 도구처럼 쓸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과감하게 제외하는 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전개에서 조금 비틀거나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소재를 더 활용하지 않고 단순한 능력자물이 된 것 같았다.


「장군은 울지 않는다」 / 백상준


 초반에 특이한 쌍둥이 형제를 보여주면서 미스터리를 불러일으키는 형식을 취한다. 이때는 긴장감이 조성되고 궁금증 때문에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이 소설이 그리 진지하거나 과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코믹 SF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가 첫째에게 증오심을 보이고 괴롭히는 장면들은 싸이코패스를 다룬 소설처럼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으나,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긴장감은 완전히 해소되고 하나의 콩트처럼 읽히게 만든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계속 웃음을 유발하는 B급 설정들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들이 모두 외계 행성에서 지구 정복을 목표로 파견된 전사들이나, 바보같이 어리석은 명령으로 인해 전사들이 태아의 상태로 전송되어 상당수를 잃고 나머지도 연약한 인간 아이의 육체로 살아왔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동지들이 재회하는 방식도 영재 학교 인터뷰를 보는 방식이라는 것도, 애들이 담배 피다가 걸려서 혼나는 장면도 전부 계산된 유머들인데 크게 웃기지는 않았다. 마지막 반전마저도 어이없는 실소만 터트리게 되는 작품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인간 몸에 외계인들이 침입하는 설정이 신선하거나 새롭지는 않으며, 오히려 진부한 면이 있고, 이를 코믹하게 푸는 것도 그렇게 성공적이진 않은 듯이 느껴졌다.


「왕의 노래」 / 고장원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할 경우에는 흔히 역사적 고증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의 경우도 시간이동이 가능해지자 역사학계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실제로 과거로 이동이 가능해질 경우, 아무리 비용이 적고 나라에서 지원을 한다고 해도 역사학계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보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근본적으로 이 소설의 설정이 납득이 가기 힘들었다. 카메라를 갖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시간 화가를 데려간다는 설정 역시 어색하지만, 이 소설의 중요 설정 중 하나이므로 넘어갈 수 있다. 소설은 처음 몇 가지의 기본 설정이나, 몇 가지 우연은 독자가 충분히 납득한다. 그러나 도를 넘는 황당무계한 설정이나, 우연의 연속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소설의 완성도와 격을 한없이 떨어트린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역사적 고증에만 신경 쓰고 이를 시간여행으로 담기 위해 설정들을 짜 맞췄을 뿐, 근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나 독자에게 전달되는 이야기의 개연성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느낌이었다. 따라서 몇몇 흥미로운 설정과 발상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개연성 엉망이라서 모든 것을 망쳐버린 느낌을 받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소설의 내적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다. 분량이 상당히 많고, 구조도 복잡한 편이지만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낮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읽으면서 자꾸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시간여행을 역사학계에서 그냥 발굴사업처럼 쓴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다. 이 시간여행 기술은 소설 내에서만 봐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술이고 이렇게 장난처럼 쓰일 게 아닌데, 유원지 가는 것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피크닉을 가듯 시간화가들이 대부분 틈틈이 물건을 빼돌려 땅에 묻고 미래에서 찾는 설정도 황당한 느낌을 받게 했다. 시간여행이 가져올 가능성과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두 명씩 보내서 역사 확인이나 하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안전책도 형편없다. 소설 내에서만 보면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그냥 기적이다. 미리 가서 당시 물건을 묻어둘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해 복잡한 안전 거주지와 기본 물품들을 마련하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지만, 소설의 전개 편의성을 위해서 그런 가능성은 검토도 하지 않고 반박하지도 않은 채 빼놓고 진행한 느낌이다. 가장 걸렸던 점은 탕즈이 박사가 유리왕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막가는 설정이라니. 여기서 어이없음을 느끼는 것이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두 번이나 고구려 유리왕대로 떠나게 되어 탕즈이 박사는 두 번 다 유리왕이 사랑하는 여인이 되고, 마지막에는 아이까지 임신하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지만 이렇게 대충 두 사람은 사랑했고, 임신했고, 시간 여행으로 돌아오면서 임산한 아이는 유산되고 이런 식으로 헐거운 설정들의 나열인 것 같아서 공감이 되지도 않고 납득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글자를 읽는 느낌이지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기발한 발상에 감탄하거나, 흥미로운 서사에 빠져들지 못했다. 이 시간 여행의 음모인 다국적 게임의 역사 게임도 의아했다. 고구려 시조 추모왕의 옥새를 먼저 손에 넣는 쪽이 사업의 주도권을 갖는 방식이라니. 애들이 내기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유치한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게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역사학계에서 시간여행을 하지만 이렇게 빈번하게 피크닉 가듯이 묘사하지 않고, 안전방안도 없이 가게 그리지도 않고, 어이없는 배경 음모도 날려버리는 게 훨씬 깔끔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전체적으로 농담조차 되지 않는 설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리수의 남발 같았다. 유치함과 성의없음으로 이루어진 느낌이랄까. 조금이라도 독자가 납득이 가능하도록 더 개연성과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면 한국 역사와 시간여행을 결합한 근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시티 해븐」 / 엄정희


 어떤 장르든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완전히 새롭고 참신한 발상이나 설정은 만들어내기 힘들다. 이미 기존에 수많은 나라에 여러 작가들이 다 썼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웬만한 소설들은 다른 소설을 연상케하며 대부분의 소재들은 참신함을 잃고 진부함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 「시티 해븐」 역시 마찬가지로 초반부터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에너지 고갈로 황폐하된 지구의 모습도 수많은 소설이나 영상 매체에서 다루었고, 유일하게 불야성을 자랑하는 도시도 새롭지 않다. 전쟁고아들이 주인공인 소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설정들을 가지고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독자들에게 새로움과 신선함을 줄 수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일정한 완성도 높은 구조와 재미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도 새롭게 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도 새롭게 하는데 실패했다. 전쟁고아들이 가디언에 붙잡힌 단계까지는 진부한 편이지만 그럭저럭 뒤를 궁금하면서 읽을 수 있다. 핵심은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과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수용소에서 핵심적인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하고, 한편 SF답게 어떤 세계의 구조를 드러내는 소설이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 소설 역시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 세계의 구조를 드러낸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이미 SF를 읽는 독자들에게 너무나 진부하고도 식상한 결말을 사용했다. 끝이 좋으면 중반까지 흐트러진 전개가 있더라도 재미와 감동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힘이 빠지거나 독자를 실망시키는 안이한 결말에 이르면 독자는 기대한 만큼 더 실망하며 김이 새게 된다. 결말이 꿈이었거나, 가상현실이었다는 식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방식은 이제는 진부하기 짝이 없으며 열심히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은 독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무너트리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충분한 암시와 복선이 없다면 뜬금없는 결말처럼 느껴져서 구성이 엉망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독자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설은 서두와 마찬가지로 결말이 중요하고, 이를 얼마나 독자에게 와닿게 만드는지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아이들이 연합을 결성하고 또 탈출을 꿈꾸는 등의 서사는 흔하지만 특히 『종말 문학 걸작선1』에 실린 캐서린 웰스의 「이티의 천사들」이 떠오르는데, 전개 과정이나 캐릭터를 형성하는 방식, 결말까지 더 낫다. 「시티 해븐」이 안이한 결말, 독자가 반감을 느낄 결말이 아니라 좀더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갔다면, 다른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 보였다면, 독자적인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플레그매틱 프렌드」 / 송종욱


 600여 광년 떨어진 우주 행성의 이름이 '므잉와옹기엥'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며, 가볍고 우스꽝스러우며 현실성이 낮은 소설이다. 마치 [콘택트]처럼, 외계 기술을 전송받고 이를 토대로 기계를 만들어 외계인과의 접촉에 성공한다. 외계인은 점액질 해파리 형상을 했는데, 이들과의 접촉이나 대화도 허물없고 단순해서 실제로 예상되는 수많은 과학적·법적 절차를 고려하지 않고 생략해버리면서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만 단순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현실성을 현저하게 낮추면서 전개에만 신경쓰고 있는데, 전개 과정이나 결말까지 전부 독자의 예상 범위 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받는다. 복선과 반전도 평범해서 별다른 재미가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점이라면 주인공이 점액질 해파리 형상의 외계 여성과 결혼까지 한다는 점인데, 약간 괴이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결혼까지 가게 된 것은 별다른 위험 요소를 고려하지도 않고 술을 건네서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들이 술을 마시고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연인이 되는 것처럼, 이를 연상케 하듯이 그리고 있는데, 사실적이지 않으며 납득하기도 어려운 면이 너무 많다. 전체적으로 진지하게 읽지 말고 풍자를 의도한 점을 읽어내야 하고,(그렇다고 아쉽게도 완성도 높은 풍자물로 보기도 어렵다.) 가볍게 웃으면서 읽어야 하는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 / 조나단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한 두번도 아니고 그 이상 [파운데이션]의 역사심리학이 언급되기 때문에 일종의 팬픽처럼 읽힌다. 오마쥬라고 하기에는 자주 언급될 뿐만 아니라 소설의 핵심 플롯에 역사심리학이 있기 때문에 좀 과한 느낌을 받는다. 아예 아이작 아시모프와 [파운데이션]이 없는 평행세계를 설정하거나, 언급 횟수를 줄이는 식이었다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과잉은 거부감을 조성하기 쉬운 법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파리행 스카이엔젤에 탑승하려던 주인공이 갑자기 탑승 거부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입부다. 도무지 탑승 거부를 당할 이유가 없는데도 별다른 설명없이 거부만 하는 항공사 직원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후 인류통제국 사무관 코번이 등장해서 면담을 갖는다. 별다를 것 없는 기묘한 면담 후 주인공인 진명은 퍼스트 클래스로 탑승을 허락받는다. 훨씬 좋은 자리로 옮겨진 것이다. 이때까지 주인공은 사건의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후 스카이엔젤이 추락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면서 주인공은 세계의 진실을 깨닫는다. 일상과 비일상의 간극. 평범한 세계가 한 순간에 다른 세계로 뒤바뀌는 치환이 이루어진다. 진명은 세계의 구조를 그제야 들여다볼 수 있고, 이는 독자 역시 이 세계를 제대로 보는 순간이다. 인류를 등급으로 나누고 필요한 인간과 안 필요한 인간의 목숨을 조절하는 세계의 뒷면. 이 세계는 디스토피아일까. 아니면 유토피아일까. 윤리적으로 성립되기 힘든 시스템이지만, SF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며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며 다양한 사고를 유도한다. 그러나 이렇게 인류를 통제하는 방식은 여러 소설에서 다루었기에 충격적이지는 않다. 초반에는 흥미롭게 읽어나갔지만 이후에는 클리셰로 가버린 듯한 아쉬움이 남는 소품이었다.


「고요의 언어」 / 이재인


 폐허가 된 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물이다. 두 개의 세계과 공존하는데, 한쪽은 도시이고 다른쪽은 숲이다. 이건 마치 도시와 숲,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은유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고요의 숲'에서는 대격변 이전의 삶을 살고, '고요의 숲'에서는 철저한 계급 체제와 인간 재생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물처럼 도시의 인간들은 OF-7이라는 약을 통해서 통제를 받고, 시위를 하는 반란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고요의 숲에서 '감응자'를 데려온다. 중반부까지 이런 세계관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에서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도식적이고 진부한 설정처럼 읽혔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소설은 흥미롭게 변한다. 앞에서 감응자가 이 도시에 슬픔을 느끼는 이유,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감응자를 찾아오는 이유, 약을 먹는 이유, 계급이 나눠진 이유, 재생 시스템의 구조 등이 전부 밝혀지기 때문이다. 세계 설정이 탄탄할 수록 그 세계의 구조가 드러날 때 오는 희열을 크다. 새로운 세계 또는 우주를 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디스토피아물처럼 읽히던 소설은 급격한 전환을 맞으면서 더 극으로 밀어붙인 세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의 인간들은 시체들이었고, 약과 기계로 재생시켜서 노동을 시키는 것이라는 충격적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 소설은 새롭게 읽힌다. SF로 구현한 좀비들의 세상, 좀비소설이면서 은유는 더 견고해지고 물리적 실체를 띈다. 여전히 지금 이 세계를 은유한다고 보면, 도시에서의 삶이 우리 삶이라면 우리는 모두 죽을 인간들이고 혹은 이미 죽어 있다. 시체들이 계급이 나뉜 상태로 노동을 반복하고 통제 받으며 더 높은 계급을 위해 일하다 죽는 것이다. 이런 세게관을 설정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숨겼다가 밝히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물론 뒷부분이 너무 설명적으로 세계가 드러난 면은 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밝혀진 세계의 모습은 근사하다. 고요의 숲은 대격변 이전의 인간들이 사는 세계이다. 이들이 왜 살아있는 시체들에게 감응력을 발휘하는지는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점은 독자가 답답함을 느낄 부분이기도 하며 SF적인 측면에서는 과학적 고증이 드러나지 않아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단순히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 소설은 설정에만 기댄 아쉬운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고를 확장시키면서 결말에 다다른다.
 감응자가 도시의 환멸과 슬픔으로 가득 찬 것 때문에, 이곳을 멸망시키려는 서사와 이를 막는 화자의 역할. 그리고 그 뒤의 '고요의 숲'의 옛 인류는 서서히 몰락하고 도시의 인류가 더 오래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 감응자가 통하지 않는 화자의 존재는 이야기를 다른 지점까지 밀어올리는 단서다. 즉, 여기까지 이르면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까지 연상케 되는데 인류는 서서히 멸종되고, 전설이 되어버리고, 뱀파이어 또는 좀비 같은 살아있는 시체와 비슷한 종이 새 인류가 되는 미래까지 암시하는 것이다. 이 아득하면서 상상키 힘든, 머릿속으로 그 사회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볼 수 없는 다른 세계의 탄생 가능성을 짚으면서 끝나는 이 소설의 결말은 매혹적이기 짝이 없다.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 시점이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은. 소재를 쓰기에만 급급한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과학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물론 SF가 반드시 철저하게 과학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은 작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코믹한 작품이라도 어이없는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유쾌하게 웃는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이는 인물, 대사, 구성의 완성도에 달렸다. 또, 아무리 자유롭게 설정이 가능하더라도 최소한의 내적 개연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 개연성이 떨어질 수록 독자는 글에 몰입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읽기가 어려운 지경에 빠진다. 또한 개연성뿐만 아니라 있음직한 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너무 많았다. 이런 점들은 특히 어떤 발상이나 소재를 쓰기에만 급급해서 내적 논리나 개연성, 핍진성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서사의 완성도를 낮추는 것은 이런 점들인데 아무리 아이디어에 집중해도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디테일이 바로 소설의 완성도를 정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개연성이 없어서 구조가 엉성하거나, 핍진성이 떨어져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독자는 소설에 몰입할 수가 없으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아쉬움을 많이 토로했으나 어느덧 웹진 크로스로드 단편집이 5권이 되면서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이 눈에 띈다. 계속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지속되고 여러 작품을 발표한다면 앞으로 더 근사한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단편집을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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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Q35 2022-08-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이해에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매드완드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1편인 [체인질링]보다 2편을 호평하는 경우를 봐서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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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질링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젤라즈니라면 무조건 질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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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커넥션 미래의 문학 4
앨프리드 베스터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국내에도 [타이거! 타이거!], [파괴된 사나이]를 재미있게 읽은 팬들이 많은 만큼 이 작품을 엄청 기다렸을 겁니다. 기대되는 SF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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