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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터젠의 유령
김이환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8월
평점 :
『에비터젠의 유령』은 통신이나 인터넷에서 연재할 당시에 많이 보았던 글이다. 그러나 실제 클릭해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설> 등의 제목이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출판된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 권짜리 책이라는 점이다. 아직 수입원이 전무한 나로서는 책 구입은 정말 소장 가치가 뛰어난 책이 아닌 이상은 섣불리 사지 않는다. 일반 장편 팬터지 소설을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도 주로 이와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은 놀랍게도 1권 짜리 소설이다. 이영도 단편집 말고 이런 1권 짜리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둘째, 장르 팬터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은 상관이 없다. 장르 팬터지였어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팬터지 문학상에 응모하기도 하고, 실제 통신, 하이텔 시리얼란이나 팬터지 문학상에 응모했던 이 글이 일반적인 장르 팬터지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글이 쓰여졌고, 어떤 환상을 다루었는지 알고 싶었다. 셋째, 출판사에서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랐던 것은, 그 동안 한국판타지문학상 수상작 전 권을 받고 싶은 욕심으로 구입했지만, 결과는 『리무』밖에 받지 못했다.
아무튼 작년에 구입해 놓고 여태까지 읽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한 권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잠깐 잠깐 펴 볼 때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마음 먹고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곧 엄청난 흡인력에 빠져버렸다. 소설 내용에 대해 별다른 지식 없이 읽었기 때문에 추리를 해가면서 읽다 보니 재미가 더욱 배가 되었다. 우선 이 소설은 처음부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장르 팬터지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흡인력도 적고 재미도 적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게임CD를 발견한 소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 다른 장에서 나오는 인물들과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등등이 궁금해졌다. 이는 독특한 구성이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 장마다 전혀 다른 인물들이 나오고, 한 장은 순차적인 시간 흐름이지만, 다른 장은 우선 긴박한 사건이 발생하고 역순으로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회고해 나간다. 이런 구성은 독자를 더욱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인물들은 그리 많은 매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처음에 등장하는 소년도 평면적인 인물이고, 주인공 격인 스캇 리치 역시 그다지 다양한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캐릭터가 가지는 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구성이나 독특한 환상 소재 등에 기대어 있다. 그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캐릭터들은 기억을 잃거나 이성을 잃는 상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힘들고, 캐릭터의 성격도 일관성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상과 현실의 붕괴, 게임과 현실, 유령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점 등이었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에비터젠의 유령>이라는 소설 제목과 동일한 소설 속 책이었다. 이 책은 이 소설의 핵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소년이 <에비터젠의 유령>을 읽는 부분은 특히 『끝없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또, 소설 『링』에서도 『링2』에서는 소설 안에 현실의 책이 등장하는데, 이런 묘한 느낌을 이 소설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당시 로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 역시 『에비터젠의 유령』작가로 로비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의 현실과 소설의 현실까지 붕괴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독특핸 재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이 소설의 강점은 이런 독특한 구성, 독특한 전개 방식, 소재 사용에 있지 않은가 싶었다.(작가가 소설 안에 등장한다는 점은 예전에 읽었던 팬터지 소설『탐그루』의 후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때도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작가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은 제대로 된 설정이나 구성을 가지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모호함>을 다루려고 썼다고 한다.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것 밖에 읽지 못했으므로 비교는 할 수 없다. 다만, 그 중 최선의 작품이라는 이 출판본에 관해서는 장점도 많았지만, 역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초반에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와 추리 게임을 벌이며 이야기는 숨가쁘게 전개되고 어느 정도 재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야기가 모호해지기 때문일까? 명확한 엔딩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후반부는 그토록 뿌연 안개가 깔리듯이 영화 <스피어스>처럼 환상이 덧붙여지고 이야기가 끝맺음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독자는 후반부에 들어가서 궁금한 것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힘이 빠지게 된다. 그건 기대가 컷던 탓일 수도 있다. 그 동안 엄청난 이야기가 있을 것처럼 장황하게 벌여놓은 일들이 후반부에 와서는 약간은 복잡한 구성과 함께 툭툭 작가는 한 번에 몰아놓듯이 뱉어놓고 있는데, 이것이 어떠한 충격이나 대단한 인상을 주기 보다는, 그냥 이렇게 된 거였구나, 이런 거구나, 라는 단순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래서 앞에서 느꼈던 재미나 흥분감이 금세 식어버리고,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가 후기처럼 모호한 것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후반부에 좀더 힘을 실어서 독자의 허탈감을 줄게 만들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훨씬 더 인상적인 소설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에비터젠의 유령』은 그냥 <김이환 장편소설>이라고 출판되었다. 예전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장르 팬터지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 순수문학과도 다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환상은 굉장히 진취적인 느낌이다. 요즘 세대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들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이를 글쓰는 이의 욕망, 창조에 관한 것, 모호함, 환상 등을 결합시켜서 글을 썼다. 깔끔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아마츄어틱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글이고 재미있지만, 또 생각할 거리도 주지만, 2% 부족한 듯한 느낌? 그러나 이 작가의 글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현재는 콜린이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상에 <양말 줍는 소년>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또 『에비터젠의 유령』과는 다른 종류의 글이다. 통신, 인터넷 연재 소설의 강점은 일반 순수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 신선한 글쓰기가 아닐까? 그 중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서도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가장 잘 하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글들을 쓸 것이라고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이런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 권이라 부담도 없고,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