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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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8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한국공포문학단편선
한국에서 태어난 공포의 모습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들의 공포문학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많은 장르문학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멋진 공포문학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책이 더 많이 알려지고 팔리지는 못할망정 19세 미만 구독불가 판정을 받은 사실은 많은 독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형평성이 없는 기준을 볼 때, 정말 이해 못할 처사였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책은 앞으로 한국의 호러 문학의 시작일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각 단편 별로 짧게 리뷰를 하도록 하겠다.
일방통행
조금 어지러운 단편이었다. 첫 단편이지만, 가볍게 읽기 힘들었달까. 필자도 호러에 관해서는 거의 접해본 바가 없기 때문에 낯선 마음으로 읽었다. 또한,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교만과 이기심.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그것’, 을 공포로 형상화한 솜씨가 놀라웠다. 아마도 필자가 운전을 해보았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단편이었으리라.
은둔(隱遁)
짧은 단편이지만 강렬하다. 은둔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절실하게 섬뜩하게 손에 잡힐 듯한 묘사로 그려냈다.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실수로 형을 죽이고 방안에 은둔하게 된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치밀하다. 결국 방밖을 나서지만 더 큰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 어디로 가도 공포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상자
어디선가 들어본 시체를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 상자에 관한 단편. 소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기묘한 상자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다. 잡지 파우스트를 보면 이런 상자에 대한 소재로 더 긴 장편이 연재되고 있기도 하다. 짧고 간결하며 단편적인 재미에서는 이 상자는 아주 깔끔하다.
감옥
긴 분량의 단편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 놀라운 공포를 선사하는 단편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히긴 한다. 쉽게 예상이 가는 이야기라서 조금 아쉬웠다.
들개
잔혹하다. 피와 폭력이 가득한 단편이다. 어둡고 끈적끈적한 느낌. 인간도살이라는 금기를 무섭게 다뤘다. 불쾌한 느낌도 많이 들고,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괜찮았다고 할까. 이것 역시 이야기가 대부분 예상 가능 범위라는 것은 조금 아쉬울 듯하다.
흉포한 입
약간 이해가 안 가는 글이었다. 공감가는 대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글의 구조 파악이 힘들었다.
하등인간
재미있게 읽었다. 외계인이 나오고 인간에게 강제로 항아리를 쓰게 만든다는 점에서 SF로도 볼 수 있는 단편이었다. ‘지배자’에 대해 복종해야 하는 사회. 독재에 대한 공포 등이 떠올랐다. 결말도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는 단편이었다.
아내의 남자
흡인력 있는 소설이었다. 추리 형식을 띄고 있어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의처증이라는 소재를 굉장히 잘 살린 수작이었다.
모텔 탈출기
제2회 황금드래곤문학상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 멋진 블랙 코미디. 이 소설집에서 단연코 가장 뛰어난 몰입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당시 황금드래곤문학상 단편상을 수상할 때도 뛰어난 몰입감과 함께 충격적인 반전으로 인터넷상에 널리 퍼졌으며 유머글이라고 잘못 알려지기까지 했다. 필자의 기억 속에 오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던 이 소설이 마침내 활자화 된 것이 무척 기뻤다.
깊고 푸른 공허함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신판 : 팔란티어)의 작가의 단편 소설. 한국 사이버 펑크 스릴러의 개척자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아무튼 『팔란티어』는 장르 독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소설로 스릴러적 구성과 가상현실게임의 첫 도입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흥미 넘치는 소설이었다. 팔란티어 작가의 단편이 실렸다는 소리만으로도 이 단편집은 내가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도서였다. 그렇게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일까? 단편은 기대한 것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그래도 쓴 연도가 1996년도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글은 자연스럽게 잘 읽히나 스토리나 공포가 신선하지 못했다는 게 다만 아쉬울 뿐이다.
또 다른 공포를 기대하며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단편집보다 더 나은 단편집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은 부서졌다. 덕분에 공포문학에 대한 좋은 기대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나온 다른 장편 소설들도 읽어볼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공포문학단편선2가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그곳에는 또 다른 독특한 공포가 숨어있을 것이므로.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심리적, 정치적 공포들을 거기서 실체화하여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