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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브리드 9
나카무라 에리카 지음, 김영종 옮김, 타케히토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더블 브리드. - 슬프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
처음 더블 브리드를 접했을 때는 무심코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또 뻔한 이야기겠지. 아야카시라는 존재? 그냥 뱀파이어나 요괴 같은 걸 다르게 부르는 것 뿐 아닌가? 주인공이 혼혈? 이것 역시 너무 흔한 설정 아닌가. 사실 주인공은 특별해야 하므로 혼혈이 많이 사용되지 않던가. 혼혈은 우성인자만 유전되어 뛰어난 존재로 묘사되는 건 흔하잖아.
더블 브리드와 인간의 만남. 그것도 여자와 남자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또, 같이 싸우고 서로를 아끼는 존재가 되겠지, 라고 단순히 지레 짐작.
또 동료 아야카시 등이 나오면서 적을 격파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상상.
가볍고 밝고 재미있는 라이트 노벨이라면 당연히 그런 식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더블 브리드는 처음부터 핏빛 이야기로 가득했다. 맞고 터지고 베이고 뜯기고.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외관상 어린 소녀로 보이는 주인공 유우키가 얼마나 상처를 입어야 했던가.
이야기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불행해지다가 마침내 파탄의 길로 접어든다.
실로 이런 소설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토록 우울하고 처량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자는, 흉힌이 되어
의지도 잃고 오로지 아야카시를 죽이는 존재로 거듭났다. 그 또한 죽음 밖에 남지 않은,
허무한 존재.
이야기는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결국 누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서로를 상처입히게 될 것이라는 진실이 숨어 있었다.
현실이 결코 낭만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토라지와 안도의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그 둘은 너무나 밝은 아이들이다.
그렇다. 아이. 아직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기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
비극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 곁에 사람들도 모두 평범하지 않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란 없다. 우린 모두 인간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아야카시들이다. 때론 방관자들이다. 때론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증오만을 불태운다. 우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공존하지 못한 채, 죽어갈 뿐이다.
흉인과 더블 브리드. 둘은 오묘한 존재들이다. 둘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자들이다.
그렇다. 어쩌면 그 둘만이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평안을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평안이 존재의 소멸, 완전한 죽음일지라도.
흉인이 더블브리드 내에 자리잡고 있는 사악한 존재만을 없애고 흉인에게도 오니기리가
사라지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행복한 결말보다도,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되, 세상을 벗어날지도.
즉, 어쩌면 둘운 세상에서 오로지 둘 만이 완전한 이해를 얻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은 하나가 되어, 진정한 행복을 느낀 채, 안식을 얻는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도 그 둘을 기억하지 못한 채, 잊어갈지도.
더블 브리드. 라는 라이트 노벨은 우선 독특하다. 이처럼 처절하게 진행되어가는 라이트 노벨은 보기 힘들다. 주인공들이 좌절만하고, 마침내 곧 죽을 테니까, 어차피 죽을 테니까, 서로에게 죽는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지경까지 치열하게 모는 작가가 놀랍기 까지 하다. 문장도 잘 쓰여져서 글에 몰입할 수 있다. 대화가 많이 나오는 부분도 있고, 유머스러운 부분도 들어 있지만, 대화보다는 서술과 감정의 묘사가 치밀하다. 작가의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독자로서 더욱 마음에 든다. 소장 가치가 훌륭히 있기도 하고. 이런 처절한 이야기를 냉정하게 무섭도록 차갑게 차분히 단정하게 쓰고 있다. 담담한 문장들. 조금씩 독자를 압박해 간다.
그리고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토록 유니크한 점 때문에 계속 읽게 되는 책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끝을 보고 싶은 소설 중 하나이다.
비극.
아름다운 비극이 될지, 슬픈 비극이 될지, 우수은 비극이 될지.
희극만 난무하는 라이트 노벨 중에서 이런 비극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겠지.
그리고 힘든 세상, 사는 것도 힘든데, 책 속에서도 힘든 이야기냐, 할 수도 있겠지만.
슬픈 일이 있을 대,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울음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끽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처럼. 감정을 시원한게 정화시켜주고, 아련한 느낌을 전해 줄, 그런 끝맺음을 기대한다. 그러나 2년 6개월 동안 일본에서도 10권은 나오지 않았기에 걱정이 된다. 그들의 결말을 언젠가 읽게 될까? 가슴 깊이 오래 남을 수 있는 소설이 되기를.